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도 Apr 30. 2023

시카고 프로페셔널 웨이터 할아버지와 함께한 한 끼 식사

"젠틀맨, 우리 식당에는 와본 적이 있나요? 없으시다면 제가 메뉴를 좀 소개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우리 식당은 해산물이 유명하죠, 전채요리(appetizer)로 나오는 굴은 두 가지, 콜롬비아 근처 카리브해와 버지니아 바닷가에서 잡아온 두 종류가 오늘 준비 되어있습니다."


손님이 많은 식당에서 나이가 지긋한 백발에 안경을 쓰고, 나비넥타이에 슈트까지 차려입은 '할아버지' 웨이터분이 우리에게 음식을 설명해 주신다.


가게는 몇십 년은 족히 지난 브라운 계열의 나무와 가죽 가구들로 채워진 전형적인 고풍스러운 레스토랑, 마치 영화의 한 장면 속에 있는 느낌이다.


"사실 우리 레스토랑은 스톤크랩이 유명합니다. 조각 수에 상관없이 모두 무게는 1파운드이기 때문에 양은 같습니다. 저희 가게 만의 특제 머스터드소스와 함께 먹으면 아주 맛이 있어요. 개인적으로도 저도 아주 좋아하는 메뉴입니다. 우리 식당 이름에 '시푸드'가 들어가지만 사실 스테이크도 아주 맛있습니다. 뉴욕스트립도 맛있지만 오늘은 할리벗 스테이크도 추천드리고 싶군요."


이야기한 모든 메뉴를 먹고 싶어 진다. 실제로 눈앞에서 설명을 하면서 조리 장면을 손짓으로 빠르게 흉내를 내며 직접 요리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추천해 준 메뉴 중 굴과 스톤크랩, 뉴욕스트립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스테이크와 함께 곁들이는 야채는 필요 없으신가요? 감자도 괜찮지만 레몬 버터소스와 함께 먹는 튀긴 아스파라거스도 추천합니다."


음식을 설명해 주고 주문하는 과정 자체가 요새는 터치패드에서 누르기만 하면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한 참을 말로 설명해 주는 것은 누가 봐도 비효율적이다. 하지만 이 웨이터 할아버지의 설명은 한 편의 퍼포먼스를 보는 듯 너무나도 즐거웠다.


이윽고 메뉴가 나왔다.


"젠틀맨, 주문하신 굴이 나왔습니다. 이쪽이 카리브해에서 온 굴, 이쪽이 버지니아 굴입니다. 가운데 소스는 우리 식당에서 직접 만든 소스인데, 샴페인 식초를 얼려서 소르벳으로 만들고 약간의 향신료를 넣었습니다. 굴과 곁들여 먹기 전에 따로 맛보고 기호에 맞게 드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저는 아주 좋아하지만 약간 맛이 강하다고 느끼시는 분들도 있거든요."


그리고 다른 직원이 스톤크랩을 갖고 나왔다.


"자, 스톤크랩은 도구 없이 손으로 먹는 것이 허용되는 음식 중 하나겠죠. 만약 제가 해드려도 괜찮다면, "


하고 잠깐 말을 멈추더니, 접시에 담김 스톤크랩 조각을 개인 접시에 덜어주고 레몬 조각도 올려줬다.


"자 이렇게 놓고 레몬 즙을 위에 뿌리고, 손으로 까서 우리 식당이 자랑하는 머스터드소스를 찍어서 드시면 아주 맛있게 즐기실 수 있습니다. 맛있게 즐기시기 바랍니다."


'젠틀맨'으로 시작하는 음식의 설명은 마치 내가 영국 '킹스맨'의 주인공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음식을 먹는 과정 자체가 매우 중요하고 엄청난 임무처럼 우리에게 자세하고도 친절하게 그리고 부담스럽거나 과하지 않게 설명을 해주었다.


"자, 다 드셨다면 이제 스테이크가 나왔습니다."


아까 스테이크를 주문할 때 슬라이스 해주는 것을 요청했는데 통째로 나왔다. 명백한 식당 측의 실수다. 할아버지 웨이터는 음식을 갖고 나온 옆의 웨이터를 아주 빠르게 살짝 쳐다보더니, "스테이크 슬라이스로 주문하셨는데..."하고 작고 빠르게 말하더니, 우리를 보며,


"오 이런, 젠틀맨, 죄송하지만 스테이크를 슬라이스로 주문하셨는데, 저희의 실수로 그만 통째로 나왔군요. 괜찮으시다면 이대로 드려도 될까요? 아니면 슬라이스를..."


순간 슬라이스를 원했지만, 할아버지의 아주 정중한 태도와 사과 때문에 굳이 번거롭게 하고 싶지는 않아 그냥 달라고 했다.


"오 감사합니다. 그럼 설명을 해드리죠, 스테이크는 이미 기본적으로 맛있게 시즈닝이 되어 있지만 좀 더 풍미를 원하신다면 함께 있는 이 소금을 살짝 뿌려드시면 좋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제가 좋아하는 방식이기도 하고요. 이 소금은 단순한 바다소금이 아닙니다. 샬롯과 페퍼, 그 외에 다른 향신료를 넣어 스테이크를 더욱 맛있게 즐기실 수 있습니다."


역시, 추천해 준 방식대로 스테이크를 먹자 너무나도 맛있었다. 마치 음식을 먹는 일련의 과정을 숙련된 할아버지께 교육을 받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윽고 스테이크를 다 먹고 나자 수프가 나왔다. 게로 만든 비스크 수프가 작고 하얀 수프 그릇에 담겨 나왔다.


"젠틀맨, 정말 완벽한 타이밍에 수프가 나왔습니다. 약간의 후추를 위에 갈아서 뿌려드리시기를 원하신다면."


"Yes, please"하고 짧게 대답하자,


"좋습니다. 그럼 잠시"


하더니 능숙한 솜씨로 슥슥슥- 후추 그라인더로 수프그릇 위에 정확히 후추 가루를 안착시켰다. 딱 세 번 정도만 그라인딩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때 정확히 그라인딩은 멈췄다.


"자 그럼, Enjoy it."


갑각류를 오랫동안 끓이고 졸여야 얻을 수 있는 한 그릇의 비스크 수프는 너무나도 맛있었다. 이제는 디저트로 마무리하면 좋겠다 싶었다.


"자, 디저트를 설명해 드리죠, 사실 우리 레스토랑 디저트는 아주 맛있습니다. 위에부터 설명을 해드리자면 -"


사실 내가 디저트를 그렇게까지 좋아하지는 않아서 디저트에 대한 설명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손짓으로 디저트 위에 가니쉬를 올리는 듯한 포즈를 하며 열심히 설명을 해주셨다.


"저는 개인적으로 애플파이를 매우 좋아합니다. 부드러운 아이스크림고 함께 나오는데, 바삭한 시나몬 향의 크럼블과 사과 조림, 아이스크림을 함께 먹으면 정말 맛있죠."


이 설명이 너무 인상 깊어서 원래 먹으려던 라즈베리 소르베를 포기하고 애플파이를 주문했다.


나와 일행이 시킨 디저트와 커피가 나왔다. 이제 음식을 설명해 줄 시간.


"젠틀맨, 디저트가 나왔습니다."


약간의 템포가 느껴졌다.


"오 이런, 이건 그냥 너무 맛있는 음식들입니다."


하고 설명이 필요 없다는 듯 너무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못 참겠다는 듯 식탁을 '탁탁' 두 번 가볍게 두드리더니,


"Enjoy it"


하고 돌아갔다.


음식을 주문하고 설명을 듣고 먹는 데 걸린 시간은 거의 1시간 반, 단순히 음식을 주문하고 먹는데 그치는 것이 아닌 1시간 반의 꽉 찬 퍼포먼스를 경험한 느낌이다.


어찌 보면 미국 시카고 한 복판의 고풍스러운 식당에서, 낯선 이방인으로서 이토록 따뜻하고 친절하고 편안한 대접을 받는다는 것은 여행지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경험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다시 또 기회가 된다면, 아내와 함께 이곳에 와서 오늘의 경험을 되새기며 함께하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시카고 Chicago, 도착까지 마지막 한 걸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