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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도 Mar 23. 2022

마흔을 준비하는 마음

스무 살, 20년 뒤 내가 마흔이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지 못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라는 말이 있음에도, 나는 나이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어린 시절부터 나이 한 살로, ‘빠른’ 생일로 호칭을 정리하는 한국 사회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당연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말은, 나이를 핑계로 무언가 도전하는 것을 멈추려는 사람에게는 꼭 필요한 말이라고 생각이 된다.

그럼에도 ‘마흔’이라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숫자라 하기에는 의미가 다르게 다가온다.


내가 스무 살 때, 20년 뒤 마흔이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지 못했다는 문장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했던 말이다.

운이 좋게도(?) 나는 이 말을 18살 때 책에서 처음 읽었으며, 그러한 진리를 깨닫기 위해서 자각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정작 마흔을 앞둔 나이가 되어보니 그 문장의 의미가 와닿는다.


지금도 그 뜻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 문장은 단순히 당연한 자연의 법칙을 인지하라는 것이 아닌, 스무 살이 되면 내가 생각하는 ‘마흔’의 나를 그려보고, 그러한 마흔 살의 내가 되기 위한 준비를 20년 동안 해야 한다는 의미이지 않을까 싶다.


18살의 내가 그 문장을 처음 봤을 때는, ‘뭐야, 유명한 작가가 그런 것도 모르다니’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나의 스무 살은 대학 입학과 함께, 20년간 살던 정든 고향을 떠나 처음으로 홀로 서는 연습을 시작한 시기였다.

처음으로 서울이라는 도시의 화려함 뒤의 쓸쓸함과 차가움을 알았고, 소주의 쓴 맛과 인생의 맛이 조금은 닮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름 지식인층에 편입이 된다는 맹랑한 착각에 사로 잡혀 친구들과 한껏 술에 취해 세상과 삶에 대해 떠들기도 했고, 당장은 돈이 안 되는 다양한 공부들에 심취하기도 했다.

아르바이트부터 인턴 생활도 해보고, 회사에 신입사원으로 들어가 무언가에 치열하면서도 잡다했던 20대를 마무리하는가 싶더니, 다행히도(?) 결혼이라는 엄청난 내 인생 최대의 이벤트로 20대를 마무리하게 되었다.


서른 즈음의 설움을 느낄 새도 없이 나의 서른은 ‘아빠’라는 역할과 함께 시작되었다.

내 어린 시절의 가장 강한 아빠는 30대였다. 심지어 나는 우리 아빠가 정말 마음을 먹으면 하늘을 날 수 있다고도 믿었다 (정말 아빠한테 하루는 ‘아빠, 아빠는 점프를 높이 뛰어서 우리 집을 뛰어넘을 수 있어?’라고 물어봤고, 그 장단에 맞추어 우리 아빠는 ‘당연하지’하고 당장이라도 보여줄 것처럼 하셨다. 그런 아빠의 당당한 모습이 언제나 멋지다고 생각했고, 나 역시도 그렇게 강하고 멋진 아빠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회사일은 고됐지만, 20대 신입사원 때처럼 일할 수는 없었다. 나는 가족을 대표해서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고, 그것을 위해 나의 회사 생활은 더욱 치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직과 승진, 결혼과 출산으로 요새 또래에 비해 빠르게 시작된 나의 인생 스테이지는 회사 생활에서도 빠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회사 생활의 힘듦 따위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내 한 몸 희생하여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겠다는 생각으로 회사에서 어떠한 힘든 일을 겪어도 응당 내가 온몸으로 받아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크게 아팠다.

정말 더 이상 회사생활을 못 할 수도 있겠다는 겁이 날 정도로 아팠고, 더 이상 ‘빠르게, 급하게’는 내가 욕심내서는 안 되는 수식어가 되었다.


“내일모레면 마흔”이 된 시점 (2년 남았지만 보통 이 나이 되면 2년 남은 시기에 ‘내일모레’라고 하더라…), 나는 내 30대를 어떻게 마무리하고 40대를 맞이할지 고민한다.


과연 내가 20살 때 생각했던 마흔의 모습은 어땠는가, 실은 나는 마흔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살지는 않았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18살이 아닌 38살, 나는 문득 내가 20년 전 본 문장에 숫자를 더해본다.


“마흔, 20년 뒤 내가 예순이 될 것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지 못했다.”


여전히 그 평범한 진리는 깨닫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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