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역사
분명 ‘현재’가 지닌 특권들 중에 하나는 ‘과거’를 선택적으로 돌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짧은 안내서에서도 그러하듯, 이런 선택의 성격을 자각하는 것 역시 항상 중요하다. - p.8 line 1~4
공화정 체제 역시 야심 있는 개인의 대두를 의도적으로 견제했다. 무엇보다도 유능한 장군들이 수중에 정치적, 군사적 권한이 장기간에 걸쳐 집중되는 사태를 막았다. 적어도 로마인의 도덕 관념에 비춰보면 위대한 자의 진정한 시험대는 고위 관직에 오르는 능력이 아니라 이를 대범하게 자발적으로 내려놓는 자세에 있었다. 로마가 처음 이탈리아에 세력을 확립하려고 분투하고 있을 때, 퀸크티우스 킨키나투스(Quinctius Cincinnatus)가 지휘하는 로마군이 중요한 전투에서 승리를 기두었는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키키나투스는 병사들을 모으기 위해 쟁기질을 멈추고 밭에서 떠나는 것을 무척 싫어했다고 한다. 킨키나투스가 고위 관직에 전혀 욕심을 내지 않았던 것보다 더 유명한 것은 명령권의 연장을 거부했다는 사실이다. 권력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지만 킨키나투스는 오히려 손수 가꾸던 농경지로 돌아가 쟁기질을 계속했던 것이다. - p.20 line 9 ~ p.21 line 2
로마 시만큼 제국 영토의 획득을 더 열렬히 환호한 곳도 없었다. 수도의 중심부는 웅장한 개선문, 위풍당당한 조각상, 전리품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신전 등 로마의 역사가들은 끝없이 계속되는 숱한 출정과 전투 이야기들을 써나갔다. – p .26 line 4~8
로마에서 정치 경력의 정점은 수도 로마의 대로를 통과하는 개선 행렬이었다. 군사령관이 무장한 군사들을 거느리고 합법적으로 로마 시내에 진입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 p.26 line 18~20
죽음을 피할 수 없음이 확실해지자, 시카리는 자살을 택했다. 7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명의 여성과 5명의 아이들은 지하수조에서 요새로 물을 공급하는 수도관 안에 숨어 있었다. 바로 이 생존자들이 최후까지 남아 있던 유대 반란 세력의 마지막 순간과 그들을 결집시킨 지도자 엘르아잘의 최후 외침을 전했다.
자! 우리의 손이 결박되지 않아 자유롭게 칼을 쥘 수 있을 때, 우리를 위해 고귀한 일을 하게 합시다. 적들의 노예가 되기 전에 죽음을 맞이합시다. 자유인으로서 아내와 자식들과 함께 이 생을 마감합시다. …… 로마인들을 압박해서, 그자들이 여길 함락시켰을 때 기대했던 만큼의 만족을 얻지 못하게 합시다. 대신 우리의 죽음으로, 우리의 대담함에 대한 경외심으로 그자들이 할 말을 잃게 만듭시다. - p.37 line 15 ~ p.38 line 7
신과 같은 절대적 권력을 행사하는 독재자이면서 한편으로는 너무도 인간적인 결점을 지닌 한 인간. 로마 황제상을 둘러싼 이와 같은 충돌은 가끔, 그리고 당연하게 일종의 웃음을 유발했을지도 모른다. - p.60 line 12~15
정치의 세계란 연극 무대이며, 대본을 쓰는 것은 (만약 있다면) 극소수의 인간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그것을 연기한다고 보는 타키투스의 관점은 매혹적이다. - p.71 line 13~15
속주에서 안정과 번영을 가장 눈에 띄게 기념하는 방법은 개인 비용으로 기념비적인 건물을 세우는 대규모 프로그램이었다. 어느 도시든, 현지의 유력자들을 지역사회에서 차지하고 있는 자신의 우월한 지위와 제국 엘리트층의 일원임을 구체적으로 과시하려고 경쟁적으로 기념물의 건립에 나섰다. - p.91 line 5~9
지방 엘리트층의 주된 동기가 로마 제국에 대한 깊은 충성심에 있었는지, 아니면 제국 체제 내에서 자신들의 지위를 향상시키려는 현실주의적 고려에 따른 것이었는지는 확실히 말하기가 어렵다. 무자비한 정복 활동을 통해 확립된 제국에서는 불평불만이나 저항의 움직임이 보이면 신속하고 단호한 제압이 기다라고 있어서, ‘충성’이나 ‘열정’ 같은 것은 눈앞의 이익에 대한 계산과 뒤섞이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고려하지 않고 당시 사회상을 논의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 p.102 line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