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가 아닌 진정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서른 중반에 접어들면서 ‘젊은' 친구들과 함께 회사에서 일을 하게 되고, '나는 꼰대일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게 되었다. 부하직원에게 무언가 이야기를 하고, 그의 반응을 보고, 다시 그 반응을 기억해보면 그 나이 대의 내가 생각났다. 그 당시 나는 지금의 내 나이 대의 상사에게 어떤 말을 듣고 어떤 반응을 했고 어떤 생각을 했던가?
한 줄로 정리하자면 '기성세대 중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해서 자신보다 지위가 낮거나 나이가 어린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이른바 꼰대에서 파생된 '꼰대질'을 하는 사람'으로 표현할 수 있겠다. 다만 '기성세대'에 국한하기보다는 같은 세대 안에서도 나이나 지위에 따라 이러한 '꼰대질'은 존재하기 때문에, 세대 간에 발생하는 것만으로 보기는 어렵다.
꼰대의 어원은 두 가지의 주장이 있다.
첫 번째는 '번데기'의 영남 사투리인 '꼰데기'가 어원이고, 번데기처럼 주름 자글자글한 늙은이라는 의미에서 '꼰데기'라고 부르다가 '꼰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백작'을 뜻하는 프랑스어 '콩테(Comte)'의 일본식 발음으로 '꼰대'가 되었다는 주장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이완용 등 친일파들은 백작, 자작과 같은 작위를 수여받으면서 스스로를 '콩테'라고 불렀는데, 이를 비웃는 사람들이 일본식 발음으로 '꼰대'라 불렀다고 한다. 즉 '이완용 꼰대'라고 부른 것에서 꼰대라는 말이 시작됐고, 친일파들이 보여준 매국노와 같은 행태를 '꼰대 짓'이라 했다는 것이다.
(출처: 시사상식사전, pmg지식엔진연구소, 박문각)
현대의 뜻이든 과거의 어떤 어원이든 이를 표현당한 대상은 기분 좋아할 만한 뜻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래 꼰대 체크리스트로 본인이 꼰대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한번 알아보자.
1. 사람을 만나면 나이부터 확인하고, 나보다 어리면 반말을 한다.
2.”ㅇㅇ란 ㅇㅇㅇ인 거야”하는 식의 진리 명제를 자주 구사한다.
3.”나때는 말이야” 라는 말을 자주 한다.
4. 나보다 늦게 출근하는 후배가 거슬린다.
5. 자유롭게 의견을 말하라고 했는데 나중에 보면 내가 먼저 답을 제시했다.
6. 후배, 부하 직원의 옷차림과 인사 예절도 지적할 수 있다.
7. 내가 한때 잘 나갔다는 사실을 알려 주고 싶다.
8. 연애, 자녀 계획 등의 사생활도 인생 선배로서 답을 제시해 줄 수 있다.
9. 회식, 야유회에 개인 약속을 이유로 빠지는 사람을 이해하기 어렵다.
10. 내 의견에 반대한 후배는 두고두고 잊지 못한다.
몇 개가 본인에게 해당하는지, 맘 상할 필요 없이 아래의 권고 해석을 보자.
-0~2개:위험도 ‘양호’. 당신은 성숙한 어른
-3~5개:위험도 ‘주의’. 당신은 꼰대가 되어가는 중
-6~8개:위험도 ‘경고’. 당신은 이미 꼰대
-9~10개:위험도 ‘고위험’. 당신은 완벽한 꼰대. 자숙 시간 필요
물론 이러한 체크리스트의 질문을 보면서도 '명확하지 않아', '상황에 따라 다르지',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거 아니야?'라는 질문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해석의 여지를 남겨 두도록 하겠다. 그것으로 위험도가 낮아지게 된다면, 그것으로 본인에게 위안이 된다면 말이다.
한 토크쇼에서는 우리 사회에서 '꼰대'라는 표현이 이슈가 된 것은 가까운 과거까지 우리가 '소통'을 중시했고, 문화적인 토대가 없이 - 말하자면 나이가 어리거나 지위가 낮은 사람이 쉽게 'NO'를 할 수 없는 문화에서 '소통'을 하다 보니 위에서 아래로 일방적인 '소음'이 발생했고, 이에 대한 부작용으로 '꼰대'라는 토픽이 이슈가 되었다고 분석하였다. 예컨대, 각 회사마다 직함을 부르지 않고 '~님'하는 식의 소위 말하는 '소통'을 위한 피상적인 문화적 정책을 펼쳐 오면서 이러한 부작용들이 '꼰대'라는 카테고리로 묶여서 이슈화 된 것은 놀랍지 않은 것 같다.
그럼 문제의 근본적 원인을 불완전한 '소통'의 강조라고 본다면, 해결책 또한 명확하다. 진정한 '소통'을 하는 것이다. 다만 말을 줄이고, '귀 기울이는 것'에 더욱 집중하여야 한다. 그러다 보면 이해 못하는 부분이 생길 것이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져보자. 당장 '왜'라는 부분에 깊은 대답을 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다그치지 말자. 본인은 이미 '왜'라는 것으로 그 사람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전달했고 (물론 얼마나 진정성이 있었는지에 따라 그러한 노력이 얼마나 받아들여졌는지는 다른 문제다), 그 '왜'에 대한 스스로의 질문과 또 '꼰대'들의 이해가 모여 '꼰대'를 정말 원래의 뜻대로 안 좋은 뜻으로만 쓰이는 날이 올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나이가 들수록 입은 무겁게, 그리고 진심으로 궁금해서 조심스레 물어보는 한 마디 '왜', 그리고 그것에 대한 이해가 스스로 '꼰대'에서 벗어나 진정한 '소통'을 하는 '어른'으로 변화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