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or Fati! 아모르파티!
너의 운명을 사랑하라는 뜻의 라틴어 문장이다.
운명을 사랑하라는 말이 무슨 뜻일까?
단순히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 살라는 뜻은 아닌 것 같다.
운명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운명이 인생이라면 인생은 주어진 환경 + 본인의 노력 +기회와 행운 정도의 요소로 구성된다고 생각한다.
주어진 환경은 모두가 다르다. 그리고 안타깝지만 주어진 환경에 따라 본인의 노력을 하게 되는 계기와 크기도 다르고, 환경에 따라 기회와 행운이 다른 주기와 크기로 오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환경이 좋고 나쁜지, 주어지는 기회와 행운이 얼마나 공평하고 불공평한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너무나도 불우해 보이는 환경에서도 역경을 딛고 성공하는 스토리는 내가 일일이 언급하지 않아도 아주 많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반대로 누구나 부러워할만한 환경에서 자라면서도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반대의 이야기만큼 많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본인의 노력으로 주어진 환경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하고, 노력하는 것에 따라 주어지는 기회와 행운이 달라진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노력할 마음조차 생기지 않는 힘든 환경과, 번번이 좌절만 주는 기회가 더 이상 기회로 느껴지지도 않는 사람에게 노력을 통해 환경을 바꾸고 기회를 찾고 만들으라는 이야기는 때로는 너무 가혹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내가 지금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 내 삶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것인가?'
나 스스로 이러한 막연한 질문들에 스스로 답을 찾아왔지만, 스스로에게서 답을 찾지 못하고 있을 시기였다.
내가 앞으로 어떤 일을 하는 것이 좋을지, 지금 하는 일이 나의 커리어 적으로 도움이 되기는 할지, 모든 것이 불투명해 보이기만 했다.
나이가 서른 중반이 되어서 두 아이를 가진 아빠로서 이런 고민을 해도 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까지 들기도 했다.
그러던 중 회사에서 단체휴가를 쓰게 되었다.
내가 원하지 않아도 회사에서 전 직원이 함께 휴가를 쓰는 여름휴가의 시기였던 것이다.
원하는 휴가도 아니었고, 아이들은 여전히 유치원에 나가야 하기 때문에 휴가라고 해서 어디 멀리 떠날 수 있는 일정도 아니었다.
그야말로 애매한 그런 정도의 자유시간이 주어진 어느 하루였다.
특별히 어디 떠나지도 못하는 애매한 시간 동안 우리는 아이들이 올 때까지 근처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오전에 함께 도서관에 가서 각자 읽고 싶은 책을 골라서 오래간만에 장어구이가 먹고 싶다고 마음이 맞아 근처에 장어가 맛있다고 하는 식당을 찾아가 장어구이와 장어탕이 함께 나오는 세트를 먹었다.
식사를 마친 후, 근처 한가해 보이는 처음 보는 커피숍에 앉아 빌려온 책을 읽었다.
평일 이른 오후에 누군가 찾아와서 커피를 마시기에는 애매한 위치에 있는 주말에는 꽤나 붐빌법한 예쁜 카페였다.
카페에 들어가서 커피를 시키고, 미국 드라마에서 게으른 아저씨가 앉아 티브이 리모컨을 누르며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며 게으름을 떨 것만 같은 소파를 골라 앉았다.
그리고 나는 그 자리에서 단숨에 이 책 한 권을 모두 읽고 말았다.
책은 더 이상 나빠질 것이 없어 보이는 어느 불우한 청년과 나이 많은 어느 할아버지와의 만남으로 시작된다.
삶을 비관하며 희망 없이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청년에게 낯선 할아버지는 책을 몇 권 던져두고 간다.
시간이 흘러 청년은 책을 통해 삶을 바라보는 관점을 변화하기 시작하고, 청년의 삶은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이 청년의 삶만 바꾼 것이 아니었다.
동네 사람들의 걱정과 고민에 대해서 넓은 오지랖으로 참견하며 하나씩 해결을 해줬던 것이다.
사실 이 할아버지가 해준 것은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고, 어떤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에게 생각하는 관점을 바꿔준 것뿐이었다.
같은 상황이라도 다르게 보고, 다다를 수 없는 큰 변화보다는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그런 변화들을 추천했다.
그 관점을 바꾸는 방법은,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 ‘여기’라는 것을 인식시켜 주는 것이었다.
너무나도 많은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 책에서는 실제 이웃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다양한 문제들을 극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실제 적용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해준다.
그러고 나서 나의 하루를 돌아봤다.
‘쓰고 싶지 않은 휴가를 쓰면서 어디 놀러 가지도 못하고 동네에서나 돌아다니는 시시한 하루’
‘낯선 지방 도시에서 나의 커리어는 어디로 흐를지 모르는 불안한 시기’
이 책을 읽기 전 오늘 하루를 대하는 나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서 이렇게 바뀌었다.
‘생각지도 않은 휴가에 아이들이 잠깐 유치원 간 사이 동네 도서관에서 좋은 책을 만나 아내와 맛있는 점심을 먹고 편안한 카페에서 여유를 즐기는 하루’
‘평온한 동네에서 나의 커리어에 대해서 잠시 내려놓고 나의 남은 커리어에 대해서 계획하고 생각해볼 수 있는 여유로운 시기’
주어진 환경을 바꿀 수는 있지만, 주어진 환경과 처해진 상황을 보는 관점은 달리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바뀐 관점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기회와 운을 포착할 수 있고, 우리의 삶은 조금씩 나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날부터 나와 아내의 삶의 자세가 바뀌었다.
지난 과거에 대한 후회나 미련,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보다는 현재 우리의 삶에 집중하고 행복하게 즐기며 살자는 것으로 말이다.
나의 인생을 내가 온전히 컨트롤할 수 있는 것은 지금 이 순간뿐이다.
내 삶이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은 결국 지금 이 순간 행복하게 지내는 방법밖에는 없다
아참,
책의 제목은 '존스 할아버지의 낡은 여행 가방'으로, '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로 유명한 작가 앤디 앤드루스의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