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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밍 May 15. 2019

취집이 어때서

가사도 일처럼 해라.

최근 한 방송사의 아나운서가 방송일을 그만두고 재벌가로 시집을 갔다.

이를 두고 댓글에는 한마디로 난리가 났다.


'취집이나 가려고 그 어려운 시험을 봤냐'

'완전 취집이네요'

'나도 취집 하고 싶다~'


온통 "취집"얘기 들이다.



요즘 경제력이 없는 여성이 경제력 있는 남성과 결혼하는 것을 두고 '취집'이라는 단어를 쓴다.

댓글만 봐도 분위기를 알 수 있듯이 결코 좋은 의미로 쓰는 것 같지는 않다.

좀 여과 없이 말하자면 결혼을 통해 먹고 살길을 찾는다는 것, 일 자리를 찾듯이 결혼 자리를 찾아 생계를 유지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근데 취집이 어때서?


비단 재벌가에 시집가는 여성들뿐만이 아니다. 취집은 기본적으로 결혼을 통해 경제력을 해결하는 모든 여성들에게 다 해당되는 말일 것이다. 따지고 보면 맞벌이가 아닌 이상 우린 다 취집을 왔다고 보면 된다.


우리는 사랑이란 것을 기반으로, 서로의 필요에 의해서 결혼이란 걸 했다. 그랬다면 맡은 바 역할을 해 나가면서 서로의 필요를 채워줘야 한다.  

남편은 경제활동은 하고, 아내는 육아와 가사를 돌보며 철저한 역할분담을 해 맡은 바 대로 가정을 꾸려나가면 된다.  듣고 보니 참으로 구시대적 발상으로 보인다. 비난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럼 결혼에 대해 어떻게 정의 내리길 원하나, 사랑의 결실? 종착역? 평생의 동반?


글세... 결혼이라는 것에 대해 수많은 낭만이 존재할 테지만, 결국 이것저것 다 벗겨낸 결혼의 민낯은 결국 '필요에 의해 이루어진 두 남녀의 결합' 아닐까?

여성의 각도에서 보자면, 맞벌이로 가계 수입에 일조하는 여성도 있을 것이고, 취집을 통해 가정 운영에 일조하는 여성도 있을 것이다.

결혼이라는 결합에 참여한 형태적 차이일 뿐 취집이라고 해서 이렇다 저렇다 비난할 이유는 전혀 없다.


문제는 누가 봐도 취집을 했음에도, 매사 사랑 령을 하며 맡은 바 소임을 다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결혼은 당연히 두 사람의 사랑을 기반으로 형성된다. 하지만 그와 함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서로 간에 지킬 건 지켜야 하는 계약이라는 점이다. 다소 야박하게 들릴지 몰라도 결혼이라는 것은 어느 한쪽의 희생을 강요할 수 없는 동등한 계약이어야 한다. '사랑'으로 다 감싸주기엔 한계가 있다.

 



취집? 맞다.  우린 취집을 했다. 그게 뭐 어때서?


다만 취집을 했다면 가사도 육아도 "일"처럼 해야 한다.

가사도 육아도 기본적으로 내 일이다.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 양해를 구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는 원래 내가 맡은 일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실 부부관계에서 일어나는 갈등의 상당 부분은, '기대되는 바의 역할을 제대로 해주지 않는 상대방'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된다.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세상 모든 남편들은 가정 주부인 아내가 육아와 가사를 온전히 책임져 주길 바란다. 아침도 저녁도 충실히 챙겨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도와주고 배려해 줄 용의는 충분히 있지만, 기본적으로 아내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요즘 같은 세상에 이걸 대 놓고 말하자니 여자들에게 돌 맞을 짓이지 싶다. 세상천지 이런 고리타분한 남편이 없는 것 같다.  쿨한 척, 세련된 척하며 그저 속에만 넣어둘 뿐이다.
세월이 쌓이고, 바깥일이 힘겨워지면 불만은 언젠가 터져 나온다. 갈등의 시작이다. 하지만 그 이유를 정직하게 드러내자니 참 구차스럽다. 결국 쓸데없는 말들로 주변만 빙빙 돌뿐이다. 해결이 쉽지 않다.

  



아침 일찍 출근하는 남편을 위해 식사를 준비하는 것, 아이를 양육하는 것, 가사를 돌보는 것 등 말하고 보니 고리타분하기 그지없는 이 일들은 사실 우리가 맡은 일들이다. 책임감을 갖고 임해야 한다.  


10시 넘어 늦은 귀가를 한 남편이 아직 저녁 전이라 한다. 깨끗이 정리된 부엌을 다시 어지럽히자니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온다. 식탁 위에 놓이는 반찬 그릇에 짜증이 여지없이 실렸다. 눈 한번 마주치지 않고 밥솥 뚜껑을 확 열어째끼며 한마디 했다.  


"이 시간까지 안 먹고 뭐했어, 저녁은 좀 먹고 오지"




우린 착각하고 있다. 문 닫은 주방을 다시 들어가야 하는 수고스러움을 생각해야 할 게 아니다. 그 시간까지 저녁도 먹지 못한 남편을 안쓰러워하며 저녁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 수고는 우리가 해야 할 역할이다. 선심 쓰듯 하지 마라.


취집? 괜찮다. 혹 내가 하는 결혼이 취집 같다고 생각 되는가?

취집을 부끄러워하지 마라. 취집임에도 맡은 바 할 일을 다하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길 바란다.


혹 취집을 가게 될 수도 있는 나의 두 딸이 맡은 바 소임을 다하는 책임 있는 주부가 되길 바라며.. 


by 허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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