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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도 Sep 23. 2019

부쿠레슈티 ,부카레스트, 파리 혹은 빠히

OTP-CDG 부쿠레슈티에서 파리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자리는 만석이고 선반 내부의 짐도 가득 찼다.


사람들은 저마다 무언가 끄적이기도
헤드폰을 끼고 잠을 청하기도
무언가에 열중하며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비행기 안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


물론 비싼 좌석일수록 편한 시간이 될 수도 있지만
누구에게나 같은 시간을 지나지 않으면 도착할 수 없다는 사실은 동일하다.


성층권의 고요함을 가로지르는 비행기 엔진 소리는 지극히도 불안한 공중에서의 불안감을 지우는 듯하다.


유쾌한 승무원은 프랑스 억양이 섞인 영어로 친절하지만 부담스럽지 않은 태도로 은박 용기에 담긴 비프 부르기뇽과 네모지고 딱딱한 바게트를 승객들에게 바삐 나눠줬다.


나는 붉은 와인과 따뜻한 차 한잔도 요청했다.


문득 성경에서는 왜 빵과 포도주를 마실까 내 앞에 그대로 놓인 빵과 포도주를 보며 문득 궁금했다.


빵 한 조각을 베어 물고 포도주를 한 모금 머금자 빵과 와인의 맛이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시라 품종의 2년 된 프랑스산 와인은 부담 없이 넘어가지만 가볍지 않으면서도 입안을 깔끔히 가셔 주고 또 적절히 빵의 고소함과 어우러진 느낌을 주었다


작은 와인병에 담긴 한 병에는 celebration이라 적혀있었고, 성경 말씀대로 빵과 함께 먹는 것을 시도한 나의 선택을 축하하는 기분이었고, 나는 기쁜 마음으로 이내 하프 보틀 한 병을 비웠다.


와인과 함께 받아놓은 차 한잔이 식기 전에 모두 마시기 위함도 있는 탓에 와인을 서둘러 마신 감도 있었던 것 같다.


기분 좋은 와인 한 병 뒤에 따라오는 따뜻한 차 한잔은 더 이상 와인을 마시지 않고도 적절한 취기와 온기를 적절한 속도로 온몸에 퍼지도록 도와주었다.


저마다의 시간대에서 와서 같은 시간을 비행하며 또 다른 한 시간이 왜곡되는 시간대로 비행하고 있다.


동양에서 온 이방인이 되어 아는 사람 없이, 나를 아는 사람도 없이 고요하고 불안한 비행은 여전히 흔들리며 불안하지만 붉은 와인을 머금은 빵처럼 이 시간과 공간 안에서 흠뻑 젖어갔다.


비행기 안에서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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