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놈 뒤통수에 대고 아무리 떠들어봐도 소용이 없었다. 아들이 나가고 없는 신발장 앞에서 허공에 대고 소리만 질러댈 뿐이었다.
자유롭고 자주적인 아이로 키우리라 다짐하며 소위 "풀어놓고" 키우고 있었던 아들이 과도하게 자유로워 진건 6학년에 들어서면서 였던 것 같다. 소위 말하는 "사춘기"를 본격 시작하면서 아들의 자유의지는 날개를 단 듯했다. 세상의 잣대로 아이를 가둬두지 않으리라 나름 꿋꿋한 소신으로 아들을 키워왔지만, 예상치 못한 아들의 자유 영혼에 당황하는 중이다. 그래서 사실 난 고민이 깊어졌다. 이리 휘청 저리 휘청 갈피를 못 잡고 있다.
"특목고 보내려면 지금도 늦었어"
"늦어도 5학년 말부터는 시작해야 한다던데.."
"수학학원은 좀 보내야 하는 거 아니야?"
친구 엄마들의 얘기에, 단단했다고 믿었던 내 신념이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는 걸 느낀다. 나의 신념이 너무 오만했던 건 아닌가 반성도 하면서..
6학년 1학기를 마쳐가면서 나는 아들에게 이제 이것저것 시켜보기로 마음을 먹었었다. 그래, 소신도 소신이지만, 남들 하는 거 이제 시켜보자 싶었다.
수학도 영어도, 계획표를 짰고 많지 않은 양이지만 꾸준히 시켜보고자 마음먹었다.
그렇게 내 교육관에 변화(?)를 줬다.
'시키면 하겠지?'
내 계획 따윈 넣어둬
오산이었다. 이미 아들은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머리가 굵어져 있었다.
이것저것 이유를 들어 안 하겠다고 했다. 기분이 좋으면 가끔 시키는 걸 착실히 하는 날도 있었다. 하지만 때때로 나름 정당한 이유를 들어 거절했다.
예습이라곤 1도 안 했다.
학교 진도에 단 한 과정도 미리 준비하지 않고 딱딱 정확하게 진도대로 수업에 맞춰갔다.
그렇게 세상 "성실하게" 학교 수업만 했다.
"이거 이거 하도록 하자"
"왜 해야 돼요?"
"지금부터 준비해야 돼"
"아뇨, 괜찮아요"
괜찮단다. 주변의 전해 들은 많은 얘기들과 전문가들로부터 들었던 조언들을 차분히 전달했고, 이런저런 공부를 시작하자고 했다.
근데, 괜찮단다. 허허..
그래서 안 괜찮다고 했더니, 굳이 괜찮다 한다. 지가 필요할 때 하겠다 한다.
어릴 적 뭔가를 하기 싫어 떼를 부리던 것과는 달랐다. 정확하고 단호하게 거절하는 아들에게 난 더 이상 다른 친구들이 다 한다는 이유로, 지금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이유로 밀어 부칠수가 없었다.
내 교육관만 바꾸면 될 것 같았다. 오산이었다.
어렵게 소신을 바꿔봤지만, 그것도 내 뜻대로 되는 건 아니었다.
지금은 힘들어해도 나중엔 다 고마워할 거라는 엄마들의 얘기도, 그렇게 강요하다간 부모 자식 간 사이가 나빠지니 그냥 둔다는 엄마들 얘기도, 다 일리가 있다.
정답이 있을까?
난 아이가 생기면서 절대 못하게 된 것, 아니 절대 안 하게 된 것이 있다. 바로 남의 집 아이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것, 내 자식에 대해 확신하는 것..이 두 가지이다.
"왜 저렇게 키우지?"
"훈육이 제대로 안 됐나 봐"
"나라면 저렇게 안 할 텐데.."
"미리 공부 좀 시키지.."
내 맘대로 안 되는 일 중 제일이 자식일이라는 걸 뼈저리게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이라면 그저 포기해버리면 되겠지만, 내 자식은 포기할 수도 없다. 세상사 가장 어려운 일이다.
"자식 일로 장담하는 거 아니다"
첫 아이를 낳고 아이를 완벽하게 키워보겠노라 장담했었다. 나름 이상적인 자녀상이 있었다. 이렇게 하겠다 저렇게 하겠다 계획도 많았다.
그때 어른들이 하나같이 그러셨었다.
"자식 일로 장담하는 거 아니다"
우리 부부는 아들을 그저 지켜봐 주기로 했다.
물론 작은 원칙은 정해두었다.
최소한의 할 공부와 숙제는 하기, 귀가시간 지키기, 게임시간 정해두기 등.
아직도 주변 엄마들로부터 걱정 어린 충고를 듣고 있는 중이지만, 그들의 말에 휘둘려, 주변의 분위기에 휩쓸려 아들을 몰아붙이진 않기로 했다. 일단은 그렇게 기다려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