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근무 중이던 외국계 회사에서, 채용하고 싶은 인재상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요소들로 정리한 적이 있다.
회사의 직원들과 함께 일하고 싶은 동료의 모습, 임원들이 뽑고 싶고 미래가 기대되는 인재들의 모습에서 공통적으로 뽑은 요소 중의 하나가 바로 ‘험블(Humble)’하다는 요소였다 (외국계이다 보니 어떤 키워드를 뽑을 때 한국적 의미보다는 영문 그대로의 느낌을 살리는 키워드를 주로 사용하고는 했다).
그 당시만 해도 사람들이 Humble하다고 하면 왠지 꾸미지 않은 ‘수수함’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인재상에서 ‘Humble’이라는 표현을 써서 의아하게 생각했었다.
보다 정확하게 한국말로 해석하자면 ‘겸손하다’는 표현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겸손함’이라는 덕목이야 한국사회에서 꽤나 오랫동안 미덕이 되어 왔는데, 외국계 기업에서도 ‘Humble’이라는 덕목이 미덕이 될 줄이야.
아주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겸손하다’는 표현도 ‘Humble’의 느낌을 온전히 표현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한국의 인재들이 아무리 한국에서 뛰어나도 외국에 가면 너무 겸손하기 때문에 자신감이 없어 보여서 인정을 받지 못한다거나, 원래 가진 실력을 모두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는 했고, 여러 사례와 경험을 통해 실제 지나친 겸손함 때문에 손해 아닌 손해를 보는 경우도 보았다.
여기서 바로 겸손과 ‘Humble’의 차이점이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보통 아는 ‘겸손함’은 ‘알아도 모르는 척, 먼저 나서지 않고 누군가 물어줄 때까지 기다리는’ 느낌에 가깝다.
하지만 Humble 함은 나서지 않고 가만히 있는다는 소극적인 자세와는 별개의 개념이다.
실제로 일하면서 회사에서 원하는 Humble 함이란, ‘본인이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새로운 기회를 적극적으로 찾아보고 도전하는’ 자세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이는 ‘가만히 있는’ 행위를 ‘가만히 있으면 모른다’로 보느냐, ‘가만히 있으면 안다’라고 보느냐의 차이에 있다고 생각한다.
겸손함은 ‘알아도 모른 척’이 미덕인 사회와 환경에서 미덕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빠른 정보공유와 의사결정이 필요한 회사의 업무 환경에서 누군가 물어봐줄 때까지 가만히 있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반대로 정확한 근거도 없이 본인의 단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를 명확한 사실처럼 주장하거나,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확인된 것처럼 공유하는 것 역시도 회사에서 업무를 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결국 여기서 나온 이야기들을 모아,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Humble 한 사람’의 모습을 정리해보자면 – 본인이 알고 모르는 것을 명확히 알고 구분할 줄 알고, 모르는 것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배우고 수용하며 아는 것에 대해서는 함께 먼저 공유하여 도움을 주는 사람 –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Humble’이라는 표현에 ‘Proactive 적극적인’ 요소가 합쳐졌다고 봐야겠지만, 적극적인 자세 없이 Humble 하기만 한 사람은 그냥 ‘좋은 사람’으로만 끝날 가능성이 있다.
앞서 말한 지나친 겸손함 때문에 손해 아닌 손해를 보는 겸손한 한국인에 대해서도 이러한 ‘Proactiveness 적극성’과 연결하여 설명할 수 있다.
Humble 하면서 어떻게 적극적일 수 있을까? 겸손하면서 적극적인 사람은 자칫 ‘의욕만 앞서는 사람’처럼 보일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Confidence – 자신감’이 더해지면서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Humble 하다는 것 – 그중에서도 본인이 모르거나 할 줄 모르는 것에 대해서 인정하는 부분이 어떻게 자신감 있게 행해질 수 있는지 의아할 수도 있다.
Humble 하면서 자신감 있는 태도에 대해서 좀 더 풀어서 설명을 하자면 ‘나는 지금은 잘 모르지만 앞으로 배울 수 있고 시도를 하여 성공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회사에서 회의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자.
회의에서 결정권을 가진 한 사람이,
“아무도 모르는 겁니까?”
라고 물었다.
그런데 정말 아무도 대답이 없다.
그러면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 현실인 것이다.
그 자리에서,
“현재는 우리 모두 잘 모르지만, 이런 방법을 통해서 언제까지 문제에 대한 이해를 하고 해결책을 찾은 뒤 약 얼마 뒤에는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라고 소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까지 설명한 회사가 원하는 ‘Humble 한 인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전히 Humble 한 건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