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아연 개인전 에세이

멈추어 있으나 움직이는 : <Still Moving>

by 크시

Crisp Wedge 김아연 개인전 전경


김아연 개인전 <Still Moving>은 회화라는 정지된 화면이 어떻게 여전히 작동하는 상태로 경험될 수 있는가를 탐구한다. 전시명 ‘Still‘이 내포하듯, 이번 작업은 정지와 지속이 동시에 성립하는 역설적 조건을 다룬다. 화면은 물리적으로 고정되어 있지만, 그 안의 형상과 구조는 단일한 상태로 고착되지 않는다.


오히려 층층이 쌓인 레이어와 비결정적인 형태들은 관람자의 시선을 화면 위로 끊임없이 유동하게 하며, 현재 진행형으로 발생하는 시간의 궤적을 드러낸다. 이러한 지각적 경험을 통해 그의 회화는 닫힌 화면을 넘어, 어느 한 상태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재구성하는 이행의 과정 그 자체로 기능한다.


김아연에게 회화는 대상을 재현하는 그림이 아니라, 서로 다른 존재와 물질이 접촉하고 스며들며 다른 상태로 변모하는 과정을 드러내는 장이다. 이 전시에서 회화는 완결된 이미지로 제시되지 않는다. *화면은 계속 변형되고 관계 맺는 살아 있는 구조로 작동한다. 그 *표면은 주름지고 관통되며 다시 봉합된다. 표면과 형상들은 유약하다. 가변적인 표면 위에서 형상들은 미끄러지고 충돌하고 변형된다. 따라서 이 전시는 “무엇을 그렸는가”가 아니라, “형상이 어떤 조건 속에서 서로 연결되고 변형되는가”를 묻는다.

*화면은 회화 이미지 자체를 말하며, 표면은 캔버스, 천, 트레싱지 등을 말한다.

김아연, 뿌리와 매듭, 2026, 캔버스천에 아크릴, 148.5x308cm 중 일부 (사진 제공 : Crisp Wedge)


그의 회화는 물질과 시간, 우발성이 맞물려 지속적으로 생성되는 상태를 지향한다. 화면 속 형상은 특정한 범주로 귀속되지 않는다. 나무의 뿌리처럼 보이던 것은 근육이나 핏줄처럼 읽히고, 지형의 단면 같던 형상은 인공 구조물의 내부로 전환된다. 물은 혈관처럼 흐르고, 불은 실이나 섬유처럼 늘어지며, 바위는 뼈와 가죽의 형상으로 미끄러진다. 파편화된 인간의 신체는 잔해나 식물, 동물, 구조물과 분리되지 않는 채 나타난다. 이러한 형상의 변화는 은유적 치환이 아니다. 이들은 서로 관계를 맺으며 변형되는 과정 자체가 회화의 실질적인 내용이 됨을 의미한다. 이로써 인간/비인간, 유기/무기, 자연/인공, 내부/외부의 구분은 견고함을 잃는다. 다시 말해, 작가는 그 취약한 경계를 흔들어, 존재를 관계 속에서 변화하는 상태로 제시한다.


작가는 멈춤에 대한 근원적 불안에서 작업을 시작한다. 작가에게 죽음은 단순한 생물학적 사건이 아니라 멈춤, 기능 상실, 쓸모의 소멸, 권리의 박탈, 관계의 종료, 곧 단절로 정의된다. 그래서 화면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것은 안정된 존재가 아니라, 부서지기 직전의 구조와 위태롭게 매달린 형상, 균열과 파열의 기운을 품은 사물과 생명체들이다. 그러나 이 불안정성은 붕괴의 징후가 아니다. 오히려 작가는 무너지기 직전의 상태가 지닌 밀도 높은 에너지에 주목한다. 완전히 죽은/정지된 상태에는 움직임이 없고, 완전히 안전한 상태에는 긴장이 부재한다. 반면 임계 상태에는 아직 끝나지 않은 운동의 잠재성이 남아 있다. 그의 회화는 정지와 생성 사이에서 가장 강렬한 긴장이 발생하는 그 임계의 순간을 포착한다. 여기서 위태로움은 생성의 조건이며, 균열은 다른 형상으로 이행하는 문턱이 된다.


표면 위에서 서로 닿고, 겹치고, 스며들고, 봉합되는 형상들은 서로 얽히는 순간, 지지, 의존, 긴장, 분산과 같은 상호 작용을 발생시킨다. 죽음을 단절로 이해하는 작가에게 연결은 단순한 조형적 선택을 넘어 존재가 여전히 관계를 맺고 작동 중임을 증명하는 방식이다.

Crisp Wedge 김아연 개인전 전경 (오른쪽 사진 제공 : Crisp Wedge)

이 문제의식은 형식 실험과 맞물려 있다. 구겨진 회화는 회화의 안정된 평면성을 해체하고 물질의 저항과 우발성을 전면으로 끌어낸다. 캔버스 틀을 제거한 대형 평면 회화는 한 시점에서 전체를 장악할 수 없어서 관객의 이동에 따라 시선이 파편화된다. 또한, 트레싱지 회화는 아크릴과 바느질을 이용한다. 반투명한 지지체 위를 관통하고 연결하는 바느질은 뒷면의 공간까지 화면 안으로 끌어들인다. 바느질을 통해 복구하고 치유하기 보단 파열의 기억을 노출하는 방식이며, 실은 선이자 구조이고 드로잉이자 지지체이다. 이 형식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회화를 표면에 고정한 재현 이미지에서 끌어내어, 내부와 외부가 교차하고 관계가 물질적으로 수행되는 사건으로 전환된다.


작가에게 회화의 시간성은 작업을 관통하는 핵심 기제이다. 그리기의 과정에서 남겨진 과거의 흔적은 현재의 필치에 간섭하고, 아직 도래하지 않은 상태는 잠재성으로서 화면 내에 중첩된다. 과거, 현재, 미래의 층위가 선명히 구분되지 않은 채 존재하며, 그 수많은 시간점들은 한 화면 안에서 유동한다. 그렇기에 그 시작과 끝을 특정하기란 어렵다. 즉, 회화에서의 시간성은 영상처럼 시작과 종결이 명확한 선형적 구조를 따르지 않는다.


작가의 붓질이 멈춘 이후에도 화면은 관객의 현재 시간과 맞물려 새로운 운동성을 획득한다. 이때 작가의 회화는 관객과의 조우 속에서 매번 다르게, (그러면서도 유사하게) 발생하는 사건이 된다. 물리적으로는 고정/정지되어 있으나 시간적으로는 무한히 열려 있는 것, 정지된 듯 보이지만 계속 움직이는 이 역설이야말로 이번 전시가 구축하는 시간의 구조이다.

푸른 숨이 얽히는 곳, 2026, 트레싱지에 아크릴과 바느질, 88x85cm


본 전시가 구체적인 인물 형상이나 서사적 장면을 지양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안정된 인물이나 정물은 쉽게 명명되고 규정되며 의미의 중심(주제부)을 형성하지만, 이러한 고착된 인식 구조는 작가가 거부하는 '완결된 멈춤'의 감각을 강화하기 때문이다. 인간 중심의 서사가 감정과 심리의 드라마로 수렴되기 쉬운 것과 달리, 김아연의 화면은 주제부를 중심에 두지 않는다. 사물과 생명체, 구조물과 유기체, 잔해와 성장의 과정을 하나의 표면 위에 흩뿌림으로써 의미의 고착을 유보한다. 이로써 회화는 명사적 대상의 재현에서 벗어나 변화, 이행, 긴장, 침투, 봉합과 같은 '동사적 사건의 장'으로 전환된다. 회화가 보여주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정체성보다는 "어떻게 되어가는가"라는 생성의 조건이다.

물결치는, 2025, 캔버스 천에 아크릴, 140x166cm


화면에 있는 형상들 중 사회적 기능을 상실한 장소와 사물이 보인다. 흔히 이들은 멈춘 것, 혹은 끝난 것으로 취급되지만, 작가는 그 이후의 새로운 작동에 주목한다. 금속은 녹슬고, 콘크리트는 갈라지고, 그 틈 사이에서는 식물이 자라며, 먼지와 비와 미생물은 표면을 계속 바꾼다. 잔해는 다른 생명의 토대가 되고, 폐기물은 다른 존재의 자원이 되며, 구조물은 새로운 지지체가 된다. 따라서 전시 속 불안정한 구조와 잔해의 형상들은 폐허를 낭만적으로 호출한 결과가 아니다. 그것들은 기능과 가치의 기준에서 밀려난 존재 내부에서도 여전히 지속되는 관계와 운동을 증명하는 사례이다. 이때 회화는 존재를 쓸모나 완성의 기준으로 판정하지 않는다.


결국 <Still Moving>은 회화를 통해 하나의 존재론적 명제를 밀어붙인다. 존재는 고정된 본질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멈춤을 지연하며 끊임없이 생성되는 과정이라는 점이다. 화면 위에서 행해지는 '봉합'은 안정이 아닌 긴장의 지속이며, '연결'은 화해가 아닌 단절에 대한 저항이다. 이때의 불안정성은 결핍이 아니라 생성을 위한 '잠재성의 밀도'가 된다. 김아연의 회화가 살아 있는 듯 느껴지는 이유는 환영적 착시 때문이 아니라, 화면 자체가 멈춤을 거부하는 구조로 조직되어 있기 때문이다. 전시에서 회화는 정적 이미지를 제시하는 매체를 넘어, 움직임의 지속을 실험하고 단절을 유예하는 장으로 기능한다. 그런 의미에서 전시의 제목은 단순한 역설이 아닌 가장 정확한 진술이다. 이 회화는 정지해 있으나 멈추지 않았고, 완결되어 보이나 여전히 끝나지 않은 채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김아연 : 멈추어 있으나 움직이는

A Yeon Kim : Still Moving

2026.3.24 ~ 4.5

(월요일 휴관)


Crisp Wedge @crisp_wedge

서울시 마포구 양화로 8길 32-17, 지하 1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