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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밍 Jul 19. 2019

여보, 나 잠시만 동굴에..

나만의 피난처를 찾아야 한다. 

어린 시절,

한 번씩, 간헐적으로 엄마가 사라졌었다.


"엄마~~"

집이 떠나가라 엄마를 불러댔다.


"엄마 어디 갔어?"

"몰라"

"언니는 봤어?"

"아니, 어디 가셨지?"


아빠도 엄마의 행방을 모르셨다.


"네 엄마 어디 갔나?"

"모르겠어요"


남은 가족끼리 이리저리 말을 주고받으며 엄마의 행방을 찾아대고 있노라면,  기역자 싱크대의 꺾어진 코너에서 엄마가 슬그머니 일어나셨었다.


"왜 무슨 일이야?"

"엄마 거기서 뭐해요?"

"그냥~"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또 이어 집안일을 하시며 이리저리 분주하셨다.


그 이후로도 한 번씩 엄마는 사라졌었다. 설거지를 하다가 갑자기, 빨래를 돌리다 갑자기.. 그때도 어김없이 수 분이 지난 후 엄마는 싱크대 구석에서 슬그머니 일어나셔서 하던 일을 이어 가셨다.




사랑하는 남편을 만나 둘이 꽁냥 대다가, 2년 만에 첫 아이를 출산했다. 그 전까진 겪어보지 못했던, 상상하지 못했던 물리적, 감정적 일들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차분히 생각할 시간도 줄었고, 아니 없어졌고, 가만히 얼굴을 들여다 보고 단장할 시간조차 없어졌다. 이제 아이를 셋 쯤 키우다 보니, 애 하나 정도야 거저 키울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지만, 그땐 처음이라 그랬을까 모든 게 낯설고 힘겨웠다.


일에 가사에 육아에 정신없이 십여 년을 보냈을까, 정신없이 30대를 다 보내고 40대 중반에 들어섰다. 아이도 많이 자랐고, 육아에도 이젠 베테랑 소릴 듣게 되었으며, 일도 가사도 조절하는 능력이 생겼다.


하지만 여전히 뭔가 힘겨울 때가 있다.


우린 정서적으로, 물리적으로 아이들과, 남편과 꽁꽁 묶여있다. 가끔 그 연대가 힘에 부칠 때가 있다. 잠시 다 풀고 나 홀로 있고 싶을 때가 있다. 아무 생각 없이 바닥에 주저앉아 한참을 멍하니 있고 싶을 때..

남편들 역시 다르지 않을 터.


"극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예전 한 CF에서 그 광고 카피를 듣고 정말 그랬었다.


"맞아, 정말 극렬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지, 그저 나 홀로 온전히 멍하게 있고 싶을 때가..."



우린 누구에게나 동굴이 필요하다. 북적이는 일상에서 다 내려놓고 들어가 쉴 곳. 바쁘게 돌아가던 몸과 마음을 다 멈출 수 있는 곳, 주렁주렁 달려있는 관계들을 잠시 풀어놓고 주저앉아 있을 수 있을 곳. "남자들은 자신들만의 동굴이 있다면서요?" 남자들 뿐일까? 인간은 누구나 철저하게 구분된 내 공간이 필요하다. 내 정서적 바운더리 말이다.


사랑하지만..


결혼은 둘이 하나가 되는 과정이다.

하지만 원래 둘이었던 우리는 온전히 하나가 될 수 없다.  

하나가 되어야 할 때도 있지만 필요에 따라 우린 완벽히 둘이 되어야 한다.



누군가는 그렇게 말한다. 권태기가 아니냐고, 사랑이 식은 게 아니냐고.

"개인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상대방에게서 서운함을 느끼기도 하고, 권태를 의심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주장이 사랑과 권태로만 언급되기엔 억울한 면이 있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개인적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시간이 행복하고 만족스럽지만, 나 개인에 대한 감정적 독립은 또 다른 문제이다. 오랜 시간 "나 자체"가 보장받지 못하면 알 수 없는 피로와 우울이 쌓인다.  


"여보 나 잠시만 동굴에...."


내 공간을 갖는다는 것은 북적대며 돌아가는 일상 속의 작지만 큰 피난처로의 의미를 갖는다. 내 공간이라는 것은 이런 물리적인 분리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살다 보면, 감정적 내 공간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낀다. 오롯이 나만 생각할 수 있는 시간, 그렇게 멍을 때릴 수 있는 여유와 감정의 경계가 절실하다. 물리적 공간이 그렇게 필요한 이유는 결국 일상에서 보장받지 못하는 내 정서적 바운더리를 확보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엄마도 맘 편히 똥 좀 누자!"


"해우소(解憂所)"


근심을 해결해주는 장소, 해우소. 화장실.

맞는 말이다. 온전히 홀로 앉아 멍을 때릴 수 있는 곳. 누구의 간섭도 참견도 받지 않고 딴짓을 할 수 있는 곳.

그렇게 다시 나 자신을 추스를 수 있는 곳.


떨어지지 않는 아이 때문에 화장실도 제대로 갈 수 없어, 등에 업은 채로, 또는 품에 안은 채로 힘겹게 용변을 본 적이 있다. 엄마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봤을 일이다. 그때 나에겐 해우소가 더 이상 해우소가 아니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어린아이를 키우는 일이 유난히 더 힘겨운 이유는 정서적 감정적 내 공간을 단 한 순간도 보장받지 못해서였다. 물론 몸도 힘들다. 하지만 그 시절이 유난히 힘겨웠던 이유는 내 개인의 정서적 바운더리가 무너져서가 아닐까.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고, 말이 통하기 시작하면, 우린 이제 그동안 무너져 있었던 감정의 경계를 다시 세워야 한다. 아이를 이해시키고, 가르쳐야 한다. 일찍부터 가르치지 않으면 다 자라서도 내내 엄마를 불러댈 것이다. 그렇게 엄마의 개인 공간으로 불쑥불쑥 들어올 것이다.



나만의 동굴을 찾아야 한다.



늦은 아침의 혼밥, 하루 중 나의 첫 호사


손주들이 보고 싶어 올라오신 어머님이 아이들 아침을 먹이며 분주한 나에게 걱정 어린 한마디를 하신 적이 있다.


"왜 애들 먹을 때 안 먹니?"

"준비시키느라 정신이 없어서요"

"왔다 갔다 하면서 중간중간 입에 넣어라, 안 그럼 기운 빠져 안된다"


'아뇨... 결코..'


나에겐 아이들을 보내고 적막한 주방에 앉아 홀로 차분히 먹는 아침식사가 나의 하루에서 처음 맞이하는 호사이자 피난처이다. 사실 뭘 먹느냐는 중요치 않다. 대부분의 아침은 아이들이 먹다 남긴 계란 프라이 반쪽, 소시지 한 조각 등이지만, 그저 한 바탕 소란이 끝난 후 적막한 기운을 느끼며 먹는 이 시간이 오전 중 내가 가장 기다리는 시간이기도 하다. 소소하지만 절실한 나의 동굴이다.



남편의 동굴


방 세 칸짜리 아파트에서 십여 년간 전세로 지냈던 우리 가족은 몇 년 전 꿈에 그리던 방 네 칸짜리 내 집을 장만했다. 세 아이를 키우다 보니 방 세 개는 언제나 빠듯했다.

방이 하나 더 늘면서 남편은 꿈에 그리던 "내 방"을 갖게 됐다.

이사를 오기 전부터 남편은 A4 용지를 하나 올려두고는 그렇게 설레어했다.


"책상은 가운데 딱 둘 거야, 문을 바라보게 말이지, 책장은 이쪽에 요렇게 두고, 기타랑 보면대는 요기 요 옆으로..."


지웠다 그렸다를 반복하며 크지도 않은 세평 남짓한 방 도면에 이것저것 그려 넣는 걸 보니 웃음이 나왔다.  


멋진 자신만의 동굴이 생긴 남편은 종종 그곳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뭘 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곳이 생기기 전보다는 정서적으로 훨씬 더 윤택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게 틀림없어 보인다.


"여보, Have a great time!"




우리 엄마는 그래서 그렇게 싱크대로 숨어드셨던 것 같다.


그 시절, 물리적으로 엄마 개인의 공간이 마련되지 못했던 터라 손쉽게 감정적 경계를 세울 수 없었던 엄마는, 그렇게 본능적으로 기역자 싱크대의 구석을 찾아들어갔던 게 아니었을까 싶다. 거기서 오롯이 감정을 추스르고, 복잡한 머릿속을 비우셨던 게 아닐까 싶다.


난 우리 엄마보다 운이 좋은 건지, 좀 더 큰 부엌을 가졌고, 그 덕에 디귿자 싱크대를 놓았다.  숨기가 더 쉬워졌다.


아이들의 북적임, 하루 종일 나를 찾아대는 아이들과 남편의 소리가 행복하다가도 우린 이것들이 불현듯 힘에 부칠 때가 있다.

그럴 때, 내 피난처를 찾아야 한다. 잠시 몸도 마음도 멈춰야 한다.  


행복한 일상이 가끔 힘에 부칠 때면 난 자석에 이끌리듯 디귿자 싱크대의 구석진 코너로 가 앉는다. 젖은 고무장갑을 낀 채로, 먹던 밥 숟가락을 잡은 채로 그렇게.


그렇게 멍을 때린다.

그렇게 오늘도 충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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