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밍 May 08. 2019

남편의 수고

아이들에게 아빠의 수고를 가르쳐야 한다.

몇 년 전, 온라인에서 참으로 통탄할 만한 초등학생의 시를 본 적이 있다.

엄마가 있어 좋다.
나를 예뻐해 주셔서.

냉장고가 있어 좋다.
나에게 먹을 것을 주어서.  

강아지가 있어 좋다.
나랑 놀아주어서.

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한 예능프로에서도 이 시를 언급하며, 한참을 웃음의 소재로 삼아 웃고 즐기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아빠와 시간을 자주 보내지 못하는 아이들이 아빠의 존재 이유를 느끼지 못하고, 도대체 아빠는 뭐 하는 사람인지 이해하지 못한다며 "아빠들 잘 좀 합시다" 뭐 이런 뉘앙스였다. 아이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며 아빠들에게 "자성(自省)"을 당부하며 웃어대는 모양이, 나로서는 참 불편했다.




사실 한국의 아빠들은 가정을 위해 가장 희생하고 있는 존재이다.

물론 요즘은 맞벌이가 많아 부부가 함께 가계를 이끌어나가는 가정이 많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많은 가정에서 아빠 홀로 가계를 책임지고 있다. 이렇다 보니, 아빠들은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다. 아이들의 잠든 모습을 보며 이른 아침 출근하며, 아이들이 잠이 들고 나서야 퇴근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평일에 시간을 내어 아이들과 함께 하기란 사실 참 어려운 일이다.


주말에는 평소 밀린 피로로 인해 하루 종일 지쳐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인지 주말 역시도 아이들과 알찬 시간을 보내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누적된 피로에 늦잠을 자고, 하루 종일 소파와 물아일체(物我一體)가 된다.


온전히 아빠를 마주하는 시간인 주말, 아이들이 "드디어" 마주한 아빠는, 실망스럽다.

느지막이 일어나 늦은 아침을 요구한 아빠는, 식사 후 부른 배를 만지며 아이들을 불러냈다. 평소에 얼굴 볼 시간이 적었던 탓에 아이들과 좀 놀아줄 심산인 듯 보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3인용 소파 하나를 다 차지하고 누워 리모컨만 눌러댄다. 아빠와의 즐거운 주말을 기대했던 아이들은 만족할 만한 "재미"를 주지 못하는 아빠가 불만이다.

왜 저렇게 소파와 일체가 되어 있는지도.. 거기다 평소에도 매일 늦는 아빠를 향한 엄마의 넋두리만 듣다 보니, 아빠는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인가 싶다. 왠지 가정은 돌보지 않고 하루 종일 밖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아 원망스럽기도 하다.


그래서 탄생한 "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는 시구(詩句).



아빠의 이미지는 엄마 손에 달렸다.  


아빠와 교류할 시간이 충분하지 못한 아이들에게, 아빠를 이해하게 해주는 유일한 정보원은 엄마이다. 엄마가 아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또 어떻게 아이들에게 설명해주느냐에 따라 아이들의 아빠에 대한 이미지와 감정이 결정된다.

그야말로 결정적이다.


하루 종일 엄마와 함께 생활하는 아이들은, 엄마에 대해서는 자연스럽게 긍정적인 감정이 형성된다. 끈끈한 애착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신뢰가 상당하다. 이렇다 보니, 아빠에 대해 한 마디씩 내뱉는 엄마의 말들은 한마디 한마디가 아이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네 아빠는 오늘도 늦으신 댄다. 또 친구들 만나 술이라도 마시나 보네”

“하여간 지 아빠 닮아서 게으르기는..”

“늦게 올 땐 저녁이라도 좀 먹고 오지…”

“소파에 누워만 있지 말고 청소기라도 좀 돌려요!”


매일 엄마로부터 아빠에 대한 불평만 듣게 된 아이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아빠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된다. 세월이 지나 사춘기에 접어들면서는 그 감정이 더 강화되기 시작하는데, 좀 극단적으로 말해, ‘매일 자기 일에 바빠 가족들과는 시간을 보내주지 않는 게으른 아저씨..’ 정도로 생각하게 된다.




젊은 시절 직장에서 고군분투하던 아빠들은, 아이들이 사춘기가 되는 시점인 40대 후반이 되면서는 시간이 좀 나기 시작한다. 직장에서도 자리를 잡았고, 눈치를 봐야 하는 대상도 많이 줄어든 탓일 테다. 이제 숨 좀 쉴만해진 아빠들은 그동안 아이들과 함께 하지 못했던 시간이 맘에 걸려 노력하기 시작한다.  

아이들의 관심사가 뭔지, 학교 생활은 어떤지, 친구들과는 잘 지내는지, 궁금한 게  많아졌다. 오늘 저녁엔 일찍 퇴근해 아이들과 대화를 좀 해볼 참이다.

온 가족이 함께하는 저녁식사가 오랜만인 아빠는 이제 대화를 좀 해볼까 한다. 그런데, 어떤 말로 시작해야 하나 잘 모르겠다.  

고심 끝에 한다는 말이,  


공부는 잘하고 있냐?


이런...

아이들은 다시 입을 닫아버렸다.


이제라도 아이들과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하는 중인데 아내는 가혹한 한마디를 툭 내던진다.

"애들 어릴 때는 같이 놀아주지도 않더니, 이제 와서  대화? 애들이 어색해하고 싫어하는 게 당연하지!"

"애가 몇 학년 몇 반인 지는 알아?"

1반이면 어떻고 2반이면 어떤가, 알려주면 그만인 것을..


이렇게 오늘도 아빠는 고립된다.



아이들이 아빠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가지게 되는 원인의 상당 부분은 주양육자인 엄마에게 있다.


"아이들과의 애착형성 기회"의 면에서 보자면, 집에서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 엄마의 입지는 참으로 견고하다. 그에 비해, 집 밖에서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아빠들은 억울하기가 그지없다.

자신들도 집에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다. 그 마음이야 그 누구보다 간절하다. 다만 가장으로써 가계를 책임지다 보니,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과는 다른 형태로 아이들을 위해, 가정을 위해 열심히 살기로 했다.


엄마는 아빠의 노력에 대해, 가장의 무게에 대해 아이들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이해시켜야 한다.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진 못하지만, 아빠가 얼마나 아이들을 사랑하는지, 그리고 우리 가정을 위해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 수시로 인지시켜야 한다. 아이들에게 아빠의 수고를 알도록 해, 감사하는 마음을 갖도록 항상 교육해야 한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 말해주지 않으면 모른다.


아빠에 대한 마음이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 하는 것은 장기적인 부자(父子)/부녀(父女) 관계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자주 보지 못하더라고 긍정적인 마음을 항상 품고 있다면, 설령 오랜만에 보는 아빠가 어색하더라도, 감사함으로 관계 개선이 가능하다. 하지만 부정적인 마음을 갖고 있다면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한 아빠에 대해 쉽게 불만이 쌓여갈 것이고, 쉽게 관계가 회복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맞벌이로 인해 엄마 아빠가 다 일하는 가정의 아이들의 경우는, 적지만 아빠와 엄마가 거의 동일한 비율로 시간을 함께 갖기 때문에 아빠가 상대적으로 더 "나쁜 부모"가 될 가능성이 적다. 하지만, 아빠 홀로 가계를 책임지는 경우, 아이들은 엄마와 훨씬 많은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아빠가 상대적으로 평가절하된다.


엄마의 역할이 더더욱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늘도 늦는 남편.

늦은 시간까지 홀로 고군분투하는 아이들과 똘똘 뭉쳐 고립시키지 말길 바란다.

누구보다 일찍 들어오고 싶었던 사람은 남편 자신이다.


오늘도 소파와 한 몸이 되어 있는 남편이 맘에 들리는 없지만, 그들의 수고를 한 번쯤은 돌아봐주길 바란다.

고달프고 수고로운 한 주를 보낸 우리 집 가장(家長)이다.  





이전 02화 취집이 어때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