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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밍 Apr 12. 2019

엄마 됨

'독박 육아'라는 단어가 불편한 나는 꼰대인가..


임신과 출산은 여성의 특권이다. 


아이를 품게 되는 시점으로부터 여성은 평소보다는 몸을 조심해야 하고, 먹는 것도 신경을 쓰게 된다. 우리 사회는 임신한 여성들을 위한 여러 배려를 행하고 있다. 지하철에는 임신한 여성을 위한 배려석도 마련해놓았고, 버스에서 부른 배를 안고 휘청거릴라치면 얼른 자리를 양보해주는 선한 시민들이 많다. 물론 이를 무시하고 개인적인 이기심을 채우느라 꼼수를 쓰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런 사람들은 어디에나 존재하기 마련..


사실 우리 사회에선 임신을 했다는 것만으로 배려의 대상이 되고, 남편들은 아홉 달 내내 눈치 아닌 눈치를 본다. 

젊은 시절 소위 밭매다가 애를 숨풍 숨풍 낳던 시절의 시어머니들은, 임신 기간 내내 뭐가 그리 조심스러운지 유난스러운 며느리가 당최 이해가 안 된다. 하지만 요즘 그런 내색을 보이기라도 했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고부갈등의 초석이 마련된다는 것을 알고 계시는 당신들은,  최대한 ‘어른인 내가 너희 젊은것들을 이해한다’는 심정으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많은 배려를 하려 애쓰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며느리들은 임신기간 중 시댁으로부터 상처 아닌 상처를 받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맞다. 임신은 배려받고 이해받아야 한다. 

몸도 변하고 호르몬으로 인해 정신도 변한다. 또한 출산은 가끔 죽음에 이르기도 하는 기쁘지만 위험한 이벤트이다. 배려받고 축복받아야 할 일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부간의, 또 고부간의 갈등이 슬슬 고개를 드는 시점도 바로 이 시기이다.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는 갈등이 점점 본격화된다.

안타까울 따름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우린(나를 포함한, 우리 여자들을 이제 '우리'라고 칭해볼까 한다) 사실 임신과 육아에 좀 유난스러운 게 아닐까 한다.  

몇 시간씩 비행기를 타고 태교여행은 갈지 언정, 일 년에 한두 번 있는 명절에 시댁을 방문하는 일은 괜히 아이한테 안 좋을 것 같다. 

출산 후에는 2주에 몇 백만 원씩 하는 조리원에 꼭 가고 싶다. 그 기간만큼이라도 여왕처럼 쉬다 오고 싶다. 망설이는 남편에게 '애를 낳아주는 데 이 정도도 못해주냐'며 불평하기도 한다. 아이 낳느라 고생한 아내를 서운하게 하기 싫어 최대한 맞춰주려고 노력하던 남편들도 이제 점점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바다 같은 마음으로 최대한의 배려를 해 주고 있다고 여기고 있는 시어머니도 갈수록 유난스러워지는 며느리가 못마땅하다. 


때문인지 임신과 출산을 기점으로 부부 사이에도 고부간에도 심심찮게 갈등이 유발된다.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하고 키워내는건 말 그대로 여성의 특권이다. 

위험을 감내하는 일이지만 내 배 속에서 오롯이 아홉 달을 품으면서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특별한 인연은 시작된다. 아이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엄마의 냄새를 알고 엄마의 심장소리와 목소리를 구별한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엄마를 느끼고, 엄마를 갈구한다. 



자식을 키우다 보면 꽤나 감격스러운 순간들이 있다. 

숨이 넘어갈 듯 울어 제키는 아이, 그 누가 안아주고 달래주어도 소용없던 아이가 엄마인 내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내가 받아 안는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잠잠해질 때. 

잠에서 깨어 눈도 뜨지 못한 채 슬피 울다가도 내 살 냄새를 맡는 순간 자석처럼 젖을 물고 새근새근 해 질 때, 

오래간만에 끈적해진 몸을 좀 씻고자 잠시 샤워를 하는 사이,  

그 순간을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울음을 터뜨릴 때,

아빠 품에 안겼음에도 저 작은 몸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엄마를 찾아, 젖은 몸을 채 닦을 새도 없이 축축한 몸으로 받아 안았는데, 축축함과 상관없이 그 새 생긋 웃을 때..



맘먹고 나열하면 이 뿐일까…

입덧으로 고생해가며 내 배 속에서 오롯이 아홉 달을 품어낸, 

단잠 포기해 가며 젖 물린 수고에 대한 보상인가 라는 생각이 든다. 

해서 출산과 육아는 여성만이 누릴 수 있는, 값진 보상이 따르는 수고이자 특권이 아닐까.. 






임신과 출산, 육아는 상당 부분 여성이 감내한다. 

이 때문에 여성들은 이 같은 육체적인 고통과 수고가 가끔 억울하다. 

하루 종일 꼬맹이랑 씨름하는 나를 두고 회식이네 모임이네 코빼기를 보이지 않는 남편이 꼴 보기가 싫고, 손주 보고 싶다며 명절 연휴에 일찌감치 내려오라고 성화이신 시어머니도 짜증 난다. 

하루 종일 젖먹이며 똥 기저귀 갈며 거지꼴로 보내고 있는데, 평소와 같이 멋지게 차려 입고 상큼하게 출근하는 남편 뒤통수에 갑자기 울화통이 치민다. 

그래서 오늘 강남 고깃집에서 회식을 마치고 고기 냄새 풀풀 풍기며 돌아온 남편이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아이 똥 기저귀를 냅다 던졌다.


“애 목욕은 자기가 좀 시켜!”

“나도 일하고 왔어, 힘들다고!”

“자긴 밖에서 그래도 재미있게 보내다 왔잖아! 난 하루 종일 집구석에서 애랑 뭐했는지 알아? 

얼마나 힘든지 아냐고?”

“난 뭐 노냐?”


이렇게 시작된 또 한바탕의 다툼… 여자는 서러워서 펑펑 울고, 남자는 답답해서 안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는다.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 봤을 상황. 


나 역시 아이를 셋 키우며 수년의 소위 말하는 양육의 암흑기를 보냈다. 같은 문제로 남편과 갈등했고, 시어머니와 갈등했다. 나만 피해 보는 것 같고, 나만 억울한 것 같았다. 

애는 같이 낳았는데 왜 나만? 주변에서는 ‘애 놓고 하루 종일 나와버려요’ ‘맞아요 그래야 얼마나 고생하는지 알지!’ ‘자기들도 겪어봐야 돼’ 등등. 

온갖 책임지지도 못할 소리를 쏟아내는 동네 아줌마들의 얘기에 솔깃한 적도 있다. 

힘들다. 누가 힘들지 않다고 했는가..

하지만 돌이켜보면, 솔직히 말하면, 내가 주변 가족들에게 괜히 눈물바람 하며 쏟아놓은 것만큼 고통스러운가? 


그런데 우리 좀 솔직해져 보자. 아이들, 특히 엄마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출산 후 100일 정도에 있는 아이들은 대부분 시간 잠을 잔다. 물론 두 시간 간격으로 깨어 먹어야 하긴 하지만, 하루의 상당 부분을 자면서 보낸다. 

먹고, 싸고, 좀 놀다 자고, 먹고 싸고 좀 놀다 또 잔다. 

그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 내가 무언가를 계획하고 즐길 수 없다는 점은 있지만, 사실 그렇게 고통스럽지 않다. 

아이와 함께 일어나 아이 얼굴 보며 놀다가 때 되면 먹이고, 기저귀가 젖으면 갈아주고 졸려하면 젖을 물리거나 젖병을 물리면 아이들은 먹다 잠든다. 그럼 그 시간에 우린 자거나 씻거나 혼자 놀거나 한다. 거기다 요즘은 출산 후 최소 한두 달은 도우미를 쓴다.  




처음 해보는 육아가 힘든 건 당연하다. 

나를 보살필 겨를이 없이 하루 종일 아이 중심으로 돌아가니 힘든 게 당연한 일이다. 젖이 흘러내려 옷이 젖어 구질구질 해지고, 온종일 질끈 묶은 머리에 급하게 대충 때우는 끼니. 맞다. 고생이 많다. 인정한다. 온 세상 엄마들의 수고를 모른다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유세가 좀 심한 건 아닐까? 


아이를 낳았다면 초반 2~3년은 육체적으로 힘들다.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 이는 엄마가 감당해주어야 하는 역할이다. 


요즘 많은 육아전문가들이  “육아는 도와주는 게 아니에요 함께 하는 거예요~”라고 하는 말로 아빠들을 압박하고 있다. 물론 아빠도 육아에 동참해야 한다. 

하지만 그 시기라는 것에는 차이를 두어야 한다. 


함께 하는 육아. 어떤 부분에서는 맞는 말이긴 하지만 가계를 위해 밖에서 일하는 아빠들에게 ‘함께 하는 육아’를 강요하며 퇴근하는 남편이 신발을 벗기도 전에 아이 목욕을 부탁하지는 말아야 한다. 


다음날 출근하는 남편에게 굳이 아이의 새벽 수유를 부탁할 일도 아니다. 분유는 수유를 부탁할 수 있으나, 젖 먹는 아이는 수유를 부탁할 수 없는 게 억울했던 한 산모가, 굳이 남편을 새벽에 깨워 오른쪽 수유 후 왼쪽 수유를 위해 아이를 받아 돌려달라고 했다는 말이 생각난다. 꼭 그래야 했나.... 함께 하는 육아니까? 


함께 하는 육아가 꼭 똑같이 기저귀를 갈아주고, 똑같이 분담해서 수유를 하고, 똑같은 횟수로 아이를 재우고 하는 것들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육아를 위한 육체적인 수고를 분담하는 의미’의 ‘함께 하는 육아, 같이 하는 육아’, 는 맞벌이를 위해 함께 밖에서 고생하는 부부에게 적용할 수는 있다. 또한 일정 정도 자란 아이에게 아빠는 아빠대로 엄마는 엄마대로 교육을 해야 하는 부분들이 있으니 그 부분을 함께 해나가자는 의미로도 봐야 한다. 


하지만 출산 후 1~2년 정도의 기간에, 여성은 집에서 온전히 육아를 맡고 있고, 남편은 밖에서 가계를 책임지고 있는 상황이라면,  미안하지만 남편은 그저 “도와주는 육아”를 하는 게 맞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이 시기까지 “같이 낳았는데 육아도 같이 해”라는 말로 남편을 옥죄지는 말아야 한다. 


가정에는 역할 분담이 존재한다. 여성과 남성은 각자가 맡은 역할이 다르다. 

남성이 우월하다는 말이 절대로 아니다. 그저 다르다는 말이다. 

여성은 출산을 할 수 있고 섬세하며, 남성은 여성보다 신체적으로 강하다는 것 정도로도 간단히 설명되는 "다름" 말이다. 


아이를 낳은 초반에는 여성의 섬세함이 아이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이다. 자연의 섭리만 보아도 엄마 뱃속에서 나온 아이는 상당 기간 엄마만을 찾는다. 엄마만 찾는 아이를 품에 안고 그치지 않는 울음을 달래야 하는 아빠도 곤혹스럽다. 아이도 곤혹스럽다. 

젖도 엄마를 통해서만 섭취할 수 있다. 자연의 섭리이다. 

이 시기에는 엄마가 아이의 육아를 전담할 필요가 있다. 남자가 할 수 있는 물리적인 도움은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한다. 아이를 다루는 손길로 서툴다. 이는 아이도 느낀다. 

엄마와 아이의 애착을 위해 둘 사이에 꼭 필요한 이 시기에 왜 굳이 서툰 남자를 개입시키는가? 


아빠가 아이와 애착을 마련하는 시기는 아이가 말을 하면서부터 본격화된다. 아빠는 아이들과 대화를 통해 많은 애착을 쌓아간다. 또한 이 시기부터는 섬세한 엄마의 손보다는 다소 역동적이고 살짝 거친듯한 아빠의 손길이 아이에게 신선한 경험을 제공해 준다. 이를 통해 아이는 한 뼘 더 자라게 되니 아빠의 역할이 꼭 필요한 시기이다. 

지금 아이와 씨름하는 게 나뿐 이라고 해서 억울해하지 말자. 


그냥 지금은 그래야 하는 시기이다. 

엄마에게도 아이에게도. 


우린 "독박 육아"의 피해자가 아니다. 




문제는 마음이다. 

엄마인 나의 마음. 

마음을 바꾸어보길 권해 본다. 

여성들만이 누릴 수 있는 아이를 낳고 키우는 특권을 힘들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누려보길 바란다. 

다시없을 시기이다. 

인간에게 엄마라는 말이 주는 평안함과 안락함, 그리고 특별함은 우리 여성의 이런 수고에 대한 귀한 보상이 아닐까.  


아이를 키우는 일에 "독박"이 라니.... 듣는 아이 서러울 소리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을 응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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