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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비 Aug 02. 2023

알베르 소불, 『프랑스 대혁명』

보편적인 인권의 시작


부르주아지는 귀족과의 평등과 더불어 자유를 요구했다. 정치적 자유는 물론이고, 이보다도 경제적 자유, 그러니까 기업을 경영하며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자유를 한층 절실하게 갈망했다는 말이다.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자유를 요구하는데, 발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임금노동의 조건이라고 할 수 있는 신체의 자유, 재산을 이동시킬 수 있는 자유, 재산을 이동시킬 수 있는 조건인 재산의 자유, 과학 기술 연구와 발견을 위해 필요한 조건인 정신의 자유 등, 그야말로 모든 형태의 자유가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 p.15 line 9~16


대혁명 기간 중 이때만큼 인민 사회주의적 이상이 딱 부러지게 정립된 적은 없었다. 그것은 상-퀼로트들의 주축을 이루던 수공업자들과 소매상인들의 수준에 부합하는 이상이었다. 또한 식량을 직간접적으로 거래하는 모든 상인들, 자본주의적 주도권을 장악해서 자신들을 의존적인 임금노동자로 전락시킬 우려가 있는 모든 기업가들에게 적대적이었던 도시의 소비자들과 소규모 생산자들의 수준에 부합하는 이상이기도 했다. 이뿐만 아니라, 그것은 사유재산 제도를 유지는 하되 그것으로 인한 부정적인 결과는 제한하려는 의지의 표명으로서, 당시 혁명을 이끌어가고 있던 부르주아지의 이상에 배치되는 것이기도 했다. - p.154 line line 3~12


수공업자들과 상점 주인들, 직공과 날품팔이 노동자들이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소수의 부르주아들이 합류한 이들 상-퀼로트들은 귀족과 싸우는 데에는 무서운 힘을 발휘했다. 하지만, 이 연합 세력의 내부로 눈을 돌리면, 생산수단이라는 사유재산을 이용해서 이윤을 창출해내는 수공업자, 상점 주인들과, 직공과 날품팔이 노동자처럼 임금만으로 살아가는 자들 사이의 대립이 첨예화될 수밖에 없었다. 혁명 완수라는 필요성 앞에서 상-퀼로트들은 일시적으로 하나가 되었으며, 다양한 구성원들 간의 각기 다른 이해관계로 인한 갈등은 잠시 뒷전으로 미루어두었으니, 그것 어쩔 수 없는 당연한 결과였다. 잠시 뒷전으로 미루어두었을 뿐 갈등이 완전히 제거된 것은 아니었다. 구성원들이 이질적인 까닭에, 이들에게서는 계급의식은 찾아볼 수 없었다. - p.186 line 19 ~ p.187 line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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