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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비 Jul 28. 2023

문유석, 『개인주의자 선언』

개인주의란 무엇인가

노력은 소중하고 필요한 것이지만 맹목적인 노력만이 가치의 척도는 아니다. 무엇을 위해 노력하는지 성찰이 먼저 필요하고, 노력이 정당하게 보상받지 못하는 구조에 대한 분노도 필요하다. 가장 위험하고도 어리석은 건 ‘노력해야 성공한다’를 넘어서 ‘성공한 이들은 다 처절하게 노력했기에 그 자리에 오른 것이다’ ‘그만큼 노력하여 성공한 이들이니까 괴팍하고 못되게 굴 만하다’ ‘강한 것은 아름답다’ 등으로 끊임없이 가지를 치는 스톡홀름증후군이다. - p.45 line 6~13

 

세상은 아군과 적군, 정의와 불의로 이분법적으로 사고하는 이들은 천사도 악마도 아닌 인간의 현실적인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일방적인 기대심리를 투영하여 과잉 열광하거나 조금이라도 자기 기대와 다른 모습을 보면 배신자 취급을 하며 돌을 던질 것이기 때문이다. 평생 하루하루를 분노, 절망, 투쟁, 당위만으로 채우는 것을 신성하게 생각하는 이들은 불행하다. 그리고 그들이 이끌고 가는 곳에 행복한 유토피아가 있을 리 없다. - p.62 line 1~8

 

노동 문제는 공장 노동자들의 파업 투쟁이나 크레인 고공농성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누구든 직장에서 부당한 대우를 당할 수 있고 어느 날 갑자기 일자리를 잃을 수 있으며, 아르바이트 후 시급을 못 받을 수 있다. (중략) 우리 대부분은 노동자다. 판사도 마찬가지다. 노동의 대가로 살아가는 사람은 모두 노동자다. 그래서 노동 문제는 우리 모두의 문제인 것이다. 물에 빠졌을 때 헤엄치는 법을 알아야 살 수 있듯이 노동자의 권리를 알아야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자신을 지킬 수 있다. - p.122 line 10~21

 

세상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다. 미국 백인 청년이 ‘슬럼가 흑인이 더럽고 불쾌한 것은 사실 아니냐’고 개인적 의견을 말하는 것은 인간을 노예로 사냥한 역사와 빈부격차, 불평등이라는 맥락에 대한 무지다. 인간 세상에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가치중립적인 ‘팩트’란 없다. 그걸 생각한다면 함부로 말할 수 있을까. – p.133 line 2~7

 

대립 당사자의 분쟁을 매일 보는 판사로서 어느 한쪽만 옳은 경우는 아직 보지 못했다. 이 지경까지 온 데는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공격이 공격을 부르고, 불신이 불신을 낳다보면 가족도 이웃도 원수가 된다. 재판에서 분쟁을 해결하는 실마리는 상호 비난을 자제하고 본질적인 문제로 돌아가는 것이다. - p.150 line 1~5

 

유토피아는 믿지 않는다. 다만 확실한 것은 뿔뿔이 흩어진 개인으로 살아가면서 시대의 흐름을 보지 못하고 가만히만 있다 보면, 상상보다 훨씬 나빠질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다. 미래를 스스로 공동 구매하지 않으면 강제배급 받게 될 테니 말이다.  - p.194 line 15~19

 

이런 시대일수록 집단의 논리에 맹목적으로 순종하는 건 위험하다. 어느 집단도 이 복잡하고 급변하는 세계에 대한 완벽한 해답을 갖고 있지 못하다. 남의 판단으로 자기 판단을 대체하지 말고 각 개인이 눈을 부릅뜨고 세상의 불편한 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해야 한다. 실사구시 정신이 필요하다. 막연한 믿음보다 실증적 근거를 들어 토론하고 최선이 안 되면 차선, 최악보다는 차악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 p.203 line 1~7

 

지금 그 사회에서 다수의 의견이라고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만약 다수의 의견이 늘 옳다면 인류는 아직도 천동설을 믿고 잔인한 사적 보복을 허용하며 인종 간 결혼은 금지하고 성적 소수자를 박해하고 있지 않을까. 다수결의 원칙을 중시하는 민주주의에서 다수에 대한 정교한 견제장치도 같이 마련하고 있는 이유다. - p.246 line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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