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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도 May 07. 2022

고기 먹는 날의 풍경

어린 시절부터 나는 고기를 무척 좋아했다. 고기가 없으면 밥을 먹지 않는 나의 고약한 식습관은,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내게 쉽게 고쳐지지 않는 습관이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고기는 ‘삼겹살’. 어린 시절부터 나에게 있어 ‘고기’는 ‘삼겹살’이었다. 


고기라면 환장하는 나의 예닐곱 살 무렵, 어린 시절의 내가 기억하는 ‘고기 먹는 날’의 분위기가 있었다. 

나와 내 동생이 말썽을 피우지 않아 엄마가 기분이 좋아 보이시고, 아빠가 아침에 출근하시며 일찍 와서 같이 저녁을 먹자고 하시는, 그런 모든 게 맞아떨어지는 하루가 바로 ‘고기 먹는 날’의 분위기였다.


그런 ‘고기 먹는 날’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날, 식사 메뉴에 가장 큰 결정권을 갖고 있는 엄마한테 고기를 먹자고 이야기하는 타이밍 역시도 어린 내게 본능적으로 정해져 있었던 것 같다. 바로, 일곱 살인 나의 일과 중 가장 고생스러운(?) 태권도장 수업을 마친 시간이다. 태권도 수업을 마친 시간이면 엄마는 도장 앞으로 나와 동생을 데리러 왔다. 도장 수업이 끝나는 시간은 곧 저녁을 먹을 무렵, 오늘은 왠지 고기를 먹자고 말하는 나의 의견이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런 느낌이 들 때면 나는 엄마한테 태권도 수업을 열심히 해서 힘들다는 것을 온몸으로 어필하면서, “엄마, 우리 오늘 고기 구워 먹으면 안 돼?” 하고 물어봤다. 엄마의 손을 잡고 약간 몸을 배배 꼬면서, 호소하는 표정으로 엄마의 답변을 기다린다. 나의 분위기 파악이 적절했다면, 그리고 엄마가 특별히 먼저 준비한 저녁이 없다면  엄마는 “그래, 구워 먹자” 하고 흔쾌히 말씀하셨다. 그러면 방금 전에 온 몸으로 힘들다고 하던 내가 번쩍 뛰며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는 신나게 들떠서 엄마의 손을 잡고 엄마의 친구가 운영하는 정육점으로 향했다.


집에서 멀지 않았지만 가깝지도 않았던 그 정육점까지 가는 길의 풍경은, ‘고기 먹는 날’의 분위기에 맞게 너무나도 아름다워 보였다. 해질 무렵 붉게 타오르는 하늘은 나의 고기 먹는 날을 축하해주는 것만 같았으며, 저녁 시간을 가장 먼저 준비하는 거리의 가로등 불빛이 켜지면 기분마저 근사해졌다. 


“어서 와!”하고 엄마를 반갑게 맞아주는 엄마의 친구에게 엄마는 “삼겹살 두어 근만 줘!” 하고 기분 좋게 말씀하신다. ‘두어 근’이라는 애매한 표현은 두 분 사이에서 ‘두근 반’ 정도로 통했던 것 같다. 그럼 친구분은 ‘두어 근’에다가 “찌개에 넣어먹어” 하면서 뒷다리나 앞다리 살을 더 썰어서 넣어주시고는 했다. 


그렇게 사온 고기를 구워 먹기 위해, 우리 가족은 (특히나 나와 동생은) 일사불란하게 함께 고기를 먹는 준비를 했다. 식탁이 없던 우리 집에서 고기를 먹기 위해서는 먼저 상다리를 접어 바닥에 펼치고, 기름이 튀어도 치우기 좋게 날짜가 지난 신문을 가져다 상위를 모두 덮을 수 있도록 가지런히 깔아 두었다. 그리고 그 위에 ‘부루스타’와 고기 구이판을 올렸다. 고기 구이판은 보통 기름기가 빠질 수 있는 판을 사용했다. 기름이 빠지는 곳에는 종이컵을 두 개 포개 넣어 받쳐 준비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호기롭게 ‘철컥’하고 ‘부루스타’의 부탄가스를 연결 레버를 내리셨다. 그 소리를 들으면 왠지 “고기를 구울 준비가 되었습니다!”하고 부루스타가 말하는 것만 같았다. 


삼겹살에 곁들이는 양념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바로 ‘기름소금’이었다. 작고 하얀 사기 접시에, 가는 맛소금을 소복이 뿌리고, 그 소금이 반쯤 잠길 정도로 노란 참기름을 뿌리고 나면, 순후추 가루를 반쯤 뿌려 완벽한 ‘기름소금’을 준비했다. 


밥상 위에 가지런히 깔린 신문지 위로 부루스타와 고기판이 올려지고, 완벽한 기름소금이 준비가 되면 아버지가 뜨겁게 달구어진 구이판에 고기를 올리셨다.


“치이 이이이이 이 이익”


부루스타의 ‘철컥’ 소리가 설렘이었다면, 고기 올리는 ‘치익’ 소리는 황홀함 그 자체였다. 침을 꼴딱 꼴딱 삼키며, 불판 위의 삼겹살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러면서 거의 3초마다 한번 아빠에게 “다 익었어?”하고 물어봤다. “아니 아직”하고 열심히 고기를 구우시던 아빠가 “자 먹자!” 하고 말씀하시면 빠르게 불판 위로 젓가락을 움직였다. 갑자기 기름이 손으로 튀기라도 하면 ‘앗 뜨거워!’하면서도, 한참을 점찍어 놓은 불판 위의 고기 위로 젓가락을 움직였다. 삼겹살의 고기와 지방 부분이 분리되는 위치를 젓가락으로 잡고, 완벽히 예쁘게 준비된 기름소금에 처음으로 고기를 가져간다. 그렇게 잘 익은 고기를 기름소금에 찍는 순간의 나의 손놀림은, 매우 빠르지만 조심스러웠다. 


꿀꺽. 침이 가득 고인 입안으로 삼겹살이 들어간다. 혹시나 너무 뜨거울까 먹으려고 열던 입을 다시 오므려 ‘후’하고 불어 식힌다. 그리고 다시 입을 크게 열어 고기를 입에 넣는다. 뜨거운 고기에 듬뿍 묻은 참기름은 삼겹살의 기름과 어울려 더욱 풍부하고 고소한 맛을 입안 가득 풍긴다. 그 완벽한 고소한 맛은, 그토록 먹고 싶었던 고기를 먹는다는 안도감과 만족감과 함께 어린 시절의 나를 한껏 취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고소한 맛 뒤에는 곱고 가는 맛소금 입자의 부드러운 짠맛과 고기의 육향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 고기를 씹으면서 고소함과 짠맛, 그리고 고기 맛이 어우러진 입 안에, 또 하나 필요한 것이 있었다. 바로 따뜻하고 하얀 쌀밥. 방금 지어낸 따뜻한 쌀밥의 은은한 향이 아직 고기가 있는 입안에 들어오면, 완벽한 조합을 이루어 완벽한 ‘고기 먹는 날’의 맛이 완성되었다.


커가면서도 우리 가족의 ‘고기 먹는 날’은 계속되었다. 힘든 날이면 더욱 힘내자는 의미로, 기쁜 날은 축하하기 위해, 아무 일이 없더라도 그냥 고기가 먹고 싶은 날이면 우리 가족은 ‘고기 먹는 날’을 즐겼다. 


초중고 12년의 학교 생활을 평가받는 수능 시험을 치르고 돌아온 날, 집에는 완벽한 ‘고기 먹는 날’의 상이 차려져 있었다. 하나 다른 것이 있었다면 상 위에 초록색 소주병과 소주잔이 놓여 있었던 것이다. 


“수고했다. 아빠가 한 잔 따라줄게.” 


완벽하게 구워진 삼겹살에, 하얀 밥만큼이나 어울리는 어른의 맛을 배운 그날, 나는 ‘아빠’가 아닌 ‘아버지’와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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