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주나라 순례 ④ 고공단보와 기산 아래의 주원(周原)下

바오지주원박물원의 월인수문정(刖人守门鼎)

by 뜨끈한 콜라

주원박물원에 들어서며



이 박물관의 외관은 다소 낡아 보이지만, 내부로 들어서면 탄식(?)이 나올 정도로 잘 꾸며놓았습니다. 이곳뿐만이 아닙니다. 중국 어느 도시를 가더라도 역사 박물관이 있고, 이들 대부분은 우수한 시설을 갖추고 있습니다.


赫赫宗周 万邦之方 : 찬란한 종실 주나라, 만국의 본이 되다.

중국 정부는 박물관 건립과 운영에 상당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습니다. 2019년 베이징 국가박물관 재개관에만 25억위안(약 4,800억원)을 투입하였으며, 무료 운영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매년 30억 위안(약 5,700억원)을 지원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또한 중국의 박물관들은 디지털 전시나 인터랙티브 기술이 적극 도입되어 있습니다. 단순한 유물 전시를 넘어, 관람객들 직접 역사적 장면을 체험하고 몰입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중국의 박물관들을 방문해보면, 5천 년 역사에 대한 그들의 깊은 자부심과 자신들의 문화유산을 지키려는 굳은 의지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물론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한 우리 박물관들도 그에 못지않게 훌륭합니다. 그러니 우리도 박물관들을 더욱 아끼고 사랑하며 자주 찾아야 하겠습니다.

월인수문정 – 고대의 법과 인간


주원박물관에서 가장 인상 깊은 유물은 월인수문정(刖人守门鼎)입니다. 서주시대의 청동기들을 그동안 워낙 많이 봐서 그런지 일단 무심하게 지나쳤는데, 호기심이 많은 아내는 이 유물을 한참 동안 유심히 관찰하더군요. 그 모습을 보니 저도 관심이 생겨, 다시 돌아가 옆에 서서 같이 꼼꼼하게 살펴보았습니다.

2023. 1. 15. 월인수문정


이 청동기는 이층 구조로 제작되었습니다.


하층부는 숯을 넣어 상부를 가열하는 화로입니다. 전면에는 여닫이문이 설치되어 있는데, 좌측 문에는 동물 형상이, 우측 문에는 창고지기 모습이 장식되어 있습니다. 삽입식 빗장을 사용하면 문을 잠글 수 있을 것입니다.

2013. 1.15. 창고지기의 왼발을 주목.


그리고 상층부는 음식을 따뜻하게 보관하거나, 식재료를 즉석에서 데워 먹을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관찰력까지 좋은 아내는 창고지기에게 왼쪽 발이 없다는 점을 금세 발견하였습니다. 창고지기는 신체훼손형이자 치욕형인 월형(刖刑)에 처해진 자(刖人)였던 것입니다. 월형은 상나라 오형(五刑, 또는 육형) 중 하나로, 절도 등의 범죄를 저지른 자의 발목 또는 뒤꿈치를 잘랐던 형벌이었습니다.


2023. 1. 15. 확대된 스케치를 보면 더 명확하다.


주례에 따르면 묵형, 의형, 궁형, 월형, 곤형 등 본 형에 더하여 노역형을 병과하였습니다. 그 중 월형을 받은 자는 귀족의 목장이나 가축 우리를 지키는 일에 강제동원되었습니다.

(墨者使守门,劓者使守关,宫者使守内,刖者使守囿,髡者使守积).

발목을 자른 것은 도주 및 재범을 예방하기 위함이었으며, 감금 또는 방면 대신 노역형을 부과한 것은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형을 집행한 이후에도 풀어주지 않고 죽을때까지 노역을 시킨 것은, 수형자를 인격적 존재로 존중하기보다 국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소모품으로 취급한 무도한 처사였습니다.


상나라를 멸망시키고 등장한 도덕주의 주나라조차 오형이라는 악습을 폐지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 잔혹한 형벌제도는 한 동안 유지되다가 한나라 문제(漢文帝) 때 이르러 비로소 완화되었습니다. 한문제는 우측 발목을 자르는 대신 사형을, 좌측 발목을 자르는 대신 500대의 태형에 처하도록 명하였습니다.

2023. 1. 15. 주원박물원에는 흥미로운 유물들이 상당히 많다. 설명도 충실하다.


전국시대의 병법가로 알려진 손빈은 월형을 받았고, 역사가 사마천은 궁형을 받았습니다. 월형이든 궁형이든 죽음보다 가혹하다는 점에서 마찬가지인 형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손빈이 자결하지 아니하고 양족월형(兩足刖刑)을 감내한 것은 복수를 위해서였으며, 사마천이 사형 대신 궁형을 선택한 것은 부친의 유지를 완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토지를 집필한 위대한 소설가 박경리 선생은 말할 수 없는 치욕과 고통을 견디며 글을 썼던 사마천을 생각하며 자신도 고통을 견딜 수 있었노라고 했습니다.


사마천(司馬遷) - 박경리

그대는 사랑의 기억도 없을 것이다

긴 낮 긴 밤을

멀미같이 시간을 앓았을 것이다

천형天刑 때문에 홀로 앉아

글을 썼던 사람

육체를 거세당하고

인생을 거세당하고

엉덩이 하나 놓을 자리 의지하며

그대는 진실을 기록하려 했는가

《자유》, 1994


옛날의 그 집 (제4연) - 박경리

달빛이 스며드는 차가운 밤에는

이 세상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 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2008

다행스럽게도 우리 조상들은 상주시대 형벌제도가 아니라 주로 수당의 오형(태형, 장형, 도형, 유형, 사형)을 물려받았습니다. 태형과 장형은 여전히 신체에 고통을 가하는 방식의 형벌이었으나, 신체를 직접적으로 훼손하는 상나라 오형에 비하면 진보된 형벌제도였습니다.


월인수문정을 바라보면서 형벌의 목적(응보, 일반예방, 특별예방), 사회적 비용, 비례성과 정당성, 그리고 인간 존엄성 등 형사정책적 측면에 대해서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2025. 7. 6. 2024년도 양형기준에는 내란 또는 외환의 죄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는다.


우주의 무한한 공간과 시간에 비하면 한 인간의 일생은 한없이 미미한 것이며, 인류의 유구한 역사를 생각해 본다면 평범한 인간의 인생은 비루하기도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삶이라도 어떻게든 살아내는 것, 그리고 이왕이면 아름답게 살아가려 애쓰는 것, 그것이 우리 미미한 삶의 고귀함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주나라 순례 ③ 고공단보와 기산 아래의 주원(周原)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