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결혼칼럼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밍 Mar 19. 2020

용서받지 못할 부모


"최서방이랑 같이 한번 내려와, 씨암탉 잡아줄게"



30년 넘게 몸 담았던 일터를 퇴직하신 아빠는, 경북 봉화의 작은 산에서 꿈에 그리던 전원생활을 시작하셨다.

오랫동안 비워뒀던 시골집에 들어가시던 그날, 마당 한편에 닭장을 만드셨다.

그리곤, 장날을 기다렸다가  병아리 수십 마리를 사들고 오셨다.


노릇노릇한 햇병아리들을 마당에 풀어놓으신 날 아빠는 나에게 전화를 거셨다. 병아리 사 왔다는 엄마의 전화를 받은 지 10분 만이었다.


"최서방이랑 같이 한번 내려와, 씨암탉 잡아줄게"

"네~!"


저리도 좋으실까 싶었다.



그렇게 귀농하신 지 한 달쯤 되었을 때, 말씀하신 씨암탉이 모습을 갖추고 있나 싶어 전화를 드렸다.


"아빠, 어때요? 병아리들 많이 컸어요?"

"아이고.. 말도 마라.."


한 달 만에 병아리들이 절반이나 죽었다고 했다.

아니, 죽임을 당했다고 했다.

어디서 나타난 건지 모르는 쥐 몇 마리가 밤새 병아리들을 몇 마리씩 먹어치운다고 했다.

그것도 닭장 사이로 고개를 쏙 내밀고 있는 병아리들을,  그 귀여운 것들의 머리만 먹어치운다고 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목 없이 닭장에 걸려있는 병아리들을 치우는 게 하루의 시작이 되었다.

싱그러워야 할 시골의 아침이 한 순에 호러물이 된 것이다.


이 노무 쥐새끼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심 중이시라고 했다.




그렇게 한 두 주가 흘렀을까 부모님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 어떻게 됐어요? 쥐들은 소탕했어요?"


부모님의 무용담에 잔뜩 기대가 된 나는 다소 설레는 마음으로 물었더랬다.


"어떡하니~ 쥐들 불쌍해서..."

"응?"

결론은 이제 닭은 안 키우기로 하셨다 했다.


이 노무 쥐새끼들을 소탕하기 위해 고군분투하시던 어느 날, 드디어 닭장 밖 한 귀퉁이에서 쥐구멍을 발견하셨다고 했다. 요것들을 어떻게 때려잡나 고심하시던 부모님은 아궁이에 불을 때셨고, 그렇게 펄펄 끓는 물을 준비하셨더랬다.


"내가 부을 테니까 당신이 내리쳐요!"


엄마는 그렇게 뜨거운 물 한 바가지를 조심스레 구덩이에 갖다 댔고, 아빠는 한 놈이라도 놓칠세라 삽을 하늘 높이 쳐드셨다.


"준비됐죠?"

"어!"


예상대로라면 나는 그날 쥐 새끼 소탕작전의  성공적인 후일담을 들었어야 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뜨거운 물에 혼쭐이 난 큰 쥐 한마디가 구덩이 속에서 솟구쳐 나왔다.
워낙 순식간이라 놓쳐버린 탓에 아쉬워하고 있는 찰나, 구덩이에서 나와 지붕까지 올라갔던 이 쥐가 다시 구덩이로 달려 들어간 것이다.

구덩이 쪽으로 전력 질주하는 쥐에 놀란 부모님은 뒤로 놀라 자빠지셨고, 그렇게 쥐를 놓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순간, 그 쥐가 입에 2~3센티도 되지 않는 새끼 쥐를 두 마리씩 물고 지붕으로 튀어 올라갔고, 그렇게 서너 차례 구덩이를 들락날락하며 새끼 쥐들을 물어 꺼냈다고 했다.

출산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미쥐였다고 했다. 뜨거운 물에 본능적으로 튀어나왔다가, 새끼들을 구하기 위해 다시 그 뜨거운 구덩이 속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어떡하니~ 쥐들 불쌍해서"


전화기 너머 울먹이시는 엄마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이제 씨암탉은 물 건너갔다 싶었다.

그렇게 한참을 어미쥐의 모성에 대해 얘기하신 부모님은 이제 그냥 텃밭이나 가꾸시겠다고 하셨다.


그렇게 내 신랑의 씨암탉은 물 건너갔다.


짐승만도 못한 부모


사회가 각박해진 것인지, 아니면 미쳐 돌아가는 것인지, 우리는 요즘 믿기 어려운 기사를 많이 접한다.


안아주고 만져주기에도 아까운 아이들을 학대하는 부모, 지들의 욕정에 빠져 자식을 죽이는 부모, 버리는 부모, 그냥 그렇게 방관하는 부모.  그렇게 짐승보다 못한 부모.


제목만 봐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뉴스들, 차마 그 내용을 들여다볼 수 없는 기사들을 보며,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 나쁜 욕들을 웅얼거려본다.


모성은 타고난다면서요...


준비되지 않는 부모들의 생각 없고 무책임한 결혼과 출산.

애완동물 한 마리를 입양하는 것도 많은 고민과 준비가 필요하거늘, 하물며 평생을 책임져야 할 자녀문제에 우리는 너무 아무 생각이 없다.  내가 아는 누군가는 그랬다.


"깜냥도 안 되는 것들이 부모가 되어서는..."

 

그렇게 분노했다.



말도 안 되는 뉴스를 접한 오늘, 난 아이를 잃고 생지옥을 살고 있는 부모들과 대비되어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밀려온다.


"개쌔끼"


우아한 엄마를 지향하며 살고 있는 나였지만,  가슴속 분노가 나도 모르게 새어 나왔다.


혹시 아이들이 들었을까 싶어 방안을 빼꼼히 들여다보았다.

세상모르고 자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이유도 모르고 고통받다 떠나간 어린 생명들의 아픔을 감히 헤아려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들이 가출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