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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환 Aug 16. 2016

의식 3

<낯선 여행자의 시간 | 개정판> 연재 #8

...의식에 무엇인가를 강요하는 작용에 대해 저항하고 반항하며 
인식하는 자율적이며 주체적 존재자가 되기를 원한다...


인간의 의식은 존재자를 통해 무엇인가 하고자 하는 그 무엇인가 아니면 인간 존재가 자신이 의욕하여 쟁취한 무언가가 의식의 영역에 보존되기만 하는 것인가.


의식은 환경에 의해 의지 호은 의욕과 상관없이 보존되기도 하고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 보존되기도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다만 이것이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있어서 나는 존재자의 주체적 의지가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의식에 지배되는 인간 존재가 아니라 의식을 지배하고자 하며, 이 의식에 무엇인가를 강요하는 작용에 대해 저항하고 반항하며 인식하는 자율적이며 주체적 존재자가 되기를 원한다. 물론 인간 존재의 의지가 모든 것에 대항하여 저항하고 모든 사태를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존재 그 자체로 한계증명이며 모순증명이다. 다만, 그 의지를 통해 적어도 범죄로 뛰어들지 않으며 범죄하게 만들지 않을 인간적이면서도 사회적인, 즉 상식적이거나 합리적인 선택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의지와 공동의 체제, 체계의 관점에서 사회를 엮어나가는 것으로서 정치란 인간 존재가 창조한 가장 더러운 예술이다.


정치가 권력에 의해서만 좌우되고 그 권력의 정점을 위해서만 작용하며 집권으로만 향하게 된다면 정치라는 것은 권력자만을 위한 이기적인 도구로 전락하게 된다. 반대로 정치가 정치권력을 탄생시킨 인민들에 의해 좌우되고 그들의 권익을 위해 작용하며 그것에 헌신하기 위한 집권으로 향하게 된다면 비록 더러운 작용에 의해 지배되어도 공동의 체제, 체계에 기여하는 선순환의 결과를 낳게 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더러운 것으로 하여금 사회 체제 내지 국가 체계에 이바지하게 하는 역설적인 예술 작용으로 평가하는 부분이다.


정치란 더러운 일이다. 정치는 더러운 일을 해야만 하는 매우 독특한 고결함을 의무로 한다. 정치가 스스로 더러운 일을 위해 헌신하지 않는다면 결국 그 더러운 사태 혹은 부당한 집권 세력의 폭력 앞에 인민들을 노출시키는 매우 위험한 일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고상한 인간이 되기 위해 고매한 인품을 버리고 싶지 않다면 그는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고매한 인품을 버리고서도 천박한 인간이 되지 않는 법을 찾지 못한다면 그는 더더욱 정치를 하면 안 된다. 무능한 인간이 정치를 위해 힘 앞에서 손쉽게 희생시키는 것이 바로 인민들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만일 정치를 하고자 하는 인간이 고귀한 존재자가 되고자 한다면 다시 말해 영웅적이고 신화적 이난이 되고자 한다면 그는 권력에 의해 좌우되는 정치를 할 것이고 그 정점의 권력을 위해 정치를 할 수밖에 없으며 또한 그렇게 하기 위해 집권하려 할 것이다. 물론 그에게 인민들은 헌신의 대상이 아니라 권력 쟁취 과정의 도구와 수단으로서의 대상에 불과하다.


정치를 하고자 하는 인간 존재가 고귀한 인간으로 역사에 남고자 한다면 인민은 그의 맹목적 권력 집착을 제일 먼저 의심해야 한다. 이러한 의심과 경계를 가져야만 그의 인격이 더럽혀지더라도 적어도 사회 체제는 그에 의한 정치라는 위선적인 무능에 의해 더럽혀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또한 그래야만 그의 무능에 의해 파탄 나는 체계의 붕괴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예방할 수 있다.


영웅이 되고자 하는 인간 존재에게 일반 상식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는 애당초 상식이라는 것을 이해할 능력이 없으며 그럴 의지도 없다. 만일 그가 사회 체제가 요구하는 기본적인 지식이나 분별력이 없다면 그의 존재 자체가 바로 맹목적 존재이며 악한 존재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모든 것을 희생시킬 수 있다.


이 말이 이해가 안 되는가? 그렇다면 제2차 세계대전을 떠올려보라. 그리고 스탈린을 떠올려보라. 그것도 이해가 안된다면 온 역사를 통틀어 자행된 전쟁, 양민학살과 쿠데타들을 떠올려보라. 그래도 이해가 가질 않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언제든 맹목적 범죄, 즉 악의 탄생에 부역하거나 종사할 만반의 준비를 갖춘 지배자의 욕망과 맹목적 광기가 주입된 도구라고 단언할 수 있다.


자신의 사회적 지위나 학벌, 명예로운 신념 등을 내세우며 이 말을 부정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히틀러를 먼저 추종했던 이들은 평범한 이들이 아니라 당시 사회의 지성인 부류였다는 점을 상기하기 바란다.


실제 존재자가 가장 인간다울 때가 언제인지 아는가. 그리고 그런 인간다운 인간이 신으로부터 가장 큰 은총을 받는 때가 언제인지 아는가. ‘나는 아니오’라는 것을 증명할 때가 아니라 ‘내 탓이오’하는 고백의 순간임을 잊지 말길 바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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