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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도 Aug 13. 2022

좋은 리더는 'OOOO'역할을 잘한다.

마음속에 하나씩 잘 달아두기


"좋은 팀 리더의 역할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내가 다니던 외국계 소비재 회사의 글로벌 본사 임원이 한국에 왔을 때, 직원들과의 질의응답 시간에서 나온 질문이었다. 한국만큼이나 유통 산업 환경이 치열하기로 유명한 프랑스에서 영업사원으로 입사해서 임원까지 올라간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이런저런 질문과 답변이 오갔고, 질문의 막바지쯤 이런 질문이 나왔다.


누가 질문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 당시 팀장이 된 지 얼마 안 된 팀장님이 질문을 했던 것 같다. 나는 1-2년 차 주니어였기 때문에 그다지 관심 있는 질문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분이 얘기한 대답은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질문을 받은 그는, 잠깐 생각에 잠긴 듯 한쪽 검지와 엄지를 브이자로 만들어 턱을 받치며, 다른 손으로는 다른 팔꿈치를 받치고 짧은 생각에 빠졌다. 오랜 시간을 영업사원으로 산전수전을 다 겪으며 짙어졌을 눈가의 주름이 살짝 도드라졌지만, 눈빛만큼은 그의 빛나는 신입사원 시절의 열정이 남아있었다. 그리고는 무언가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엷게 띠고는 입을 열었다.


“저도 누군가에게 들은 이야기 입니다만, 이 만큼 좋은 표현은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너무 좋은 표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부끄럼 없이 그 얘기를 그대로 쓰겠습니다.”


지금까지의 답변을 하면서 한 번도 쉼 없이 답변을 해왔던 그 임원이, 뜸을 들이는 모습이 오히려 청중들의 이목을 끌었다.


“좋은 팀장은 ‘수도꼭지’ 역할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뜬금없이 수도꼭지라니,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그러자 그 임원은 의아해하는 사람들을 보며 예상했다는 듯이 빙그레 웃으며 답을 이어갔다.


“네 맞습니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그 수도꼭지입니다. 수도꼭지를 열리는 쪽으로 많이 열면 물이 쏟아지고 너무 잠그면 물이 나오지 않게 되죠. 팀장은 팀이라는 수조의 물을 관리하는 수도꼭지의 역할을 잘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뭔가 리더십을 어떤 인물에 비유하거나, 추상적인 리더의 모습을 묘사하면서 설명을 들은 적은 많지만 굉장히 직관적인 물건으로 표현한 것에 익숙지 않았던 것 같다. 무슨 말을 할지 잘 감이 오지 않았다.


“본인이 리드하고 있는 팀이 가진 수조가 얼마큼의 물을 채울 수 있는지 (Capacity), 그리고 그 물을 얼마나 빠르게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팀인지 (Capability)를 명확히 이해하고, 현재 채워져 있는 물의 양이 얼마고 팀에서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지를 잘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팀에서 처리할 수 있는 업무의 양이 꽉 차있다면 더 이상 업무를 주면 안 되겠죠, 그러면 수도꼭지를 잠거야 합니다. 반대로 팀에서 처리할 수 있는 용량이 남아있다면 수도꼭지를 더 틀어서 채워줘야 합니다.”


사실 팀을 리드하고 있지 않은 상황의 내가 들어도 명확하게 이해가 되었고, 좋은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하자 그 임원은 본인도 처음 대답을 들었을 때 그런 반응이었다는 듯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며,


“정말 무심한 팀장은 그냥 물을 틀어 놓습니다. 최대한 많이요. 팀이 처한 상황과 상관없이 말이죠. 넘쳐흐릅니다. 처리할 수 없는 물들이 철철 넘쳐흐르면서 넘치는 물과 망가진 수조를 고치기 위해서는 더 큰 노력이 들죠. 더 이상 팀 안에서 해결할 수 없는 상황까지 오게 됩니다.”


그 이야기를 듣자 생각나는 분들이 몇 분 있었다. 본인은 항상 편안한 표정으로 다른 팀에서 요청하는 업무들을 모두 받아 팀원들한테 넘긴다. 다른 팀에서는 너무 좋은 분이라고 평가하지만 그 일을 받아서 하는 팀원들은 항상 야근에 표정이 좋지 않다. 최소한의 가이드도 없이 업무만 계속 들어오다 보니 그 팀에는 유독 번 아웃된 동료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팀 밖에서의 평판은 좋으니 어디 가서 불만이라고 얘기도 못 하고 난처해하는 사람들이 생각났다.


그 임원은 마치 우리가 무슨 생각을 알겠다는 듯한 눈빛으로 눈을 찡긋거리더니, 이야기하는 것이 재미있는데 본인에게 주어진 시간이 충분한지 다시 한번 체크를 하는 듯 빠르게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하더니 답변을 이어갔다.


“무조건 수도꼭지를 잠그는 분들도 있습니다. 팀원들에게 일을 시키는 것이 불편해서 그러는 분들도 있고, 팀원들이 못 미더워서 직접 처리하는 분들도 있죠. 아니면 다른 팀에서 오는 업무를 무조건 방어적으로 받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이유에서건 이런 팀장도 좋지 않아요. 다른 팀에서 불만이 가득할 수도 있고, 본인이 혼자서 처리하다 보면 수도꼭지가 터지거나 망가질 수 있죠. 일을 하지 않는 팀원들은 처리를 하지 않다 보니 본인들의 능력의 범위와 능력치가 (Capacity & Capability) 더 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안 쓰면 줄어들죠. 신뢰를 받지 못한다는 느낌도 있고요.”


팀원들이 일을 하지 않으면 팀원들은 편한 것 아닌가?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팀원들에게 일을 맡기지 못하고 혼자서 끙끙거리며 힘들어하던 어린 팀장 시절의 나도 생각났다.


“그래서 좋은 팀장은 수도꼭지를 잘 조절합니다. 팀에 물이 가득 찼을 때는 본인이 직접 처리하던지, 도움을 주던지, 다른 팀에 협조 요청을 하는 식으로 하면서 수도꼭지를 잠급니다. 반대로 팀에서 더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 때에는 수도꼭지를 열어서 더 처리할 수 있도록 합니다.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며 (Building capability), 처리할 수 있는 업무의 범위도 늘리면서 말이죠 (Building capacity). 그리고 회사에서는 그 팀의 능력을 높이 평가합니다. 팀에 대한 평판이 좋아지고 신뢰가 쌓입니다 (Building reputation & credibility). 그러면서 더욱 큰 수조를 관리할 수 있는 리더의 역할을 주게 되겠죠.”


리더와 팀의 모습을 굉장히 단순한 물건인 수도꼭지와 수조로 표현했지만, 지금껏 들어왔던 표현 중 가장 직관적으로 와닿는 설명이었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 지금 그 설명에 나의 경험을 통한 내용을 좀 더 더하자면, 수조 안의 온도를 조절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의 온도는 팀의 문화라고 생각한다. 팀의 의지가 차갑게 식어있다면 더운물을 틀어 의지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 하지만 분위기가 너무 뜨거워서 서로 감정을 상하거나 다른 수조에도 좋지 않은 분위기로 만들 수도 있다고 느낀다면 한 발짝 물러서서 쉬어갈 수 있도록 서서히 시원한 물을 틀어서 조절을 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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