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간호사 선생님이 좋아하는 취미생활 part 1
일과 취미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순 없을까?
영어 스피킹, 외국인 환자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수간호사 선생님이 좋아하는 취미를 하려고 했던 건 아니지만 유독 수 선생님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던 취미가 몇 개 있었다. 첫 번째는 영어회화 스터디였다. 영어회화 스터디를 시작한 이유는 첫째 재미있어 보여서, 둘째 내가 가진 비루한 영어회화 실력마저 줄어들 까 봐, 이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물론 병원이 가끔 해외에서 간호사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소문을 들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영어를 공부하고자 했던 것도 있다. 노는 취미생활은 병원 눈치가 보여서 조심해야 했지만, 영어 회화는 '자기개발'이라는 좋은 명목 상의 이유로 포장할 수도 있었다.
참여하게 된 스터디는 영어를 잘하는 전문 멘토 겸 선생님이 있고 나머지 비슷한 실력을 가진 스터디원들이 모여서 하는 영어 회화 스터디였다. 딱딱한 분위기에서 영어 학습만을 목표로 하는게 아니라 요즘 핫한 소셜 모임과 비슷한 형태로 스터디원들과 대화 중심의 스터디로 골랐다. 일주일에 1번 정규 수업시간이 있지만 개인 사정으로 참여를 못하는 경우에도 미리 신청만 하면 대체 수업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영어로 얘기하는 거긴 하지만 근처에서 일하는 직장인들, 대학생들이 모여서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 보면 스트레스가 풀렸다. 우리는 매주 회사에서 있었던 일, 주말에 공연에 갔던 얘기 등 시시콜콜한 얘기들을 나눴다. 그리고 영어를 능숙하게 잘하는 게 아니다 보니 서로의 서툰 모습을 보는 게 재미있었다.
사람들이 영어회화를 하려는 이유도 다양했다.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외국인 직원과 “How are you?" ”I'm fine." 이외의 다른 대화를 해보고 싶어서 라는 사람도 있었고, 미래에 외국에서 자신만의 사업을 해보고 싶다는 사람도 있었다. 스터디에서 새로운 문장 하나를 배워서 다음날 직장에서 한 번 던지듯 활용해봤다는 사람도 있
었다.
이런 모임의 장점은 간호사 외에 친구들이 생긴다는 점도 있었다. 친해진 사람 중에는 병원과 가까운 곳에서 일하는 IT 업계 종사자도 있었고 치위생사도 있었다. 간호사나 병원 관련된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는 새로웠다. 스터디 모임 후에는 가끔 간단히 뒤풀이도 했었는데 나 같은 경우에는 스터디 장소와 직장이 가까워서 직장 근처 새로운 맛집도 알게 되었다는 점은 보너스였다.
스터디 시간에는 영어로 정해진 주제에 대해 의견 말하기 시간이 있었는데, 미리 의견을 생각해 와서 조리 있게 말하는 습관을 기를 수 있어서 좋았다. 이건 병원에서 인계를 하는데도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한 번은 한 단계 상위 레벨의 스터디 대체 수업에 간 적이 있었는데, 능숙한 영어로 영어 토론을 하고 있었다. 겨우겨우 어설프게나마 영어 토론에 참여하고 나니 영어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자극을 받았다.
나는 운이 좋게도 적극적인 스터디 리더와 외향적인 스터디 팀원들을 만났다. 덕분에 좋은 수업 분위기에서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단순히 일상 대화뿐만 아니라 ‘소개팅’, ‘여행지에서 숙박하기’ 등 특정 상황과 관련된 실용적인 회화표현을 배울 수 있었다. 스터디 팀원 별 역할도 있었는데, 내 역할은 매주 팝송 하나를 선정해서 영어 가사와 함께 톡방에 공유하는 DJ 역할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 노래와 같다며 공감해 줄 때는 굉장히 뿌듯했다.
수 선생님이 어느 날 지나가는 말로 취미나 모임 하는 것 있니? 하고 물어보신 적이 있다, 내가 하고 있던 여러 취미들을 말씀드렸는데 영어 스터디를 하고 있다고 하니 궁금해했다. 병동에 간간히 외국인 환자가 입원하곤 했는데 담당 간호사 배정을 할 때마다 원래 수 선생님은 약간 곤란해하시곤 했다. 앞으로는 영어권 외국인 환자가 입원하면 나에게 배정해주겠다고 농담 아닌 농담을 하셨다.
영어회화 실력이 일취월장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름 도움이 되었다고 느꼈던 것은 1년이 지나 다른 부서에 가서였다. 외래 파트에는 외국인 환자가 병동보다 많았다. 처음 부서 배치가 되었을 때 차지 선생님은 갑자기 대뜸 “영어 잘하니?”라고 물어보셨다. 당황해서 “잘하는 건 아니에요,”라고 대답했다.
그러다 영어권 외국인 환자가 내원하고 우연히 내가 환자 응대를 하게 되었는데 수납부터 다음 예약까지 영어로 안내했다. 손짓 발짓을 섞었지만 그래도 무사히 응대를 마치자 옆에서 듣던 다른 직원들이 오~ 하며 감탄했다. 진땀을 흘리며 머릿속에 있는 단어를 조합해서 안내를 했지만 말이다. 부작용도 있었다. 다음부터 외국인이 스테이션에 다가올 때마다 차지 선생님은 내 옆구리를 찔렀고 외국인 환자는 내 담당이 되었다.
영어든 중국어든 잘하는 외국어 회화가 있다는 건 간호사에게 큰 장점이다. 심지어 중, 고등학교에서 배운 기초 중국어 일본어를 잘 기억해 두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안과 간호사 시절, 중국인 환자 시력 검사할 때 환자가 한국어 숫자를 몰라서 중국어로 시력검사를 한 적도 있다. 물론 내가 아는 중국어는 이, 알, 싼, 쓰 (1,2,3,4)와 니취팔러마(밥 먹었어?)가 전부다. 딱히 관심 있는 취미가 없다면, 유용성과 활용도면에서 외국어 회화를 배워보는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