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인환 Jan 08. 2017

겨울 속 봄같은 유혹

<작가의 생각 | 노트>

흐리다. 비가 올 것 같은 날씨에 마음은 가라앉았다. 잠시 숙소를 벗어나 인근 논길을 따라 걸었다. 그러나 둔옥지의 그 느낌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큰 길이 가까워 차들로 시끄러웠고 나는 물을 마셔야만 했다. 목마름을 느끼는 여유로운 시간, 이 시간이 내게는 유일한 축복이다. 


휴일은 짧게 스치듯 지나간다. 무언가 균형 잡히지 않은 느낌들로 가득찬 이 세계의 휴일, 모든 공간이 답답하고 모든 시간이 지루하다. 사람들은 말이 없다. 그들의 눈빛이 흐리다. 마치 비가 내릴 것만 같은 날씨처럼 말이다. 이미 그들의 가슴은 슬픔이든 삶의 고통이든 그 무언가로 조금씩 끓고 있는 것 같다. 


영상 13도. 그러나 포근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대기 속으로 따스한 기운들이 흘러다니지만 인간의 마음은 그 대기의 방황을 달갑게 여기지 못하고 있다. 아무리 따스한 공기로 충만하여도 인간의 쓸쓸한 마음을 채울 수는 없는 모양이다. 마음은 <아무리 그래도 여전히 겨울>이라고만 말하고 있다.


매일같이 아슬아슬한 살얼음판 같은 순간을 보내고 있다. 나는 괴로워도 괴로워하지 않으며 그리워도 그리워하지 않는다. 고통이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어쩌면 그래서 우리의 삶은 행복을 갈망하고 있을 것이다. 노동으로 지친 몸과 마음은 바닥에 누워 일어나고 싶어하지 않는다. 오직 쉼에 대해서만 긍정하고 욕망에만 눈빛을 반짝이게 되는 나의 현실을 나는 어떻게 말해야 할지 당황스럽기만 하다. 


만나게 되는 사람이 여자라면 내 본능의 그리움은 육체를 안달나게 할 것이 분명하다. 은근히 욕망하고 있으며 그것은 나태함과 더불어 아련한 몽상 속으로 나의 이성을 유혹한다. 


외롭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모든 것이 이미 무너져버린 나의 삶을 스스로 일으킬 수 있게 하기 보다 기대거나 눕거나 지친 그대로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고 싶다는 마음만 간절하다. 


나는 사람들의 위로와 격려를 피하고 싶다. 그런 지긋지긋한 앵무새같은 소리를 피해 부드러운 여자의 젖가슴과 감미로운 입술과 나의 욕망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은밀한 시간 속으로 뛰어들고 싶을 뿐이다. 


세계는 고요하다. 모든 불행한 사태들 앞에서도, 부정하고 악랄한 웃음 앞에서도 세계는 침묵하고 있다.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나의 욕망은 충만해지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창조를 위해서가 아니라 앞으로도 나의 시간은 오지 않는다는 진실을 외면하기 위해 지금 나는 발버둥치고 있다. 


얇은 지갑으로 주린 배를 채웠다. 휴일의 시간은 점점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지금까지처럼 나의 미래는 커다란 변화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하루 하루를 견뎌낼 수 있는 기력으로 그 시간들을 견딜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그러나, 그래야만 한다. 이제 나의 삶에는 운명이나 숙명같은 새로운 미래가 아니라 이 잔인한 의무만 남아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까지의 시간을 되돌아보니 어느새 고통과 좌절이 익숙해지고 편안해진 것 같다. 이렇게 날이 저물듯이 삶은 저물어 갈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천박한 인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