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공무원으로 살아남기 -
띵동 -
"제적 등본 떼신다고요~? "
"네네, 어우 힘들어. 할아버지 사항이 좀 필요해서. 그리고 이것도 필요하고요, 이것도..
어우, 큰일이네, 너무 많네. 제가 종이에 필요한 거 다 써서 왔어요. 어우, 많은데."
정말 다양한 업무가 있어 나도 점점 업무가 가물가물해지는 터라, 기억을 더듬으며 글을 쓰고 있다. 그중에서 제적등본을 떼러 오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아도 은근히 있다. 제적등본이 무엇이냐. 오픈 사전을 확인해 보면 호주제 폐지로 인해 호적부가 말소되어 제적부로 옮겨졌고, 현재 그 제적부에 기재된 사항을 확인하기 위해 발급하는 서류다. 2007. 12. 31. 호적법 폐지 이전에 발생한 대한민국 국민의 가족관계 변동사항을 확인하는 데 사용되는 증명서라는 것! 그래서 나이가 좀 있으시거나, 오래 전의 등본이 필요하면 대부분 이 제적등본을 뗀다.
다만, 우리가 보통 받아보는 초본, 등본처럼 시스템화가 되어있는 것들과는 확인법이 달라 검색한다고 바로 나오지 않는다. 한자가 섞여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하나하나 대조해 가면서 찾는다. 이 제적등본이라는 걸 떼는 건 생각보다 재미있기도 하다. 원하는 것을 찾아내면 추리에 성공했다는 기분에 만세를 부르게 된다고나 할까...! 왜냐하면 고생해서 찾았는데 소실되어 없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열심히 찾았는데 없을 때는 참 찝찝하고 그렇다. 시간이 좀 걸리기 때문에, 민원인들이 유독 많은 날이면 업무가 지연되기는 하지만, 누군가가 이런 업무를 맡고 있으면 다른 민원대에서 힘을 좀 내줘야 한다.
그런데 이날은 하필 이렇게 시간이 걸리는 서류들을 요청하러 오신 분의 시간이 딱 6시. 의외로 공무원 일을 하면서 우리가 익히 기대하는 워라밸을 지킬 수 있는 자리는 많지 않지만, 진상을 마주하기 쉽다고 알려져 있는 동사무소 민원대 자리를 오히려 선호하는 직원들은 꽤 많다. 이유는 동사무소 민원대의 장점이 워낙 명확해서다. 웬만하면 칼퇴가 가능하다는 것. 그렇지만 이렇게 6시에 고객님이 오셨을 경우엔 불가! 하필 이 뒤에 약속을 잡아뒀던 정말 마음속으로는 약간의 짜증과 함께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이렇게 많이 뗄 거면 10분 전에 와주세요... 그렇지만 나는 막내 신규.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내가 받아야 후에 실수를 하더라도 미움을 덜 받을 수 있을 거란 마음으로 빛의 속도로 민원 버튼을 눌렀지만 떼야할 서류가 너무 많았다. 적어도 30분은 더 걸릴 것 같은 서류의 종류와 양. 다행인 것은 그나마 내가 혼자 할 수는 있을 것 같은 서류들이었다는 거다. 제적등본은 혼자만의 머리로 가능할지는 의문이지만 해보는 데 까지는 해봐야지.
" 어우, 너무 많죠. 진짜 그니까요. 어우 너무 많아, 휴. 안 나올 거 같아. "
" 나오나 열심히 한번 찾아볼게요! "
마음으로는 우는 소리를 삼키고 괜찮다는 표정으로 웃으며 서류를 확인하고 있는데, 정작 6시에 떼야할 서류를 가득 가져온 민원인 본인이 너무 많다고 한숨을 쉬면서 말하시니까 갑자기 진짜로 웃기기 시작했다. 감사하게도 남아있어 주는 직원분 하나가 있었는데 자기도 웃음이 터졌는지 신규한테 벌써부터 겁준다면서 웃음이 터져버렸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내가 웃음을 멈출 수가 없어서 낄낄대면서 서류를 찾으니까 민원인도 헤헤 웃는다. 그래, 뭐 민원인 꽉 찼을 때 오는 것보다 차라리 지금 해서 업무 배우는 게 낫지. 다만, 동사무소 아닌 다른 데서는 진짜 하고 싶어도 못한다며 칼퇴에 집착하던 선배 직원이 이것 때문에 남아있어 미안함에 식은땀이 흐를 뿐... (지금 생각해 보면 통합 민원대라 다 같이 하는 곳인 건데 왜 그렇게 눈치를 봤나 싶다.)
그래도 오늘, 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