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인환 Jun 20. 2016

여행자 4

<낯선 여행자의 시간 | 개정판> 연재 #5


오류와 한계가 없는 사상은 위선이거나 거짓이거나
이 둘을 동시에 강제하기 위한 억압일 수 있다

모든 인간의 사상과 신념에는 오류가 있기 마련이다. 그중에서 가장 위험한 사상과 신념은 바로 회의하지 않고 확신하는 사상과 신념이다. 사상과 신념은 오류에 대한 회의를 통해 진리와 진실이 입증된 논리의 명제이며 존재할 수 있게 된 현실의 미덕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힘과 확신에 의해서 논리가 결론지어지거나 진리가 밝혀지지는 않는다. 힘과 확신은 종종 진리와 진실을 거부한다. 힘은 힘 자체를 위해서만 기여하고 힘에 의한 확신은 힘을 위해 아양 떠는 썩은 버팀목일 뿐이다.


오류와 한계가 없는 사상은 위선이거나 거짓이거나 이 둘을 동시에 강제하기 위한 억압일 수 있다. 인간이라는 유한한 존재에게는 필연적으로 오류가 따르기 마련이며 유한한 존재가 오류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변치 않는 진리이다. 바로 그것이 자연의 순리이며,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거듭 언급하듯 인간이란 하나의 개체—단독자—로서 연약하고 비참하며 탐욕하는 한 마리 짐승일 뿐이다. 그것은 인간성에 대한 모욕이 아니라 자연의 일부인 신의 피조물로서 인간 존재에 대한 참된 평가라 할 수 있다.


우리는 광대한 관점에서는 미약하기 그지없는 존재에 불과하지만 그럼에도 정말 많은 철학적이고 과학적인 지식을 인류라는 인간 존재의 보편성 안에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우리가 참되게 알고 있는 것인지, 그렇다고 한다면 그것을 깨우칠 분별이 있는 것인지 진지하고도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야만 '앎'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지식의 보유 자체가 '앎'이 될 수는 없다. 앎에 있어서 그에 이르지 못함이, 즉 깨우칠 분별이 없음에도 안다고 하는 착각이 제일 큰 오류가 될 수 있음을 우리는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그 앎의 순간만큼은 혼란과 고통조차도 끌어안고 벅찬 희열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앎에 대한 깨우침은 인간 존재 지성의 최고 희열이다.


나는 지금 우리가 속한 사회 체제가 위기와 좌절을 겪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사회의 문제는 개별 인간 존재의 문제와는 차원이 다르다. 상호 관계에 있어서 개인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 그러나 사회 문제는 각 개인을 압도적으로 지배한다. 결국 개인이 사회에 미치는 미미한 문제들이 축적되어 거대한 집단의 문제가 되지만 우리는 미미한 각자의 문제들에 대한 인식에 소홀하다. 결국 사회 문제와 직접 충돌을 일으킬 때 그 문제를 타자화하면서 좌절하거나 저항하게 된다. 인간 존재의 세계를 향한 저항은 역시 미미하고 좌절은 흔한 일상이다.


우리 사회의 지성은 기본적인 이성적 인식 장애를 겪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결과적으로 우리가 자초한 것이기도 하고 동시에 원인으로서 전혀 원하지 않았던 억압과 강제의 체제를 탄생시킨 재앙이기도 하다.


사회 구성원들이 정당하다고 생각했던 합의가 왜곡된 폭력으로 다시 우리 인민들에게 되돌아온 까닭은 도대체 무엇 때문인가. 그리고 우리는 왜 정당하다고 생각했던 이유에 대한 답을 찾아 방황하고 억압받고 좌절하면서도 저항하지 못하고 있는가. 인간 자체가 오류를 범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인가. 아니면 우리 사회가 의식적으로는 원하지 않으나 무의식적으로는 이러한 이해하기 힘든 피학적 의식 구조의 타파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인가. 그것조차 아니라면 애당초 우리 인간 존재들의 시간은, 여행자들의 시간은 낯선 공간으로만 통하게 되어 있으며 그 낯선 공간 앞에서 이정표는 언제나 재앙의 문만 열어주기 때문인가.


나는 이러한 의문들에 앞서 왜 의혹이나 의구심보다 언제나 당위만이 결론으로서 존재자의 생각과 의식을 지배하는지에 대해 탐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인간이라면, ‘생각하는 존재로서 인간’이라면 너무도 당연한 논리적 순서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 당연한 과정조차 매우 열띤 논쟁을 감행할 용기가 필요하다는 현실이 문명은 발달했으나 의식은 미개한 우리의 자화상임을 지적하고자 한다.


부조리와 부정, 혹은 오류에 저항하는 용기의 필요성에 대해 간단하고 추상적인 사태 상황의 필요성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우리 세대에서 당연시되고 있는 모든 진리의 명제들이나 보편적 가치들이 도발되었던 때에 그것들은 세계의 이단이었으며 지배자들에게는 전부 반동이었다. 우리가 ‘가치’라고 하는 것들, 진리로서의 명제들이 당연시되고 있는 지금, 그것들 모두가 매우 위태로운 박해의 순간을 거쳐 자리를 잡았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그 진리를 바탕으로 우리는 오류에 부딪히고 저항할 수 있어야 한다. <계속>

작가의 이전글 여행자 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