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처음은 있잖아요

- 2화 공무원으로 살아남기 -

by 소금호랭이



띵동-


'등본이요'


이 정도는 양반이었다.


'출생신고 하러 왔습니다.'


안돼...


이 모든 일이 첫날에 이루어진다.

나중에야 알았던 건데, 사바사긴 하겠으나

사기업을 간 친구는 2년 동안 정말 말 그대로

신입이라 생각해서 일을 거의 배우기만 했다고 한다.


일을 바로 시작하는 건 좋다.

돈을 받으면 일을 해야 하는 것도 인정한다.

그렇지만 무기도 없이 바로 전투 투입은 아니지!!!

국가적으로 운영되는 (물론 지방직, 국가직마다

운영체계는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대규모

기관이잖아!) 곳에서 시스템이 이렇게까지

열악하다는 걸 알았다면 공시, 고민해 봤을 거다.


모든 공무원들이 신규 때의 서러움을

잊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이때 아주 친절하고 좋은 사수를 만났다면

망망대해에 남겨진 작은 박테리아 같은 신규에게

구원자나 다름없기에 그 감동은 아주 오래도록

남아 공직생활 내내 은인으로 모시겠지만,

이미 인류애를 상실한, 신규에게 친절히

알려주고는 싶어도 본인의 마음 역량이

어리바리한 녀석까지 안고 갈 정도가 되지 않았던

피 말리는 사수를 만났다면 악몽이 시작된다.


사회경험 매우 소수, 일단 성실 하나로 시작하는

사회초년생은 전 국민의 엄청난 개인정보를

담고 있는 공간에 앉았다.

거기에 짖꿎은 직원을 만나 이곳에서

단 하나라도 실수를 한다면 생전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소송이니 뭐니 하는 꼴을 당할 것이다라는

말을 들은 터라 두려움에 벌벌 떨고 있다.

실수를 하면 깐깐한 팀장님의 불호령이 떨어질 거라는

진심을 담은 조언까지 더해서.


아니 근데, 동사무소에서 이렇게

많은 일을 하는 줄 알았냐고.

편람은 두꺼운데 신규의 입장에서 무슨 소린가 싶고,

컴퓨터 모니터에 떠 있는 프로그램부터

익숙지 않은 데다 내가 클릭 한번 잘못하면

문제가 생긴다는데 뭐 하나 무섭지 않은 게 없었다.


물론, 출생신고니 사망신고, 전입신고 같은 것들은

신규에게는 난도가 있기에

조금 더 경력이 있는 사람들이 민원을 봤지만,

생각보다 변수는 많고 그때마다 사수에게

물어보기엔 이미 민원인들이 들어차있다.

게다가 통합민원대(민원 업무를 모든 민원대에서

종류 분류하지 않고 받는다.)이기 때문에 이미

특이케이스가 다른 자리를 꿰차고 있다면

새로운 복잡한 민원이 들어온다 한들 신규가

일단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만약 동사무소에 들어갔는데 사람이 없다면,

정말 몇 안 되는, 공무원들 사이에서도 이미

소문이 자자한 꿀 위치이거나, 운을 모두

쏟아부었나 싶은 날이거나, 직원들이 이미 들이닥친

민원인들을 겨우 모두 갓 쳐낸 다음의 첫 손님이다.

결국 쉴 수 있는 시간은 보통 5분도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럼 앞에서 책상을 펜으로 탁탁 두드리며 나를

재촉하고 있는 사람들을 나 혼자 상대해야 한다는 건데...

이런 동사무소 업무는 하면서 배워야 한다며 절대

업무 외 시간에 연장근무를 하면서까지 신규에게

알려줄 사람은 적어도 그곳엔 없었기에

눈치코치 봐가면서 식은땀을 흘려댔다.

( 매우 서러웠던 그때의 경험 이후로 나는 무조건

추가근무를 해서 신규를 알려줬다.

본인이 원하지 않는 경우를 제외하고. )


그리고, 보통 이렇게 신규면 민원 보는 직원 옆에서

며칠은 어떻게 하나 보고 투입되는 게 훨씬

효율적이지 않나!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는 이유는

고질적인 인력 부족이다.) 어차피 모든 직원은

민원을 보고 있는데 소심한 신규는 그걸 뚫고

내 민원을 옆 직원에게 물어보기가

정말 너무너무너무 어렵다. 특히나 신경질적인

사수가 걸린다면 하루에도 수명이 급속도로

주는 느낌일 것이다.


나름 훗날 ‘착한 사수’(나의 노력의 산물이다.)라고

불렸지만 그럼에도 모든 걸 물어봐야 하는

신규 입장에선 내게 묻기 전 미안함에 눈치가 보였다고 한다.

(특히 지방직은 온갖 잡다한 것들을 민원인들이

멀리 가지 않아도 대부분 처리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 업무 종류가 파다 보면 끝도 없다.

고로 물어봐야 할 것도 많다. 혼자 해내려고 하면

사고가 있을 가능성이 농후!)


우리가 보던 동사무소의 어리바리한 직원은

길 가다 그냥 아무나 붙잡고 앉혀도 차이가 없을 만큼

쌩초보자가 그 자리에 앉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이었다면 능글맞게 처음이니 기다려 달란 말을

던질 수 있겠지만, 그때의 나는 민원인에게 신규라고

티를 내면 죽는 줄 알았다. 누군가가 타임어택

초시계를 들고 옆에 서있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



험난하다, 험난해.

이 길을 어떻게 헤쳐나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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