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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도 Aug 14. 2022

여전히 일희일비합니다.

영업사원으로 회사일을 시작하면서, 가장 힘든 것은 ‘마감’을 하는 일이었다.


물건이 잘 팔려서 제품 발주가 많이 들어오면 실적이 잘 나와서 좋고, 잘 안 팔려서 목표 실적을 채우지 못한다면 힘이 들었다.


그래도 마지막 날이 되어서 ‘마감’을 하고 나면 후련해진다.


목표를 채웠건 안 채웠건, 어쨌든 이번 달은 지나갔구나 하고 말이다.


정말 허무한 것은, 그다음 날이 되면 다시 성과가 0부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번 달 실적만 채우면 모든 게 끝날 것처럼 영업을 해서 팔았는데, 마지막 날 들어간 물건이 그날 다 팔렸을 일은 없다.


심지어는 마감을 하루 앞둔 날, 임원으로 부터 ‘다음 달 매출에 영향은 주지 않으면서, 가격 할인은 하지 않고, 거래처 재고 부담이 되지 않는 선에서 얼마치의 물건을 더 팔도록 해보라’는 지시를 받았다.


아니 그렇게 할 수 있는 실적이 있으면 내가 벌써 했지 이러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꾸역꾸역 거래처에 전화해서 한번 이야기해보는 것이 영업사원의 역할.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단기적인 실적을 채우기 위해 무리하는 것이 회사에도 장기적으로 좋지 않은 선택이었을 텐데, 항상 영업사원의 개인기로 목표 실적을 채우도록 하는 것은 회사가 너무한 처사가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언성이 높아진 거래처 바이어의 전화를 받고 나면 기분이 상한다.

을’의 입장에서 같이 언성을 높이고 싸울 수도 없고, 항상 ‘죄송하다’는 말을 달고 살았던 것 같다.


그 당시 친구들을 만나면 내 경추가 약 35도 정도 휜 것 같다는 자조적인 농담을 하고는 했다.


뭔가 항상 ‘갑’에게 굽신 거리며 사는 것이 나의 일상이 된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 생각해보면 제대로 된 영업도 배운 적 없이 회사에서 목표 실적만을 채우라는 미션만 받고 영업 전선에 뛰어들었던 내게 그런 시련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성공을 해도 내가 잘한 것이 아니라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들고, 실패를 하면 다 내 탓인 것만 같은 상태에 빠졌던 것 같다.


상황과 나를 분리해서 관점을 바꾸고 보려고는 했지만,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고 힘들었다.


힘들다는 소리를 달고 살았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옆 팀의 부장님이 팀원들에게 하신 얘기를 전해 들었다.


옆 팀에 있는 동기가 나처럼 영업을 하면서 힘들어하자,


“OO아, 영업사원은 일희일비하면 안 돼.”


라고 말했다고 한다.


실적이 좋아도 좋아할 것 없고, 실적이 나빠도 너무 힘들어하지 말라고. 어찌 보면 마감일이 지나면 다시 0부터 목표를 향해 달려가야 하는 영업사원의 숙명상 너무나도 필요한 말이었다.


그 옆 팀의 부장님은 신입사원인 내게는 ‘산’ 간은 분이었다. 어떤 시련이 있고, 거래처에서 문제를 제기해도 묵직하게 직접 나서서 해결을 하셨다.


“네, 저 OOO 부장입니다. 그런 문제가 있으셨다고요. 네 지금 저희 팀에서 유관부서 도움받아서 해결하고 있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같은 말이라도 부장님이 차분하게 말씀하시면 거래처 담당자의 화가 사그라드는 느낌이었다.


옆 팀이라 직접 그런 모습을 보고 배울 수 없는 점이 안타까웠다 (나의 팀장님은 그 당시 처음 팀장을 맡은 분이었고, “쪼기”만 한 분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힘든 일이 있을 때면, ‘그래, 일희일비하지 말자.’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고는 했다.


그런 습관 때문일까, 회사 일을 하면서 너무 기쁜 일이 있어서 내가 들떠있다는 생각을 하거나, 너무 힘든 일이 있을 때면 ‘일희일비하지 말자’하는 말을 스스로에게 해왔다.


하지만 요즘은 생각한다.


기쁜 일이 있으면 기뻐하고, 힘든 일이 있으면 그대로 힘들어하면 되지 않을까?


어쩌면 ‘일희일비’는, 영업사원이 써야 하는 슬픈 가면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냥 나는 일희일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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