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병동 간호사가 말하는 항암 이야기
암병동 에서의 첫여름은 유독 더웠다. 병원에서 제일 큰 병동이었지만 에어컨은 병실 안을 제외하고 단 하나였다. 넓은 복도, 간호사실, 투약 준비실까지 에어컨의 냉기가 닿지 않는 곳이 너무 많았다. 여름이 더운 이유는 또 있었다. 암병동은 언제나 항암 중인 환자들이 있다. 항암제를 투약하기 위해서는 마스크와 두꺼운 보호 비닐로 된 앞치마, 팔 토시, 보호 장갑을 착용해야 한다. 항암제가 묻을 수 있는 모든 맨살이 보호된 상태로 병실에 들어가서 항암제 투약 전 간호사 2명의 이중 확인을 걸쳐서 투약이 이루어진다. 환자 한 명의 항암제를 연결하기 까지만 해도 최소 10분 이상이 걸리는데, 보통 담당 환자 중에 4~5명의 환자가 항암을 진행 중이었고, 몇 번이나 보호구를 입었다 벗었다 하는 날 도 있었다.
항암제는 매우 위험한 약물이다. 항암제 부작용에 대해 엄청나게 많이 배우고 숙지하고 있었지만 정말 눈앞에서 부작용을 봤을 때는 놀랐고 무서울 지경이었다. 불과 1, 2분 전까지 일상적인 대화를 하던 환자가 항암제 투약 5분 만에 호흡곤란을 호소했다. 응급 상황을 알리고 항암 전담 간호사 선생님과 함께 항암제를 중단하고 바이탈을 했을 때 산소포화도는 80% 대로 떨어지고 있었다. 의국에 있던 담당 전공의가 뛰쳐나와 환자 옆에서 바로 오더를 내리기 시작했다. 수액을 달고 끊임없이 수액 공급을 하고 주사기를 정신없이 까면서 약물 투약을 했다. 산소를 o2 라인으로 공급하고 산소포화도 측정기를 연결해서 계속 모니터링했다. 환자는 속이 메스껍다며 계속 구역질을 했다.
한 30분이 채 지나지 않아 상황이 종료되었다. 오심과 호흡곤란이 없어지고 산소포화도가 산소공급 없이도 잘 유지되었다. 응급상황 종료, 다행히도 환자의 얼굴에 생기가 돌아왔다. 정말 아찔할 순간이었다. 이렇게까지 나빠질 줄이야. 심장 쪽 문제를 가진 환자나 수술 후 출혈 환자만큼이나 증상 악화는 빠르고 순식간이었다. 이래서 암병동이 어려운 거구나, 내가 책임지고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곳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항암제 부작용만이 위험한 게 아니었다. 다른 정맥주사도 정맥염, 일혈 등의 위험한 부작용이 있을 수 있지만 항암제가 정맥주사로 투여될 경우에 부작용이 일어나면 더욱 위험해진다. 한 번은 병동의 한 환자에게 항암제 일혈이 생긴 적이 있었다. 일혈은 항암제가 혈관 내로 들어가지 않고 혈관 외의 주위 조직으로 새는 것이었는데, 이 환자의 경우 일혈 증상이 피부조직까지 손상되는 증상으로 이어졌다. 피부가 화상을 입은 사람처럼 벌겋게 상했다. 10여 차례가 넘는 항암을 하시는 분이었는데 한 1달 정도를 피부 상처 치료하며 고통스러워하셨다.
다행히 한 달 지나서는 상처가 많이 나았지만 병동에는 새로운 지침이 내려왔다. 환자들 라인에 각별히 신경 쓰고 일혈 등 정맥 주사 부작용에 대해 환자들에게 철저히 교육하고 사전에 예방하라는 것. 암병동은 라인 잡는 것 하나 조차 쉬운 것이 없었다.
항암을 하는 환자들은 혈관에 매번 새로 정맥 주사를 놓는 대신 이식형 포트 (케모 포트)를 갖고 있는 경우도 많았다. 매번 입원을 할 때마다 포트에 바늘을 심고 퇴원할 때 빼고 해야 한다는 점은 있었지만 바늘로 3일에 한 번씩 정맥을 찌르는 것보다는 덜 힘들다고 했다. 그럼에도 케모포트를 넣고 빼는 것조차 통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인턴이 실수로 바늘을 잘못 넣거나 어렵게 겨우겨우 넣은 경우 환자들은 많이 아파했다.
하지만 포트를 몸에 이식하는 것 자체도 시술 한 번을 받아야 하는 작지 않은 일이었다. 시술을 위해 금식을 하고 시술 방에 가서 포트 이식을 받고 이후 통증 조절과 포트 관리를 해야 했다. 젊은 환자들은 몸속에 뭔가를 심어야 한다는 것에 거부감과 미용 상의 이유로 꺼리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이 케모 포트는 정맥 주사와는 다르게 수액이 투여 중이지 않을 때는 반드시 식염수 6cc, 헤파린 4cc로 막히지 않게 투과시켜야 했다. 헤파린 용액은 처방약이 아니라 청구 약이어서 병동에 헤파린 용액은 항상 비치되어 있었지만 가끔 헤파린 용액이 다 떨어질 때가 있었다.
내 환자가 당장에 헤파린 락킹을 해야 하는데 헤파린이 없어서 온 병동 카트를 다 뒤져 하나라도 찾아내야 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헤파린이 모자라는 경우를 대비해서 항암 전담 간호사 선생님의 카트에 1-2 개의 헤파린을 킵해 두기도 했었다. 이렇게 헤파린 하나를 찾게 되면 정말 소중했다. 동기들끼리 헤파린을 쓸 때면 혹시 필요하지 않은지 서로 물어봐주고 옆 병동에서 빌릴 때 동기 것까지 같이 빌려주곤 했다.
신규에게 항암 레지멘은 또 다른 복병이었다. 이브닝 번 간호사는 환자가 항암치료를 하기 전 날 레지멘을 적어 놓고 인계해야 하는데. 항암 처방이 나기 전에 미리 hydration 할 수액, 전 처치로 들어가야 할 부작용 예방 인젝, 항암제와 용량, 항암제가 조제되어야 하는 용액 종류까지 시간과 용량, 속도가 적힌 프로토콜을 레지멘이라 한다.
그리고 BSA(Body surface area)도 굉장히 중요한데 환자의 체표면적은 항암제 용량을 결정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에 키와 몸무게를 측정하고 BSA에 따라 항암제 용량을 정확하게 계산해야 한다. 항암제 별로 항암제 용량 계산법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어떤 항암을 어떻게 계산하는 지도 알고 있는 것도 중요했다.
일반인들이 이 글을 읽으면 ‘어차피 항암제 처방은 의사들이 내고 약물 조제는 약국에서 할 텐데 왜 레지멘을 간호사가 먼저 써야 하지?’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항암은 피검사 결과, 환자 컨디션에 따라 당일에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서 lab 결과를 확인하고 아침 회진 후 처방이 나는 경우도 많다. 만약 레지멘을 미리 써놓지 않으면 항암 전에 투여하는 수액이 제시간에 못 투여될 수도 있고, 간혹 BSA에 큰 변동이 생겼음에도 저번 차수 항암과 똑같은 용량 처방이 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레지멘에 정확한 용량을 미리 계산 해 놓아야 한다.
신규 간호사에겐 항암은 넘기 힘든 장애물 같았다. 이미 다 알고 있는 대로 계산하고 쓱쓱 레지멘을 쓰고 퇴근하는 선임들과는 달리 레지멘을 쓰다가 막히면 병동에 비치된 항암 레지멘 책들(마치 영어 사전처럼 생겼다)을 뒤지곤 했다. 왜 영어사전 같다고 생각했냐면 항암 이름이 동의어처럼 다른 이름으로 표기된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다, 뭘 찾아야 하는지 아는 것도 어려울 지경이었다.
레지멘을 찾다가 도저히 안되면 욕먹을 각오를 하고 누구에게든, 가장 정확히 알고 있을 것 같은 사람에게 물어봤다. 풀리지 않는 수학 응용문제처럼 항암도 비슷한데 다른 유형이 많았다. 레지멘을 쓰다가 집에 가지 못하는 밤이 많았다.
나중엔 레지멘을 쓸 때마다 두 장씩 쓰고 인계 주고 남은 한 장씩을 전부 모아서 들고 다녔다. 내 차트판은 두께가 거의 1cm쯤 되어 보였지만 그래도 똑같은 항암이 나오면 컨닝을 할 수 있다는 특장점이 있었다. 수학의 정석을 한 장씩 모아서 들고 다니면서 공식을 찾아보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 같다. 항암은 지금 생각해봐도 어렵다. 다시 돌아간다 해도 항암은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암병동 간호사로서의 기억과 경험은 정말 평생 간호사로 일하는 데의 영양분이 될 것 같다. 조금 더 일머리가 뛰어나고 인내심이 많았다면 암병동 간호사로 오래 일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암과 암이 주는 고통에 맞서 싸우는 암병동의 간호사, 의사 선생님들을 정말 존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