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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도 Jan 16. 2022

이웃집 무슬림 할머니의 간절한 부탁

마그립 (Maghrib)의 석양과 아잔 (Azan)

스무 살 초반 언저리의 나는 이슬람 국가에서 2년 넘게 살았다.


당연히 나의 주변 친구들과 이웃들은 이슬람을 믿는 무슬림이 많았다. 


매일 새벽이면 '아잔 소리 (이슬람 사원에서 기도를 하러 오라고 부르는 소리)'를 들고 깨는 것도 일상이었다.


물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나 처음에 거슬리던 소리마저도 자연스럽게 들렸고, 아무 일 없던 듯이 잘 자게 되었다.


해닐녘 마그립(저녁 기도 시간)의 석양과 함께 아잔이 녹아드는 저녁이면, 하루를 감사히 무사히 보냈음에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고는 했다. 


라마단 기간이면 배고파 힘이 없다고 말하는 친구에게는 '진짜 밥 안 먹었어?' 하고 짓궂은 농담을 하기도 했다. 


어느 정도 친해진 친구들은 '깜빡하고 먹어버렸어'라는 재치 있는 답변을 하기도 했다.


사실 유무는 알기 어렵지만 '꾸란에는 돈 많은 사람은 가난한 자를 도와야 한다'는 내용을 무슬림들은 멋대로 해석하여 '구걸을 당연시한다'라고 말하는 어느 교민의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꾸란도 모르고 실제 무슬림들이 그렇게 생각하는지도 알턱이 없는 나는,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버는 것이 아닌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사람들을 보며 '정말 그런가?' 하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어느 휴일, 나는 집에서 한가롭게 청소를 하며 집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때 문득 우리 집으로 누군가 찾아왔다.


나이가 많은 할머니 같았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이가 너무 아픈데 약값이 없어서 우리 집 마당에 풀을 뽑아주겠으니 한국 돈 500원만 도와주면 안 되겠냐고 말했다.


당장 아이가 아파서 너무 걱정스러운 표정이고, 용기 내서 내게 그런 제안을 한 할머니가 너무 안쓰러웠다.


한국돈 500원으로 과연 약을 살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생각한 나는 일단은 갖고 있던 현금에서 약값으로 쓰시라고 쥐어드리며 풀은 뽑지 않아도 되니 빨리 가서 아이에게 약을 사주시라고 가시라고 했다.


할머니는 거의 울듯한 표정으로 고맙다며 황급히 떠났다.


그런 모습을 보며 내게 무슬림들은 '구걸하는 것을 당연시 생각한다'라고 말했던 교민 분의 생각은 잘 못되었다는 것을 확신했다. 


누가 뭐라고 하든 간에 눈물을 글썽이며 당장 팔을 걷어붙이고 정글에 가깝던 내 마당 풀을 뽑겠다는 할머니의 모습은 절대로 구걸이 아닌 구조요청에 가까웠다. 


내가 드린 약간의 돈으로 얼마나 효과 있는 약을 사서 아이가 나았는지는 그 뒤로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무슬림은 어떻다, 이슬람은 어떻다라고 단정 짓는 사람들은 만나면 그런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고 교만한 생각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물론 지금 생각해도 이가 갈릴 정도로 못 돼먹은 인간 중에 무슬림인 사람도 있었다.


나의 아버지는 내가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 무렵 몇 년간 맘을 터놓고 지내신 개신교 목사님께(지금 생각해보면 과연 목회자가 맞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수년간 모은 전 재산의 매우 큰 일부를 사기당하신 적이 있다. 


그 사건으로 인해 아버지와 어머니는 인생에서 지울 수 없는 큰 상처를 받으셨다.


그런 아버지를 보며 나 역시도 막연히 개신교 교인들에 대한 막연한 선입견이 있었던 시절도 했다. 


하지만 나는 정말 훌륭하고 존경스러운 주변분들 중, 개신교에 대한 믿음이 바탕으로 또 그러한 믿음을 실천하며 살아가시는 분들을 보며 그러한 선입견을 완전히 버리게 되었다. 


이러한 생각은 언젠가 여행 중에 지나가며 들은 이 한 문장으로 정리가 되었다. 


'교회에는 세상에서 가장 착한 사람과 가장 나쁜 사람이 모두 있다' 


이 말 자체의 옳고 그름을 떠나 어딜 가든 "나쁜 놈 좋은 놈 이상한 놈"은 있다. 


여담이지만, 아버지도 십수 년 전 집 근처에 생긴 작은 교회 목사님과 친분을 갖게 되어 (그 목사님은 존경스러운 분이셨던 것 같다) 과거의 마음의 상처를 어느 정도 씻으신 듯하셨다(참고로 아버지는 개신교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갖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성경을 완독 하시고 성경의 가르침에 대한 확고한 논리를 갖고 계셨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몇 년 전부터 개신교 교회에 다니시면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시고 계신다.

 

이슬람이던 개신교던 불교던 종교 자체에 대해 수천 년 간 많은 사람들의 믿음과 희생으로 쌓인 그 가치를 함부로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정화수 한 그릇을 떠놓고 신령님께 비나이다를 반복하며 자식의 안녕을 비는 어머니의 마음은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진실되고 옳고 그름을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우리 할머니는 불교, 아버지도 불교, 엄마는 개신교, 나와 동생은 가톨릭(?), 나의 아내는 무교다. 


나의 아내와 아이가 어떤 종교를 선택할지, 혹은 어떤 종교도 선택하지 않을지는 모르겠지만 올바른 가르침에 대한 믿음을 실천하는 삶을 산다면 존중해줄 것이다.

 

이슬람 국가에서 나는 극소수의 비주류 집단인 가톨릭이었다. 


또한 내가 사는 지역은 과거 현지에 거주 중인 중국인에 대한 잔인한 폭력적 폭동이 있었던 지역이었으며, 나 역시도 종종 중국인과 같은 차별적 대우를 받으며 살았다(한국인인 것을 알면 태도가 완전히 변하기도 했다.)


어느 사회에서 종교나 인종 등의 소수자로 살아가며 받는 무조건적인 차별은 너무나도 잔인한 문화이다.


어느 종교나 인종, 국가에 소속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편협된 선입견으로 그 사람을 평가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지한 일인가.


자꾸 일어나는 무슬림 테러는 '무슬림' 전체에 대한 인식을 좋지 않게 만들어 모든 무슬림들을 차별받게 만들고, 이슬람 전체를 자꾸만 위기에 몰아넣는다.


당연히 앞뒤 좌우를 가리지 않고 종교와 인종 그리고 국가와 상관없이 생명에 대한 폭력의 행사를 감히 '종교의 이름으로 심판'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

 

나는 무슬림도 아니고 독실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도 아니지만, 가끔 지금도 마그립 무렵의 석양이 질 때면 마음속으로 아잔이 울려 퍼지며 평화로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마그립 (Maghrib)의 석양과 아잔 (Azan)


*아잔 ([아랍어] azān)

[명사] [종교 일반 ] 이슬람교에서, 예배 시각을 알리기 위하여 큰 소리로 외치는 일.


*마그립 ([아랍어] maghrib)

[명사] [종교 일반 ] 이슬람교에서, 하루의 넷째 예배. 곧 저녁 예배를 이른다.


아잔 소리가 궁금하시다면,

https://www.youtube.com/watch?v=qijUyKRiaH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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