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에 들어오면서 맞벌이는 사실 일상적인 가족 형태가 되었다. 많은 가정의 남편과 아내들이 함께 취업 시장에 뛰어들어 본인의 역량을 발휘하고, 돈을 벌어온다.
일부 가정의 경우에는 아내가 남편보다 훨씬 더 많은 부분 기여를 하고 있는데, 이런 여성들은 일은 일대로, 또 아내와 며느리 역할은 그 역할대로 맡아하느라 지쳐있어 안타깝다.
주변에서 많은 전문직 여성을 만나본 나는, 그녀들이 일과 가정에 끼어 많은 스트레스와 부당한 대우로 힘들어하는 것을 본다.
남편의 네 배의 월급을 받으면서도 시댁 제사에 수시로 부름을 받아 근무 후 쉬지도 못하고 시댁으로 향하는 그녀, 취업 준비로 일을 하지 못하는 남편 뒷바라지하느라 늦도록 일하면서도, 집으로 돌아와 씻지도 못한 채 아이들의 알림장부터 챙기던 그녀, 매년 명절을 챙기느라 당직 시간표를 조절했었는데 이번 명절은 피할 수 없이 자리를 지켜야 했던 그녀가 시댁으로부터 들었던 서러웠던 꾸지람.
결혼은 계약이다. 당당해져라.
결혼, 사랑하는 사람과 일생을 함께 보내는 아름다운 동행이다. 하지만 사실 그 유래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렇게 감미롭지 않다.
여자 쪽 집에서 남자 쪽으로 딸아이를 보내 식구(食口) 하나를 던다. 이제 이 딸아이는 남자 쪽 집안에서 먹여 살릴 것이다. 시집 온 며느리는 남편의 자손을 생산해 집안의 대를 잇는다. 나이가 드신 시어머니를 대신해 가사도 도맡는다.
경제력이 없던 여자가 남편의 경제력에 기대어 생활하고, 대신 대를 잇고 가사를 하는 두 집안의 계약. 이것이 결혼의 본래의 의미이다.
시대가 바뀌면서 배우자를 본인이 사랑하는 사람으로 선택한 다는 점, "1부 1 처제"가 법적으로 보장되었다는 점 등이 다르긴 하지만, 결국 그 밑바탕에 깔린 결혼의 의미는 야박하지만 "계약"이라는 사실이다.
우리 사회에 아직도 아들 가진 유세가 존재한다는 것, 명절엔 시댁부터 가야 한다는 것, 장모님보다는 아직 시어머님이 더 기세 등등하신 것등이 바로 이런 관점이 기저에 깔려있어서가 아니겠나 싶다.
듣기 좀 불편하겠으나, 당신들의 입장에선 "아들의 경제력에 기대어 사는 며느리에 대한 타당한 요구이며 유세"이니, 영 이해가 되지 않는 바는 아니다.
근데 문제는 그 반대편에 있다.
요즘 많은 여성들이 맞벌이를 하고 있으며, 일부 여성들은 남성보다 훨씬 더 많은 부분 가계에 기여를 한다. 그 옛날 계약 방식에 따르자면, 마땅히 대우받고 존중받아야 할 여성들이 많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시댁에서는 그것과 상관없이 시댁에 대한 도리를 강조하니 영 불합리하다.
말했듯이, 결혼은 계약이다.
어느 한쪽이 경제력을 담당한다면, 다른 한쪽이 남은 문제(가사 및 양육)에 더 신경 써야 한다.
혹시 오늘 아침도 일로 힘든 아내에게 아내의 역할 운운하며 아침 식사를 요구한 건 아닌가?
아내가 가계를 상당 부분 책임진다면, 남편이 남은 아내의 역할을 해야 한다. 소소한 아이들 학교 문제이며, 가사문제를 남편이 상당 부분 부담해 해결하는 것이 옳다. 이미 가장 역할을 하는 아내에게, 남편은 일부이더라도 전통적인 가정에서 아내가 맡아왔던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
며느리가 가계를 책임지고 있다면, 시어머니 역시 아들의 부담을 줄여준 며느리의 수고를 인정해야 한다. 며느리 도리를 운운하며 제사나 명절에 무리하게 불러 내리지 말아야 한다. 자꾸 봐주다 보면 시댁을 우습게 볼까 걱정되시는 마음에, "시댁의 권위" 차원에서 무리하게 불러내리시는 분들이 있다. 근데 솔직히 말하면 그것으로 살릴 수 있는 권위가 아니다.
혹여 돈 많이 버는 며느리가 행여나 당신 아들 기라도 죽일 새라 전전긍긍, 더 닦달하는 분들도 계시다. 감히 참으로 어리석으시다고 말하고 싶다.
아내가, 며느리가 당당해야 한다.
가계를 책임지며 수고를 하고 있다면 본인의 수고에 당당해져야 한다. 남편을 무시하고 시댁을 무시하라는 말이 절대 아니다. 본인이 하고 있는 역할에 대한 가치를 인정받으라는 말이다. 명절이니 제사니 하는 시댁일에 본인이 할 수 있는 만큼만 참여해야 한다. 다 하려고 하지 마라, 다 못한다. 의례 다 하는 며느리, 다 해야 하는 며느리로 보게 된다. 점점 고달파질 뿐이다.
슈퍼맘은 없다
우리 사회는 슈퍼맘을 강요한다. 안에서든 밖에서든 잘하라 한다.
모든 맞벌이 여성들에게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은 부담을 안기고 있다.
오늘도 방송에서는 슈퍼맘 **씨를 소개합니다, 온통 슈퍼맘 이야기다. 나도 슈퍼맘이어야 할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 나쁜 엄마 나쁜 며느리가 된 것 같아 자책하고 슬퍼한다. 가혹하다.
방송에 등장하는 일명 "슈퍼맘"들, 하지만 사실 그들도 주변의 누군가에게 다 도움을 받고 있고, 같은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방송에서 보이는 게 다가 아닌 것쯤은 알지 않는가?
두 마리 토끼? 못 잡는다.
둘 다 잘할 수는 없다.
우왕좌왕하다 둘 다 놓치는 일이 없도록,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 지어야 한다.
무리해서 아내와 며느리의 역할을 힘들게 감당하려 해서는 안 된다. 완벽한 며느리와 완벽한 아내이고 싶은 욕심에 할 수 없는 것들을 억지로 하기 시작하면 결국에는 곪아 터진다.
부부싸움이 되고, 심한 고부갈등을 가져온다. 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해 스스로 인정하고, 상대방도 인정시켜야 한다. 슈퍼맘 되려다 사람 잡는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잘 지낸다
일하는 엄마들은 아이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해 아쉽고 괴롭다.
하지만, 출퇴근길 매일 잠든 아이만 바라보며 눈물짓고 있다면 감히 쓸데없는 가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 마음은 이해하지만 자책하지 말길 바란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부모에 대한 이해심이 많다. 엄마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배려한다.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에 충분히 사랑해주면 된다. 괜히 감상에 젖어 눈물지을 필요 없다.
나는 세 아이를 키우며 8년은 맞벌이로 6년은 프리랜서를 가장한 전업주부로 아이들을 키워왔다. 첫째와 둘째는 시어머니의 도움을 받아가며 맞벌이 상황에서 양육했으며, 막내는 출산부터 지금까지 온전히 내 손으로 키워오고 있다. 어떤 방식이 더 힘들고 덜 힘들 고의 기준을 잡기는 어렵다. 하지만 각각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 그리고 해야 하는 일과 안 해도 되는 일에 대한 기준은 명확히 잡혔다.
감히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엄마가 하루 종일 시간을 함께 해준 아이나, 그렇지 못한 아이나 동일한 부모 밑에서 나오 자란 아이들은 비슷한 성향과 애착으로 잘 자라준다는 것이다. 성격적인 다름에서 오는 차이는 있으나, 내 손으로 키우지 못했다고 해서 오는 "특별한 다름"은 없다.
오히려 일하며 키운 아이들은 일하는 엄마에 대한 이해가 더 깊고, 아빠와 동일한 엄마의 수고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일하는 엄마가 당당해지는 그날까지....
오늘도 세상에서 가장 바쁜 아침을 보냈을 일하는 엄마들에게 진심으로 찬사를 보낸다. by 허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