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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비 Jul 30. 2023

최장집,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민주주의의 방향성

누구나 알 수 있듯이 한국정치에 대한 한국정치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냉소를 넘어 거의 분노에 가까운 상황이다. 엄청난 사회적 불만이 팽만해 있지만 정상적인 제도와 절차를 통해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 또한 없기에, 뭔가 강렬한 변화를 바라는 사회심리가 확산되고 있다. - p.9 line 11 ~ p.10 line 1


냉전반공주의가 헤게모니적 영향력을 갖는 정치적 대표체제에서 서민의 이익은 대표되지 못한다. 서민층이 정치 수준에서 대표되지 못한 결과, 사회 수준에서 서민층에 대한 상층계급의 오만과 차별은 강화되고, 못사는 사람에 대한 공공연한 비하가 가능해진다. 이런 조건에서 계층구조의 상향 이동에 대한 열망과 상층계급의 문화적 표지를 갖고자 하는 노력은 필사적이게 된다. (중략) 생활수준이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는 게 중요한 외형지상주의의 사회, “부자되세요”라는 인사가 유행하는 금전만능주의 사회는 노동을 천시하게 만드는 노동배제적 정치체제의 결과이자, 이런 정치체제를 만들고 획일주의와 상층이동의 과열을 만든 냉전반공주의의 병리적 현상이 아닐 수 없다. - p.34 line 5 ~ p.35 line 9


민주주의가 진전되고 공고화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개혁이 진행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기득권 세력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언제나 민주화에 격렬하게 저항하게 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문제는 변화에 저항하는 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민주화 이후에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데 있어서 민주 세력이 보여준 무능력에 있다.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것 없이 한국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문제를 극복해 가고 이를 통해 민주주의가 내용적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민주화 이후에도 나쁜 결과가 나타날 수 있고, 또한 민주주의가 좋은 것만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민주주의가 현실적으로 가장 좋은 제도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민주주의는 완벽한 제도가 아니며, 민주주의 역시 후퇴할 수도 있고 권위주의적 반동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 p.44 line 11~23


한국의 정당체제는 다음과 같은 특성을 갖게 되었다. 첫째, 여야당은 이념적으로 동일한 지평 위에서 경쟁한다. 둘째, 양당은 밑으로부터의 대중적 이익이나 요구에 기반을 두기보다는 지도자와 그를 둘러싼 엘리트 중심적 성격이 강하다. 셋째, 사회의 계층적‧직능적‧직업적 이익들이 그들 스스로의 조직화를 통한 방식으로는 정치적으로 대표되지 못한다. 넷째, 그러면서 여야당을 막론하고 사회 전체, 국가 전체, 민족 전체의 대의와 이익을 내세움으로써 포괄정당적 성격을 갖는다. - p.63 line 4~10


우리의 헌법은 민주적 제도와 권위주의적 실천 간의 괴리를 드러내는 문건이라는 성격이 짙다. 적어도 민주주의의 제도와 원리는 권위주의하에서조차 헌법을 통해 일관되게 유지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처럼 헌법이 장식물이거나 우리가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에 장래에 실천하게 될 이상을 규정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은, 헌법이 그만큼 현실에 대해 규정력을 갖지 않는 것이자 최상위법으로서의 권위를 스스로 떨어뜨리는 것임에 틀림없다. - p.77 line 3~9


한국에서 민주화가 왜 보수적 경로로 진행되었는가 하는 점에 대해 나는 세 가지 이유를 말하고자 한다. 첫째는 냉전반공주의와 성장 이데올로기를 구현하고 있는 국가의 강력함, 둘째는 내가 ‘2단계 민주화’라고 부르는 이행의 방법, 셋째는 민주화의 동력이 되는 두 세력, 즉 제도권의 야당과 운동이 서로 분리되고 약했다는 사실이다. - p.140 line 1~5


제왕적 대통령의 대안으로 제시하는 이른바 ‘CEO대통령’의 논리에는 근본적인 문제점이 있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근본원리와 상충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한 사회를 구성하는 여러 영역 가운데서 경제로부터 정치의 분리를 전제하지 않고서는 가능하지 않다. 기본적으로 사익을 추구하는 시장의 원리와 1인1표라는 보통선거권의 평등성에 기초한 민주주의의 작동원리는 근본적으로 상이하다. 뿐만 아니라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는 사적 조직으로서 효율성을 가치로 하고, 이를 가장 잘 실현할 수 있는 위계구조를 조직의 특성으로 한다. 조직의 본질에 있어 기업구조는 기본적으로 권위주의적이다. 국가도 하나의 거대조직이기 때문에 사기업이 구현하려는 효율성의 원리를 운영원리로 받아들일 수는 있지만, 그러나 국가는 한 사회를 통합하고 시장질서를 유지하고 시민권의 원리와 배분적 정의를 통하여 공공복리를 실현하고자 하는, 사회 전체를 위하고 대표하는 공공의 조직이다. 시장에서의 경쟁과 이윤추구를 존재 이유로 하는 사기업의 운영원리와 그 조직을 관장하는 CEO의 리더십은, 주권을 갖는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가의 수반으로서 대통령의 정치 리더십과는 근본적으로 상이하다. - p.174 line 21 ~p.175 line 11

 민주주의가 권위주의와 다른 것은 사회적 갈등을 억압하지 않았다는 것, 다시 말해 갈등을 정치의 틀 안으로 통합하면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간다는 데 있다. - p.245 line 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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