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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찐작가 Oct 29. 2020

라떼는 말이야

라떼는 말이야를 듣는 90년대 생 신입의 마음

"라떼는 말이야." 

"나 때는 말이야."를 풍자한 유행어이다.


"라떼는 말이야"라는 말이 유행한 뒤로부터 "나 때는 말이야..."라고 하면 괜히 꼰대가 된 것 같아서인지 직장에서도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나 때는 말이야"가 어김없이 등장하는 타이밍이 있다. 바로 부하직원이 현재 힘든 상황에 대해 고충을 이야기했을 때이다. 


선생님, 요즘 인력이 없어서 설거지하느라 잠시도 쉴 틈이 없어요. 손에 물 마를 날이 없네요.


간호사가 갑자기 무슨 설거지냐고? 우리 병원은 1차와 2차 사이 규모의 종합병원이기 때문에 CSR (중앙공급실) 부서가 따로 없다. 정형외과 처치실에서 사용한 철제 드레싱 세트, 포셉과 시저 등 각종 소독 기구들을 일일이 세척하고 소독기에 넣어서 소독하는 일을 부서에서 알아서 해야 한다.  보조로 도와주시는 여사님이나 간호조무사 실습생들이 실습을 나올 때면 이런 일은 여럿이 돌아가면서 하는데, 요즘은 여사님도 실습생도 아무도 없다. 간호사 둘이서 외래 진료도 보고 처치실에서 드레싱도 하고 주사실에서 주사도 놓으며 설거지까지 하고 있다. 설거지를 하다가도 환자가 오면 환자 응대를 하고 울리는 전화를 뛰어가서 받아야 한다.


설거지에 지쳐서 수선생님을 붙잡고 하소연을 했다. 하지만 이때 돌아오는 말은  또다시 "라떼는 말이야"였다.

"지금은 설거지할 시간이라도 있지, 예전에는 환자들이 계속 밀려와서 드레싱 세트가 거의 선반보다 높이 쌓이고 그랬어."


"어이쿠 요즘엔 설거지할 시간은 있어서 다행이네요, 앞으로도 틈틈이 설거지 열심히 할게요."


이런 반응을 원했던 걸까. 평소에는 아, 네. 이런 대답이라도 했을 텐데, 대답 대신 미간을 찌푸리며 살짝 인상만 쓰고 입을 다물었다.


"라떼는..." 이라는 말은 직원들의 각종 고충을 해결하기에 쉽고 아주 편한 방법이다.

지금, 네가 하는 고생은 아무것도 아니고, 나 때는 훨씬 어렵고 힘들었다. 그러니 넌 입 다물고 편한 줄, 감사한 줄 알아야 한다.라는 말의 함축된 의미이기 때문이다.


직원들이 힘들다고 하면 "그래 많이 힘들지? 앞으론 좀 더 도와줄게, 해결해줄게, 고생이 많다." 등등 말이라도 위로를 해줄 수는 없는 걸까? 언제부터 남의 힘든 얘기를 들었을 때 내가 더 힘들었다 라는 말로 불행함 대결을 하는 사회가 된 걸까. 


나 때는...이라는 말을 하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 회식 자리에서, 빛나는 과거라던가 어떤 무용담을 자랑하며 "나 때는 말이야!"라고 할 때면 얼마든지 귀담아 들어 드릴 수 있다. 실제로 이런 얘기를 하는 상사 분들은 꽤 귀엽게 느껴진다.


우리는 지금 현재를 살고 있다. 내가 이 직장에 오기 전에 다른 사람이 경험한 과거가 어땠는지 사실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특히나 힘들 때는 당장 내 앞에 닥친 이 일이 가장 힘들고 중요한 일이다. 좋은 상사가 되고 싶은 상사님들, 누군가 많이 힘들다고 얘기할 때면 나 때 보다 지금, 나 보다 너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들어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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