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점에 서서
난생처음 겪어보는 회사 생활에 원래 다 이런 거구나 하고 참아내고 있었다. 견디는 것에 조금은 익숙해졌을 뿐, 매일같이 흩어져버리는 나 자신을 주워 담으려 애써도 상처가 온전히 아물지 못했고, 억지로 스스로를 위안하는 말로도 마음 깊은 곳까지 감화되지는 못했다. 조직의 부조리한 현실을 마주하고도 쉽게 입을 떼지 못했던 나의 영상이 마치 기억에 남는 영화 속 장면처럼 각인되어 나를 괴롭혔다. 상대방을 배려할 줄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개인적인 비하 발언을 듣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바보처럼 웃으며 넘어간 주인공의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화가 났다. 어찌 보면 이제는 벌써 구시대적 사고방식이 된 것 같아 보이지만, 좋은 사람의 기준이 선한 사람이라고 믿어 온 그는 그렇게 살아왔던 것이다.
이제껏 믿어 왔던 관념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하고 생각의 전환점에 서있는 순간은 꽤나 혼란스러웠다. ‘착하고 얌전하게 행동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지. 만만하게 보이지는 않을까? 남을 도와주면 좋은 평판보다는 업무 과중이라는 보답이 돌아왔어. 저 사람은 남들에게 평판은 좋지 않지만, 자기 자신에게는 편안한 삶을 선물한 것 같네. 조직의 위계질서를 지키는 것을 좋아하는 선배들과 수평적 기업문화로 바꿔나가려는 후배들 사이에서는 어느 선에서 조율하는 것이 적당하지?’ 혼자서 답을 찾기가 어려워서 회사생활, 인간관계 등에 관한 책을 읽어가며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빌렸지만, 책마다 사람마다 생각이 모두 다른지라 나의 주관이 없는 상태에서는 그저 사방에 넓게 펼쳐놓은 글자들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아직 해답을 찾지 못했다. 생각은 변화하고 싶어 꿈틀댔지만, 오랜 시간 동안의 관성을 행동이 이겨내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다른 선택지로 눈을 돌렸다. 지금까지 이 사회가 선호하는 사람이 되고자 공부하고, 대학에 가고, 회사에 취업하는 정해진 길을 걸어온 내가 처음으로 샛길을 발견하고 방향을 틀기로 결정한 것이다.
나는 퇴사하고 중국으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