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이요? 이 정도는 귀여워요.

- 4화 공무원으로 살아남기 -

by 소금호랭이



띵동 -


네, 어떤 일로 오셨을까요?


띵동 -


네, 전입신고 하러 오셨다고요~?


따르르르르 --


그렇게 다음 민원 번호 버튼을 누르려는데 전화가 울린다.


" 네, ㅇㅇㅇ 행정복지센터입니다. "

" 아니 무슨 안내문 좀 제대로 붙여놔요!!!!!!!!!!!!!!!!! "


어우 귀청 떨어지는 줄. 민원대를 보면서 가장 난감한 일은, 해야 할 일도 너무 방대하고 인사발령은 자주 나기에 내가 할 일을 숙지하기도 어려운데, 그 와중에 민원인이 내가 전혀 모르는 말을 한다는 거다. 보통은 이제 전화를 받는 동사무소의 직원이 어떤 업무를 하는 직원인지 상대방도 알 리가 만무하니 일단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전화를 받기 전부터 화가 나 있는 민원인을 달래 본다.


"선생님, 혹시 어디에 어떤 안내문을 말씀하시는지요? 지금 전화 거신 곳은 동사무소 민원대...."

"아니이!!!!!! 네가 붙인 그거!!! 안내문!!! 네가 붙인 것도 몰라????? 아니 이것들은 기본이 안 되어 있네!!!"


말은 좀 끝내자. 나중에, 정말 이 얘기 다 들어봤는데, 이 정도 억울한 일이 아니기만 해 봐라. 내가 정말 마음속 깊이 너의 인생에 올 모든 운은 나한테 다 달라고 빌고 또 빌 거다.


"선생님~ 여기는 선생님이 인감이나 초본, 각종 증명서 같은 것들 떼는 곳인데 안내문은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걸까요~? 제가 안내문을 따로 붙이는 사람이 아니라 잘 모르겠어서요~ "


"하 참, 모른대?"


전화기 너머 옆에서 아내로 추정되는 사람의 코웃음 소리가 들린다. 끼리끼리 부부인가 보다. 역정을 내던 아저씨에게 친절하게 대답했던 게 오히려 본인의 어깨를 으쓱하게 만들었는지 기세를 몰아 날 더 몰아세운다.


"거기 거 사거리 옆에 있는 안내문 말이야!!!! 아니 뭐 내용이 제대로 되어있지가 않잖아!! 이렇게 관리가 소홀해도 되겠어? 어?!! "


입사한 지 2개월이 안 되었던 1인. 인생 정말 어렵다. 사거리 옆에 있는 안내문이라니. 그건 대체 누가 관리하는 건지 나도 모르겠다. 사거리가 한두갠가. 나중에 알고 보니 마을의 구석진 부분에 안내 게시판이 있었는데 관공서에서 하는 프로그램 같은 걸 붙여두는 곳이 있다고 한다. 그런 걸 관리하는 직원이 있긴 하겠지만, 이쪽 관할인지도 모르겠고, 일단 신입 민원대 직원은 알리가 만무. 듣다보니 차를 타고 가다가 슬쩍 봤는데 하필 전단지 하나 기간이 며칠 된 걸 본 거다. 그걸로 피해를 본 건 없지만, 선량한 시민의 입장에서 차마 혈세가 낭비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없어 친히 나서셨다고 한다. 예, 선생님. 덕분에 다른 민원인들은 줄을 서고 계셔요.


일단, 이 상황으로 다시 돌아와서 아직 능숙하지는 못하니 친절과 성실함을 앞세운 열정 과다 신입은 이 상황을 해결하고 싶어 다시 한번 묻는다.


"선생님, 제가 안내문은 어떤 걸 말씀하시는지 모르겠어서요. 제가 그 업무를 하지 않고 있어서, 정확히 어떤 상황인지 모르겠습니다. 알아보고 연락드려도 괜찮을까요?"


전화를 받는 직원인 내가 이것에 대해 모른다는 것에 위축되어서 저자세로 나가자 갑자기 기분이 좋아 보이는 건 기분 탓이 아니었다.


"허 참나, 안내문이라고 하면 바로 알아먹어야지 무슨.

저기요, 아가씨. 내가 공무원 교육시킬라고 전화한 건 아니었는데 이거 안 되겠네."


난 진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처를 했다고 생각하고 뿌듯하기까지 했는데 상대방은 내가 자극적인 콘텐츠에서나 보던 대사를 내뱉기 시작했다. 나 정말 착하게 얘기했는데, 이것도 정답이 아닌 거야...? 잠깐 머리 회로를 돌리다가, 더 저런 소리를 들었다가는 나도 날 선 소리를 할 것 같아서 대답을 잠시 하고 있지 않았더니 그놈의 선생님이 역정을 낸다.


"아가씨!!! 알아들어야 돼, 안돼!! "


사람들이 밀려오는 데 이렇게 전화를 받고 있으면 옆 직원들에게도 눈치가 보이기 시작한다. 대충 눈치 봐서 끊도록 유도해야 하는데 그땐 도저히 답을 모르겠는 거다. 빨리 끊고 싶은데 이런 쓸데없는 전화에 내 정신적 에너지와 시간을 소비하고 싶지가 않아 본인이 원하는 답을 그냥 해주고 끝내자는 결론이 났다.


"맞습니다~ "


솔직히 반은 비꼰 거였는데, 상대방은 눈치가 없나 보다. 진짜로 의기양양해지면서 우월감에 도취가 된 아저씨가 있는 거다. 왜 이렇게 신이 나 보이는 거야? 열받게. 근데 이게 정답이었나보다.


"맞지? 자, 그러면 내가 안내문이라고 그러면 어딘지도 바로 알아들어야겠죠? "


갑자기 누그러진 말투로 '자, 그치?' 와 같은 교육자 흉내를 낼 때나 쓸법한 단어를 덧붙이며 나를 가르치려 든다. 한숨이 너무 나오는 데 참을 수가 없어서 조용히 옆에다 대고 쉬었다.


"예... "



이런 이상한 대화가 몇 번 반복되고 나니 신이 나서 끊더란다. 결국 안내문에 대한 답은 알아가지도 않았다.

분명 자기 아내한테 내가 오늘 공무원 교육시켰다. 역시 난 대단해와 같은 말을 하며 으쓱거렸겠지. 괜히 직원들이 오늘은 제발 특별한 일 없게 해 주세요.라고 주문처럼 되뇌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 날이다.



머리나 벗어져라.

밥먹다가 돌씹어라.

새끼발가락 세게 찧어라.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