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나리'에서 가장 기억이 남았던 짧은 대사
작년에 한창 영화 미나리가 각종 시상식에서 상을 받으며 유명세를 탈 때였다.
마침 OTT서비스에서도 볼 수 있길래 집에서 아내와 함께 영화 미나리를 한번 볼까 했다.
불과 몇 년 전, 나와 아내도 두 아이들을 데리고 낯선 외국 땅에서 정착하기 위해 고생을 했던 경험이 있었던 터라 젊은 부부가 척박한 미국 땅에서 살아가기 위해 갖은 고생을 모두 하는 장면을 보면 너무나도 공감이 되기도 했다.
돈을 아끼기 위해 물길을 찾아내려고 생각을 하는 모습이나,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선택을 힘겹게 하는 모습 등이 결코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보던 시기는 내가 지방에서 근무를 하다가 서울로 근무지를 급히 옮기게 되던 시기였다.
회사 발령부터 아이의 이사까지 약 3개월 동안 살던 전셋집에서 나와 집값이 급등하던 시기의 서울로 올라와야 하는 상황이었다.
지방 도시도 집값이 급등하기는 마찬가지, 만기전 전셋집의 주인은 새로운 세입자에게 전세보증금을 올려 받기 위해 높은 호가를 내걸고 버티고 있었다.
당장 이 집이 안 나가면 전세 보증금도 돌려받지 못한 채로 서울에서 다른 전셋집을 구해야 하는 상황.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이런저런 생각과 고민에 나는 잠을 못 이루는 시기였다.
오랜만에 맥주 한 캔 하며 영화나 보자고 아내와 함께 본 영화 '미나리'는 보는 내내 몰입하며 봤지만 그들의 힘든 마음에도 너무 몰입이 되어 계속 무언가 편한 마음으로 볼 수 없었다.
"엄마, 내가 어떻게든 해낼 거야, 엄마는 걱정하지 마."
이런 힘든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강한 의지를 내보이는 딸에게 엄마는 같이 빨래를 개며 지나가는 말로 아무렇지 않게 대답한다.
"너무 애쓰지 말어."
계속해서 마음 졸이며 보던 영화, 아니 아마 나는 영화를 보기 전부터 계속 마음 졸이고 애쓰며 살고 있었다.
그런데 그냥 저 무심코 던진 한 마디가 내게는 너무 와닿았다.
가끔 주변에서 어른들이 비슷한 말씀을 하실 때가 있다.
하지만 애쓰고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는 그 말이 잘 안 들리기도 한다.
그런데 그날은 문득 그 말 한마디가 내게 강하게 다가왔다.
애쓴다고 될 일이면 벌써 됐겠지만, 삶을 살다 보면 아무리 애써도 되지 않는 일도 있다.
열심히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어떤 인생의 흐름을 흘러가는 대로 받아들이면서 살다 보면 삶의 방향이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가끔 삶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기도 하지만, 새로운 방향에서 또 새로운 길과 가능성을 만날 수도 있다.
그 후로 내가 살던 전셋집은 집주인이 만족할만한 금액으로 새로운 세입자를 받게 되었고, 새로운 전셋집도 잘 알아보고 문제없이 들어와 잘 살고 있다.
영화 미나리가 드라마틱하고 뚜렷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생각한다.
분명 영화 속 주인공들은 결국 잘 살았을 거라고.
생각했던 대형 농장이 잘 되었을 수도 있고, 다른 도시로 옮겨서 야채 가게에서 일손을 돕다가 야채 가게를 인수해서 야채 가게 사장이 되었을 수도 있고, 자식들은 잘 커서 미국에서 성공한 삶을 살아갈 수도 있고 말이다.
물론 그냥 다 접고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잘 살았을 수도 있다.
너무 그렇게 애쓰지만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