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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도 Nov 26. 2019

스무 살, 20년 뒤 마흔이라는 평범한 진리

미래의 기억

열일곱 여름 - 평범한 진리


'내가 스무 살 때, 내가 20년 뒤 마흔 살이 될 것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지 못했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 즈음인가, 서점에 갔다가 우연히 보게 된 문구로,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의 책 띠지에 쓰여있는 문구였다. 실제 책 내용에는 정작 그런 문장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오히려 책 한 권보다도 그 한 문장이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머릿속에 남아있다.






열아홉 - 어른이 되기 하루 전날 밤


열아홉 살의 마지막 날 밤. 나는 '19살의 나와 20살의 나는 하루 차이에 바뀌는데, 무엇이 바뀌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하며 잠자리에서 생각을 정리해본 기억이 있다.

그렇게 되고 싶었던 어른이 곧 될 텐데, 도대체 뭐가 바뀌는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 끝에 내렸던 결론은 '어른이란, 내가 책임져야 할 몫이 더 커지는 것'이라고 어른이 되는 것을 스스로 만족스럽다는 느낌을 갖고 정의했다. 왠지 모르게 '어른'이라는 타이틀이 조금은 무거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자고 일어나니 어른이 되어 있었다.






스물 - 경험주의자


실제로 스무 살이 되며 대학 진학을 하며 처음으로 집을 떠나 나와 살게 되었고, 실제로 많은 책임들이 어른이라는 이유로 더욱 크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시기의 나는 스스로를 '경험주의자'라고 지칭했고, 간접 경험이 아닌 직접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파악했다. 스스로의 생각 반에 어디서 주워들은 표현으로 나머지 반을 그럴싸하게 합리화했던 것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런 게 스무 살이니까, '경험주의자'라는 이름표를 가슴에 자랑스럽게 달고 정말 여기저기 싸돌아다니며 다양한 경험들을 했다. 내가 생각하는 멋진 마흔 살은, 젊어서 남들이 해보고 싶지만 이런저런 이유에서 해보지 않은 경험들을 마다하지 않으며, 그것을 통해 배운 것을 삶의 내공으로 갖고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스물둘, 셋 그리고 넷 - 긴긴 여름의 날


'아무도 나를 알지 못하는, 혹은 내가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곳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얼토당토 않은 생각을 종종 했었다. 책에서 봤던 경험주의자들의 삶에서 오는 무용담이 보통 그런 곳에서 생겨났기 때문이다.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기회를 얻어 적도 부근의 시골 동네에서 나는 완전히 새로운 언어와 문화를 배우며, 모르는 사람들과 사회에 뒤엉커 살았다. 하루에 12시간씩 전기가 나가는 동네에서, 하루 온종일 비가 오는 날이면 딱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재미없는 책들도 수차례 빠져들어 읽게 되고, 촛불이 얼마나 위대한 빛을 주는지, 10년 뒤의 내 삶보다는 당장 오늘과 내일의 안녕이 중요했다. 책에서 본 흥미진진한 모험 가득한 삶은 사실 굉장히 힘들고 외롭고 괴롭기도 하며, 어디까지나 그것을 이겨내었을 때 무용담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때 깨달은 것은, '인생 2박 3일 살고 말게 아니구나'. '천천히 살자'라는 것이었다.






스물다섯 - 복학생


'모든 것이 시작되고, 끝나가는 소리가 들리는 도시'로 돌아왔다. 하지만 나의 템포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나의 템포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도 이미 깨달은 상태였다. 시작되는 것을 알리는 것은 곧 끝나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의미하며, 끝나가는 소리가 지나면 또 다른 시작을 알리는 소리가 들릴 것이기 때문에, 나는 천천히 기다려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이 시기를 즐길 줄 모른다면 미래의 어떠한 성취에도 만족하지 못할 것이고, 내 인생은 그렇게 끝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냥 천천히 즐기자고 생각했다.






서른 - 애아빠


서른 살, 애아빠가 됐다. 이제 나 혼자가 아닌 더 많은 사람들이 나와 삶을 의지하고 살아가게 되었다. 부담감도 컸지만 기뻤다. 삶의 하루하루가 새로운 활력이 되었다. 힘들었지만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삶의 원동력이 생겼고, 부모님을 이해하게 되었다. 정말 어른이란 이런 거구나. 열심히 살았지만 정신적으로 지속되던 방황도 멈추기 시작한 시기였던 것 같다. 이제 마흔까지 10년 남았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서른 하나 - 병원 침대에서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는데, 병원신세를 지게 되었다. 너무나도 달려왔던 것 같다. 가족을 위한다는 생각으로 맹목적인 충성을 다했던 회사의 차가움을 느꼈다. 갑자기 내가 경제능력이 없어지게 되었을 때, 가족들은 어떻게 하지? 내 삶은 어떻게 변하는 거지? 고민을 시작했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고민이었다. 괴롭고 힘들었고, 일어나야 하는 것을 알았지만 일어나도 또 쓰러질 것 만 같았다. 온몸을 지배하는 피곤함은 가실 기미가 느껴지지 않았고, 너무 힘들었다. 다행히 몸은 회복되었다. 회사에 의지하기보다는, 언제든 회사 밖에서도 스스로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서른셋 - 잃어버린 별들의 도시


10년 만에 또 다른 도시에서 살게 되었다. 모두가 더욱 바쁘고 더 치열하게 사는 도시. 수많은 언어가 존재하고, 수많은 문화가 뒤엉켜 있었다. 그곳에서 '나'를 찾기는 힘들었다. 내가 동경했던 도시지만, 도시의 지친 사람들에게 현실은 허울뿐인 자부심으로 짓누르는 절망감을 밀어내는 것이 일상인 곳이었다. 배려를 잊은 도시의 삶은 나를 힘들게 했다. 많이 배웠고, 즐기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돌이켜보면 혼돈의 시작될 무렵, 도시의 메말라가는 마지막 매력을 경험하고 무사히 빠져나왔다. 그곳을 생각하면 항상 유명한 영화 음악 두 곡이 떠오른다. 'City of Stars'와 'Lost Stars'






서른다섯 - 미래의 기억


'내가 스무 살 때, 내가 20년 뒤 마흔 살이 될 것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지 못했다.'

이 문장을 문득 떠올리며 이 글을 쓰고 있다. 내가 이끌었던 나의 삶의 끝에 내가 기대했던 나의 모습은 무엇이었을지, 나의 미래를 기억해본다. 그리고 이제 곧 네 번의 해가 가면 맞이할 나의 마흔 살을 믿기지 않지만 마주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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