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D 그들이 전방1KM 이내에있었다.

어느 날의 기억

by 초이

주말에만 일하는 파트너들이 있어 주말에는 일하질 않는다. 그러다 가끔 대타로 토요일 오전 근무를 서는 날이 종종 있었다.


오피스 지역이라 주말에는 한산하다. 처음에는 손님이 너무 없어서 놀라니 매니저가 주말에는 이렇게 한가하다며 웃으며 괜찮다면 유리창을 닦아달라고 요청했다.


손님도 없고 유리창은 이미 닦았고 바 내에는 새벽부터 하릴없이 청소만 해댄 탓에 가만히 서서 멍하니 바깥만 보았다.


그러던 차에 어느 손님이 찾아왔다. 목에 TED 목걸이를 걸고 있길래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았다.


근처 밴쿠버 컨벤션 센터에서 테드가 진행 중인데 그 근처 스벅은 줄이 너무 길어 이 곳까지 왔다고 했다. 근처 매장은 고생 중이구나 하는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테드? 헐!


그 손님을 붙잡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나는 지금 워킹홀리데이 중인데 보다시피 영어가 내 첫 번째 언어가 아니라서 영어 공부를 열심히 했었어."


"영어 공부하는데 테드가 가장 좋더라고. 테드는 자막 제공을 하기 때문에 자막 없이 한 번 보고 그다음 자막과 같이 보고 영상을 계속 반복해서 보다 보니 연습하기 좋더라. 물론 콘텐츠도 너무 좋았어."


그렇냐고 뿌듯하다고 말하는 손님과 이야기하다 조셉 고든 래빗도 와있다는 얘기도 들을 수 있었다.

아마 내 인생에서 조셉 고든 래빗과 제일 가까웠던 순간이 아닐까 싶다.


수능에서는 외국어가 3등급이었다. 영어공부에 제일 시간을 많이 들였지만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도 모른 채 수능을 치러서 그런 것 같다.


그리고 스무 살 되기 전 사주를 보러 갔었는데 선생님이 말씀하기를 나는 예체능, 외국어에 재능이 있다고 들었다. 당시에는 전혀 믿을 수 없었다. 3등급 성적표가 재능의 산물인 인생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대학교 1학년이 모든 것을 바꿔주었다. 매일 반복되는 단어시험 속에서 실력이 부지부식 간에 늘어난 것이다. 그리고 필리핀 어학연수 처음 한 달 동안은 영어로 말을 틔우는 기간이었고 이후에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말을 하면서 최대한 아는 단어를 끌어와서 쓸 수 있도록 노력했다.


선생님이 오늘 하루 어떻냐고 물어보는 질문에 "I am exhausted."라고 대답하니 선생님이 너무 좋아했다.

tired와 같은 단어만 반복하면 실력이 절대 늘어나지 않는다며 드라마를 보면서 새로운 표현들을 적고 계속해서 새로운 단어를 익히라고 조언해주었다.


하지만 나는 잘난 것도 없는데 왜 영어 공부 이야기를 꺼낸 걸까. 선생님의 말씀 중 반만 들어서 드라마만 보고 딱히 단어를 받아 적지 않았다. 그냥 재미로 드라마만 계속 보았다.


그리고 워킹홀리데이 당첨된 후 처음으로 영어를 공부가 아닌 연습하기 시작했다.


말하기를 위해 전화영어를 신청해서 시간이 나는 틈틈이 하루에 5번, 10분간 전화영어를 진행했다. 단기간에 효과를 보기에는 적절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자신의 영어실력에 대해 만족하지도 못한 채 출국 날짜만 다가와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렇게 얼렁뚱땅 스타벅스 워킹홀리데이를 마치고 나니 영어 실력이 또다시 늘어나 있었다. 취업준비를 위해 2주 동안 밥만 먹고 토익 공부를 했다. 스터디 카페에서 해커스 천제를 풀고 오답노트를 하고 보상으로 드라마를 보고 반복하다 보니 하루 중 한국어를 쓰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토익에서 원하는 점수를 얻을 수 있었다.


토익 오답노트는 웬만하면 답이 다 문제 속에 있으니 어려울 건 없었다. 다만 내가 어떤 문제에서 틀리는지 유형을 아는 것에 주목했다. 리스닝 같은 경우, 틀린 문제는 거진 호주 발음이었기 때문에 넷플릭스에서 호주 예능프로그램을 검색해서 보았다. 보다 보니 호주 사람들은 "Baby"를 '바이브'로 발음하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캐나다 워홀을 다녀와도 편한 건 10년 게 배운 미국 발음인지라 가끔 영어 사투리 같은 발음이 들리면 캐나다 발음이었다. 문법을 틀릴 때에는 인터넷에 해당 문법을 검색해서 사람들의 블로그 설명을 보았다. 예를 들어 관계대명사 문제를 틀렸다면 '관계대명사 토익'을 검색한다. 그러면 토익용으로 문법 설명을 해주어 다음에 같은 문법의 문제를 마주칠 때 낯섦이 덜하다. 그리고 검색도 안되고 이해가 되지 않은 문제는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오픽에서는 IH성적을 받았다. 공부를 안 해서 그렇지만 나름 고사장 끝까지 남아서 계속 떠들었었는데 아쉬웠다. 다시 볼 마음은 없다.


스무 살에 본 그 사주는 정확했다. 그때 이후로 영어와 뗄 수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체능에 재능은 없을지라도 미술을 좋아하는 성향이 이를 말해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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