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시크와 탄핵
시진핑 주석의 중국이 어디로 나아가려고 하는지 궁금하시다면, (중국) 사회주의 핵심가치관을 한 번 눈여겨 보시라고 권해드립니다. 12개 항목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 사회주의 핵심가치관은 중국의 어느 도시로 여행을 가더라도 적어도 한 번은 마주칠 수 있을 정도의 흔한 선전물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그만큼 이 나라가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가치라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시진핑 주석의 집권기가 현재 후반기(?)로 접어들고 있는 중이라고 하여도 그러하며, 설혹 향후 지도력이 교체되더라도 그 중요성은 크게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 국가차원
부강, 민주, 문명, 조화(和谐)
* 사회차원
자유, 평등, 공정, 법치
* 개인차원
애국, 경업, 신의(诚信), 우애(友善)
개인적으로 글자에 집착하는 편이다보니, 이 선전글을 볼 때마다 재차 그 의미를 곱씹어 보곤 하였습니다. 저를 한동안 의아하게 했던 항목은 그 중 “부강”과 “문명” 두 가지입니다만, 지금 각각의 구체적인 의미와 그에 대한 저의 개인적인 평가를 말씀드리진 않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재미 없는 글을 더 재미 없게 만들게 될 테니까요.
하여간 적어도 이것 하나는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들은 진심이다.”
어떤 친구는 '이 공허한 12가지 항목에는 분명 어떤 흉계가 숨어있을 것'이라 합니다. 그래서 “너의 눈을 가려야 한다. 고개를 돌려야 한다. 아무리 한자를 읽을 수 있어도 읽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중국에서 살아가는 동안 제가 이 나라에 대해서 하나라도 더 공부하고 더 관찰하고 더 살펴보는 게 더 바람직한 게 아닐까요? 그 친구도 그렇습니다. 미관말직(?)이긴 하나, 국가 의사결정의 일부분에 관여하고 있는 자인데, 주변국에 대해 그냥 눈을 감는 게 옳은 태도일까요?
저의 지인 중에서 중국과 일본이라는 나라가 실제로 어떻게 운영되는지에 대해 진지한 관심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는 듯합니다. 아마 다른 보통의 또는 교육받은 한국인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중국과 일본은 어떤 의미에서든 과거부터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나라였고,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분명히 그럴 것인데, 이러한 무관심 또는 외면은 놀라운 일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에 대해 특별한 근거 없이 폄하하거나 반대로 맹목적으로 칭찬하기도 합니다. 근거라고 해봐야 길거리가 지저분하다거나 깨끗하다는 정도라서 안타깝고 답답합니다.
적어도 우리 중 누군가는, 편견에 기초한 감정적 반응을 넘어, 그들 국가의 목표와 미래 전략, 목표를 관철하기 위해 동원하는 수단과 방식, 의사 결정 방식과 리더를 양성하는 방식, 국가 역량의 강점과 약점 등을 냉철하게 파악하고 이에 대해 대비하고 있어야 할 터인데...
아마 이미 외교부에서 잘하고 계시겠지요?
어쨌거나 그들이 저 12개 항목을 선택한 것에는 다 이유가 있으며, 그만큼 각각의 가치에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역시나 이 글을 지루한 글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 간략히 결론만 말씀드리자면, 그들은 진심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저 12개의 가치에 부합하는 나라를 만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저 항목들 대부분은 실은 대한민국에도 절실하게 필요한 가치들입니다. 부강, 민주, 자유, 평등, 공정, 법치...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나 만약 대한민국의 지혜로운 원로들이 모여,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이 추구해야 할 핵심 가치 12개를 선정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장담할 순 없으나, 중국의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과는 사뭇 다른 조합이 될 것입니다.
이미 그 내용이 대략 정해져 있는 뻔한 군(群)에서도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각자의 차별성은 생겨날 수 있기 마련입니다.
제가 삼성전자에 입사해 신입사원 연수를 받았을 때, 저와 동기들은 삼성의 핵심 가치와 경영 이념을 암기해야 했습니다. 삼성의 핵심가치와 경영이념은 다음과 같습니다.
핵심가치: 인재제일, 최고지향, 변화선도, 정도경영, 상생추구
경영이념: ‘인재와 기술을 바탕으로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하여 인류사회에 공헌한다.’
그리고 저는 그후 인턴사원 연수에 지도선배(삼성에서 지도선배는 일종의 멘토 또는 조교의 역할)로 참여하였는데, 이번에는 후배들에게 이를 암기하도록 독려해야 했습니다.
당시에 저의 솔직한 마음은 그랬던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의 어떤 회사가 인재제이 또는 인재제삼을 추구할 것인가? 아니면 중간지향이나 꼴지 지향한다거나, 주야장천 변화거부하겠다는 회사는 어떠한가? 대놓고 편법경영이나, 상생거부하겠다는 회사는 과연 세상에 존재할 수나 있을까?
그래서, 저는 삼성의 핵심가치를 하나 마나한 불필요한 소리라고 여겼습니다. 고리타분하다 생각했습니다. 경영이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룹 연수 중 어느 늦은 저녁, 과정 정리 시간에 주진행 선배(삼성 신입사원 연수에서 각 차수의 교육을 주로 책임지는 직원)가 했던 말이 이후 일년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고, 결국 저는 삼성의 경영이념을 제 자신의 평생의 업무방침으로 수용하게 됩니다.
그 선배는 삼성의 경영이념에는 다음과 같이 중간에 생략된 말이 있다고 했습니다.
‘인재와 기술을 바탕으로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하여 (생존하고) 인류사회에 공헌한다.’
삼성이 살아남기만 한다면 인류 사회에 공헌하게 될 것이 자명하므로, 심지어는 아래와 같이 이해하면 족하다고 하였습니다.
‘인재와 기술을 바탕으로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하여 생존한다.’
삼성의 경영 목적은 ‘생존’이고, 단지 생존하기 위해 최고의 제품과 최고의 서비스를 만들어내려는 것이며,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하지 못하면 우리에게 ‘죽음’뿐이라는 것입니다. 나아가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하기 위해서 선택한 수단이 ‘인재와 기술’인 것입니다. 고로 수많은 아름다운 가치들 중에서 삼성이 선택한 가치는 최고, 인재, 기술이라 할 것이고 이는 곧 다른 기업들과 구분되게 하는 삼성의 정체성이 된 것입니다.
삼성이 압도적인 1등이 되고자 하는 것은 우쭐대기 위해서라거나, 더 큰 회사를 만들겠다거나, 더 큰 돈을 벌고 싶다거나,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 싶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저 ‘생존’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은 그들의 진심입니다.
만약 어느날 삼성이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포기하고, 이윤극대화 같은 다른 가치를 앞세운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때부터 이 회사는 삼성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삼성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될 것입니다. 아니면 어느날 삼성이 인재가 아니라 자본을, 기술이 아니라 마케팅을 우선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역시 그 회사는 더 이상 삼성이 아니며 다른 무엇이 될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핵심 가치가 다 그렇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제가 알기로는, 어린 시절 여름 성경학교에서도 그렇게 배웠습니다만, ‘요한복음 3장 16절’이 기독교 신앙의 정수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만약 어떤 교단이 요한복음 3장 16절에 어긋나는 가르침을 설파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무리 그들에게 눈부시게 아름다운 건물, 정장을 입은 말끔한 목사의 호소력 있는 설교 그리고 천사의 목소리를 지닌 성가대가 있다고 한들, 그들의 종교는 더 이상 기독교라고 할 수 없습니다. 기독교 아닌 다른 어떤 종교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핵심가치는 어떻습니까?
우리 헌법은 2개의 기둥 또는 주춧돌을 가지고 있습니다. 헌법 제1조와 제10조가 바로 그것입니다.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헌법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현행 헌법이 건재하는 동안에, 만약 누군가가 이 둘 중 하나를 부정하거나 공격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는 곧 대한민국을 공격한 것입니다. 그는 대한민국이 아닌 다른 나라를 세우려는 자입니다.
이번 계엄령은 대한민국의 이 2개의 주춧돌 모두를 무너뜨리고자 했습니다.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요건이 충족되지 않은 계엄령을 선포한 순간 그는 더 이상 우리의 대통령이 아니며, 그저 대한민국을 무너뜨리려는 공공의 적일 뿐입니다.
탄핵에 대해서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그 찬반이 일견 대등해 보이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법조인들에게 이 문제에 대해 찬반은 있을 수 없습니다. 만약에 대한민국과 헌법을 수호하는 교단이 존재한다면 어떨까요? 이 땅의 변호사들은 모두 우리 교단의 신실한 평신도들입니다. 악마를 변호하라는 신의 명령을 수행 중인 자들을 제외하고는 계엄령을 지지할 변호사는 세상에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진보, 보수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진심입니다.
그렇다면 사법부의 법관(헌법재판소 포함)은 어떨까요? 그들은 우리 교단의 거룩한 성직자들입니다. 그래서 사법부는 우리 체제를 유지하는 마지막 방파제 또는 등대와 같은 존재입니다. 법관 각자는 개인적인 정치적 견해가 있을 수 있으며, 특정 사안에 대해서 견해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서 견해라는 게 있을 수 없습니다. 그들 역시 모두 진심입니다.
헌법재판소 심판의 결과에 대해 염려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특히 헌법재판관의 개인적 성향에 따라 탄핵청구를 기각할지 모른다고 걱정합니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신성모독으로 파문당한 성직자가 과연 평신도의 일원으로서 평온한 여생을 보낼 수 있을까요? 아마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탄핵심판이 만장일치의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예상합니다. 내란 혐의에 대한 형사사건도 그 진행 양상은 조금 다를 수는 있으나 결과적으로는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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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AI로 핫한 딥시크(Deepseek)나 전기자동차 회사 비야디(BYD), 3D 낸드플래시의 양쯔메모리(YMTC), 로보택시 기업 위라이드(WeRide) 등 중국 기술기업들에 대한 뉴스를 접할 때마다, 심상치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2016-2019년 삼성전자-화웨이 분쟁 때 느꼈던 불안감 같은 게 다시 느껴집니다. 기시감이라고 해야할까요? 그들의 저력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습니다.
https://v.daum.net/v/20190308140513665
2018년,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산 제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면서 본격화된 미·중 간 무역 분쟁은, 단순한 무역 불균형 문제를 넘어 기술 경쟁, 군사 안보, 우주 개발, 이념과 체제, 에너지 확보, 환율 갈등 등 다양한 분야에서 양국의 패권 다툼으로 확산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조심스럽게 중국의 패배를 점치는 예측이 우세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현재 시점에서 보면, 미국의 봉쇄 전략은 기대만큼 효과를 내지 못하였고, 중국의 기술 자립 노력은 어느 정도의 성과는 거두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은 그렇다치고 우리나라는 어디로 가야할까요. 세상이 또 다시 변화의 물결로 요동치고 새로운 시대가 급박하게 도래하려는 중요한 시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탄핵이라는 정치적 문제에 발목이 붙들려, 경제를 포함하여 그밖의 모든 분야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번 내란 사태로 인한 정치적인 혼란이 하루 빨리 해소되어, 삼성을 비롯한 우리 기업들이 더욱 승승장구할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도 더욱 발전된 나라로 거침 없이 성장해나가길 간절히 소망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