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정의에 도달할 수 있는가
지금은 자발적 구매자가 자유로운 선택으로 시장에 들어가 자발적 판매자를 만나고,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되는 정상적인 자유시장 상황이 아니다. 비상 상황에서, 강요받는 구매자에게 자유는 없다. 안전한 숙박시설 같은 생필품에 대한 수요는 불가피하다. - p.16 line 6~9
사회가 정의로운지 묻는 것은,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 이를테면 소득과 부, 의무와 권리, 권력과 기회, 공직과 영광 등을 어떻게 분배하는지 묻는 것이다. 정의로운 사회는 이것들을 올바르게 분배한다. 다시 말해, 각 개인에게 합당한 몫을 나누어 준다. 이때 누가, 왜 받을 자격이 있는가를 묻다 보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 p.33 line 9~13
다음으로 정의를 자유와 연관짓는 이론을 살펴본다. 개인의 권리 존중을 강조하는 이론이다. 물론 이 이론들 사이에도 어떤 권리가 가장 중요한가를 두고 견해차가 있다. 하지만 정의는 자유와 개인의 권리를 존중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오늘날의 정치에서 행복 극대화라는 공리주의 사고만큼이나 익숙하다. 예를 들어, 미국의 권리장전에는 언론의 자유나 종교의 자유를 비롯해, 다수의 힘으로도 침해할 수 없는 자유들이 규정되어 있다. 전 세계적으로, 정의는 보편적 인권을 존중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갈수록 힘을 얻고 있다. - p.34 line 16~24
민주사회에서의 삶은 옳고 그름, 정의와 부정에 관한 의견으로 가득하게 마련이다. 어떤 사람은 낙태 권리를 옹호하나 다른 사람은 낙태를 살인으로 간주한다. 어떤 사람은 부자에게 세금을 거두어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 공정하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은 노력으로 번 돈을 세금으로 빼앗는 행위는 공정치 못하다고 생각한다. 대학 입학에서 소수집단우대정책을 놓고도 어떤 사람은 잘못을 바로잡는 정책이라며 옹호하는 반면, 다른 사람은 능력 있는 인재를 역차별하는 공정치 못한 정책이라고 비난한다. 어떤 사람은 테러 용의자를 고문하는 행위는 자유 사회에 걸맞지 않은 혐오스러운 짓이라며 반대하나, 다른 사람은 테러 공격을 예방하는 마지막 수단이라며 찬성한다. - p.44 line 5~14
밀은 우리가 공리를 극대화하되, 매 순간이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그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오랜 세월에 걸쳐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다 보면 인간의 행복이 극대화되리라고 주장한다. 다수가 반대 의견을 막거나 자유사상가를 검열할 수 있다면 오늘 당장 공리가 극대화될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사회의 불행이 늘고 행복은 줄 것이다.
반대 의견을 낼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옹호하면 장기적으로 사회가 행복해진다고 믿은 이유는 무엇일까? 밀은 몇 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반대 의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사실로 판명날 수 있는데, 그렇다면 대다수 의견을 수정할 수 있다. 사실이 아니라도, 다수 의견과 소수 의견이 치열하게 경쟁하다 보면, 다수 의견이 독단이나 편견에 빠지는 사태를 막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관습과 관례를 따르도록 강요하는 사회는 답답하게 순종적인 체제로 전락해, 사회 발전을 촉진하는 힘과 활기를 잃기 쉽다. - p.75 line 2~15
자유지상주의적 반격: 민주적 합의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조던이 조세법에 반대표를 던졌지만 법이 통과됐다고 가정해보자. 이 경우에도 미국 국세청은 조던에게 납세를 요구하지 않겠는가? 분명 그럴 것이다. 조던이 이 사회에 산다면 다수의 뜻에 따르고 법을 준수하겠다고 동의한 셈이라고 주장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곳 시민으로 산다는 이유만으로 다수에게 자유 재량권을 부여하고, 아무리 부당한 법이라도 준수하겠노라고 미리 동의해야 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다수가 소수에게 세금을 부과하거나, 심지어는 소수의 뜻을 무시하고 그들의 재산을 빼앗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개인의 권리는 어떻게 되는가? 민주적 합의 아래 재산을 빼앗아도 좋다면, 자유도 빼앗을 수 있다는 뜻인가? 다수가 내게서 언론 및 종교의 자유를 빼앗으면서, 나는 민주사회 시민이니 사회의 결정에 무조건 따르겠다고 이미 동의한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 p.100 line 1~13
자유방임 경제를 거부하는 사람들도 다른 영역에서는 자기소유 개념에 의지한다. 자유지상주의 이론이 복지 정책에 공감하는 사람들에게조차 호소력을 갖는 이유를 알 만한 대목이다. 그렇다면 출산 결정권, 성도덕, 사생활 보호권 논쟁에서 자기소유가 어떤 식으로 나타나는지 살펴보자. 사람들은 흔히 정부가 피임이나 낙태를 금지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며, 그 이유는 여성이 자기 몸에 대한 결정권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많은 사람이 간통, 매춘, 동성애를 법으로 처벌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면서, 성인들은 서로 합의하여 상대를 고를 자유가 있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내 몸의 소유자는 나라는 이유를 들어, 시장에서 장기이식을 위한 콩팥 거래에 찬성하고, 같은 이유로 다른 장기도 자유롭게 팔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원칙을 더욱 확대 적용해, 안락사 권리를 인정하는 사람도 있다. 내 삶은 내 것이니, 원하면 삶을 끝낼 자유가 있으며, 도와줄 마음이 있는 의사를 끌어들일 수 도 있어야 한다는 견해다. 내 마음대로 내 몸을 이용하거나 내 삶을 다루려 할 때 국가는 나를 막을 권리가 없다. - p.102 line 1~16
칸트의 철학은 어렵다. 하지만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공을 들이면 들인 만큼 결실은 상당하다.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는 중대한 질문을 다룬다. 도덕의 최고 원칙은 무엇인가? 그리고 이 질문에 대답하면서 또하나의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자유란 무엇인가? -p.149 line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