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우리가 무의미하다고 느끼는 시간의 유형은 3가지 정도가 있다.
무언가를 열심히 노력했는데 이루지 못한 상황, 보통 '실패'라고 정의되는 이런 상황은 단순 실패로써 끝내면 안 된다.
이루고자 했던 것을 이루기 위해 내가 노력했던 방법이 과연 올바른 방법이었는지?
아니면 내가 이루고자 했던 것 자체가 과연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었는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실패했을 때의 좌절감을 회피하라는 것은 아니고, 상실감과 실망을 애써 미화시키라는 것도 아니다.
충분히 실망하고, 충분히 좌절도 해보고 그냥 일단은 그 감정을 받아들이고, 그 감정을 흘려보내는데 어느 정도의 시간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엄청 큰 후폭풍으로 찾아와서 긴 방황을 하는 경우도 종종 보았다).
사실 이 종류의 이야기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많은 교과서적인 이야기가 있기에 내가 굳이 길게 다룰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결국 이런 류의 이야기는 한 번의 실패로 끝내지 말고 진짜 원하는 것이라면 실패를 통해 배운 방법으로 끝내 성공할 때까지 도전하라는 내용으로 마무리된다.
한 가져 덧붙이자면, 그 도전 자체를 그만두는 것이 본인의 의지가 약하다 거나 인생의 큰 가치를 '포기'한 것처럼 스스로를 괴롭히지는 말라는 것이다.
두 번째 경우는,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는데 결과물이 생각보다 좋지 않은 경우다.
결과물이 좋지 않다는 것은 내 노력에 크기와 성과의 크기의 비례하지 않거나,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막상 달성하고 나니까 그 성과의 크기가 작게 느껴지는 것이다.
'내가 이런 성취를 위해서 그렇게 노력했었나?'
하고 소위말하는 '현타'가 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성취는 막상 달성하고 나면 작게 느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원하는 학교에 합격했다거나, 직장에 갔다거나, 원하는 차를 샀다던가, '막상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비슷하지만 약간 다른 경우는, 막상 목표를 이루고 나니, 그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경우도 될 수 있다. 좋은 학교에 들어갔는데 이제는 뭘 하지? 하면서 목표를 잃고 방황하는 사람들도 많이 보았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오히려 내가 이루고 싶은 다른 목표를 곧 찾게 되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다 (새로운 목표를 찾기 위해 어느 정도 충분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오히려 별로 크지 않은 성과를 이루고 나서 그 성과에 도취되어 허송세월을 보내는 것이 더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충분히 성취감을 느끼는 것도 중요하지만, 큰 목표를 향해 달려가면서 중간의 작은 과정 중의 성취가 끝이라고 생각하는 경우에 대해서다. 실제로 회사를 다니면서 이런 경우를 많이 보았다.
이런 경우는 내가 지금 이룬 성취가 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중간 단계인지, 이 작은 성취를 토대로 더 큰 성취를 이룰 수 있는 것인지, 그 성공의 모멘텀(Momentum)을 잘 활용하지 않는다면 그 작은 성과마저도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에 이런 것에 대해서는 잘 생각해봐야 한다.
마지막 한 가지 경우는, 어떻게 보면 정말 무의미하다고 느낄 수 있는 시간이다.
바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
아무런 노력도 없으니까 아무런 성과도 없는 시간이다.
나 역시도 그런 적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은 뭘 하지 생각을 해도 할 게 없었다.
정말 하루라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살아가는 그런 느낌이었다.
나와 아무 상관없는 책을 읽기도 하고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영화나 TV를 보기도 했고, 그냥 마냥 길거리를 걸어 다니며 풍경을 감상할 뿐이었다.
그렇다고 돈이 넉넉한 것도 아니어서 내가 먹고 싶거나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내가 지금 만약 게임 캐릭터라면 전혀 레벨업을 하고 있지 않고 게임 속을 왔다 갔다만 하고 있는 그런 상태였다고 느꼈다.
그런 상황이 내게는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나의 인생은 흘러가고 있는데 나는 왜 이렇게 무의미한 건설적이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간에 있을 때는 몰랐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그 시간을 바라봤을 때 내가 느꼈던 것은, 그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무언가를 그토록 이루고 싶어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고, 하고 싶은 것을 찾지 못할 동안에 조급해하지 않아도 언젠가는 내가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그런 시간이 다시 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히려 그 시간 동안에 보았던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던 책이나 영화, 그리고 거리의 풍경과 낯선 사람들과의 대화들이 내가 무언가 새로운 것을 이루려고 했을 때 큰 영감이 되고 큰 도움이 되었다.
그렇기에 무의미하다고 느낄 수 있는 모든 상황은 내게 무언가로 인도해 주고, 의미를 주었다.
그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던 시간에 읽었던 어떤 책에서 이런 글귀를 읽은 적이 있다.
'발만 동동 굴러도 제자리걸음으로 구두굽은 닳는다'
망설이지 말고 어딘가로 나아가 라는 뜻이다. 뭐라도 하려고 노력하라는 뜻인 것 같았다.
방향성을 모를 때는 뭐라도 해보는 것이 도움은 된다. 동의하는 바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발만 동동 구르고 힘들 바에는 잠깐 주저앉아서 쉬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느끼는 무력감과 좌절감, 부정적인 감정들로 멈춰버린 내 하루를 채우기보다는 마음을 비우고 쉰다고 생각하니 그냥 마음이 편했다. 흘러가는 하루를 천천히 보내고, 하고 싶은 일로 채우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시간은 나를 또다시 바쁘게 살아가는 시간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그냥 하루라는 시간에 집어삼켜져서 스스로를 잃는 바쁨이 아닌, 내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과감히 포기할 줄도 아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무언가를 경험하고 나면 그곳에는 늘 배움이 있었다.
배움이 없던 것조차도 배움이었다.
만약 그 경험이 정말 쓸모없는 경험이었다면, 다시는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게 되는 것조차도 얻게 되는 배움이다.
*삽화는 모두 Chat GPT를 통해 글과 관련된 내용의 이미지를 제작하여 삽입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