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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환 Jun 16. 2016

여행자 3

<낯선 여행자의 시간 | 개정판> 연재 #4

...가느다란 사유의 지팡이가 굳은 다리를 후려치고
나의 외투가 나를 발가벗기는 이 비참을 견뎌야 하는
인간 존재의 현실이 너무도 참혹하기만 하다...
우리는 시간이라는 길을 따라 떠도는 부유물이거나
여행자에 불과한 존재들이다.




낯설고 황량한 시간과 공간을 무사히 지나가기 위해 아무리 집중을 하고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아니 그것들이 허용되지 않는다고 한다면 방황이라도 해야 할 판에 가느다란 사유의 지팡이가 굳은 다리를 후려치고 나의 외투가 나를 발가벗기는 이 비참을 견뎌야 하는 인간 존재의 현실이 너무도 참혹하기만 하다.


우리는 시간이라는 길을 따라 떠도는 부유물이거나 여행자에 불과한 존재들이다. '우리'를 이루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존재자들은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도 잘 모르거나 그것을 탐구할 만한 마음의 여유를 갖고 살아가지 못한다. 우리는 매 순간 분별력을 발휘해야 할 만큼 복잡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여행자들이다. 우리는 모두가 하나의 개체—단독자—로서 인간이라는 이익에 약삭빠르게 탐욕하는 짐승들이다. 여행자들의 몫은 늘 새로운 곳에 있다. 가고자 하는 어떠한 목적지가 정해져 있지는 않으나, 여행자들은 자신의 몫이 미지의 어느 곳, 어느 때에 숨겨져 있음을 직감적으로 그리고 본능적으로 느끼거나 알 수 있는 원초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인간 존재이기 때문에 이러한 느낌이나 막연한 앎은 고태적 기원과 같은 미신적 인식을 통해 믿음으로 굳어져 있다.


오랜 세월 동안 반복되고 누적되었던 인식을 통한 믿음이 인간의 이성이 창조한 문명을 통해 어떠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앞으로도 통념에 대한 맹목적 믿음은 변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사회라고 부르는 체제의 울타리 안에서 벌어지는 스스로 인식할 수 있고, 인식한 부조리를 고발하며 오류에 대항하고 무엇보다 부정 부당한 힘의 작용에 대해 저항해야만 한다. 이러한 이성적 의지의 저항이 없다면 문명은 이성의 피조물로서 창조주인 이성적 존재를 말살하는 거대한 괴물로 돌변하고 말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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