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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환 Jan 13. 2017

글쟁이의 변명

<작가의 생각 | 노트>

한 마디, 한 줄의 문장을 위해 수만장의 메모를 포기하며 그 이상의 영혼을 소비한다. 그렇게 단 한 줄의 문장이 독자들에게 의해 재해석되고 재창조되어 의미를 부여받게 된다. 


글을 쓰는 것도 노동이다.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임에도 사람들은 노동과 전문적인 일을 구별하기 위해 애쓴다. 매우 천박한 계급 의식이다.


성직자도-따라서 교황이라는 로마의 주교도- 의사도 변호사도 판사도 교수도 모두 노동자다. 예술도 노동이다. 사무직이든 단순 노동이든 그 본질이 노동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지만 그것을 부정해야만 신분 사회에서 자신이 좀 더 돋보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생각을 해야 한다. 또한 필요한 지식도 습득해야 한다. 이 역시 노동의 과정이다. 글쟁이나 글꾼 모두 글을 쓰는 노동자다. 일당도 못버는 경제적으로는 크게 생산 값어치가 없는 그런 노동자일 수도 있다.

글을 짓는 사람과 집을 짓는 사람, 그리고 농사를 짓는 사람. 그들이 흘리는 땀이 본질이라는 인식이 없는 한 고상한 인간에 대한 허영과 교만, 계급적 우월감으로 점철된 천박한 인간으로의 행진은 더욱 유치해지고 그 경쟁은 잔인해질 것이다.


가장 아름다운 작가 예찬은 그의 글을 통해 독자가 스스로의 관념을 창조하는 것이다. 독자는 책을 사는 소비자가 아니라 작가와 교감하며 작품의 내면을 완성하는 새로운 창작자이다.


그러나 동시에 글을 쓰는 내면보다 읽혀지는 객체를 의식하는 순간 문장에 혼을 불어넣는 일은 없어진다.그만큼 지성도 영혼도 저급해질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또한 어떻게 읽혀질까가 문장을 이루는 주된 의식으로 자리잡게 되면 그것은 글을 통한 표현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에 대한 압제며 검열이 될 뿐이다.  


글을 써 나가는 내면을 통해 타자와 교감할만큼의 노력을 어떻게 쉽게 전달할까 고민하는 것과 동일시하는 것은 사상의 기계화를 초래하며 존재자 사유의 고유성을 말살하고 말 것이다.


창작에 정해진 규칙 없다. 만일 그것을 제시하는 작가가 있다면 그것은 그의 창조가 이미 종말을 고했음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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