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은비 Nov 14. 2020

신문기자(新聞記者, 2019)

저널리스트의 소명

네이버 영화 포스터

 토우토 신문의 4년 차 사회부 기자인 요시오카 에리카는 익명의 제보를 받는다. 제보는 총리실에서 국가전력특구에 대학 수의학부 건물을 불법적으로 짓는다는 것이었다. 그와 더불어 내각정보조작실은 현재 정권의 권력 유지를 위해 가짜 뉴스 유포와 댓글 조작을 행하고 있었다. 내각정보조작실에 근무 중인 스기하라 타쿠미는 평소 존경하는 칸자키 선배의 죽음과 내각정보조작실, 그리고 불법적인 수의학부 건물의 건설이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에리카와 함께 노력한다.


 이 영화를 관통하는 하나의 질문이 있다면 바로 '저널리스트란 무엇인가'이다. 이는 '저널리즘이란 무엇인가'와 '기자란 무엇인가'와 구분된다. 저널리즘이 하나의 학문이라면, 저널리스트는 저널리즘을 하는 사람을 뜻한다. 그와 더불어 영화의 제목은 신문기자이지만, 요시오카 에리카는 단순히 신문기자가 아닌 저널리스트다. 영화 속에서 신문 기자는 정보를 단순히 받아 적는 직업적 이미지가 강하다면, 저널리스트는 언론인으로서의 윤리적 당위성이 드러난다.


 영화 속 저널리스트의 윤리적 당위는 '진실을 알리는 일'이다. 사실 여기서부터 저널리스트의 고뇌가 시작된다. 진실은 인간의 영역이 아닌 신의 영역이다. 다시 말해 인간은 절대로 진실을 밝힐 수 없다. 인간이 진실이라고 받아들이는 순간, 그것은 진실로서의 위치를 잃어버린다. 단지 유한한 인간이 진실이라고 여기는 하나의 사실이 된다. 영화는 무엇이 진실인지 밝히지 못한 채 막을 내린다. 내각정보조작실에 만들어지는 수많은 정보의 진위 여부는 밝혀지지 않은 채 모든 판단은 우리에게 맡겨진다.


 영화는 우리에게 진실이 무엇인지 알려주지 않는다. 하지만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는 저널리스트의 태도를 보여준다. 그래서 이 영화는 '저널리즘이란 무엇인가'가 아닌 '저널리스트란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저널리스트는 본래부터 자신의 목적을 이룰 수 없다. 단지 최대한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뿐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자료가 제대로 된 정보인지, 자신의 사적 판단이 개입되어 있지 않은지 저널리스트는 항상 살피고 경계해야 한다. 저널리스트의 소명은 진실을 밝힐 수 없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밝히기 위한 노력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푸시-누가 집값을 올리는가(Push, 2019)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