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인가, 반복되는 일상에 잠식되기 전 잠깐 휴가를 이틀을 내었다. 3박 4일 동안 갈 수 있는 여행지를 찾다가 가까운 일본 후쿠오카 여행을 다녀왔다. 불현듯 낸 휴가라 아무런 정보 없이 일단 비행기를 탔다. 도착하니 공항이며 지하철 역에 한국어가 많이 표기되어 있어서 불편함이 없었다. 심지어 공항과 도심이 가까워 숙소 가는 길만 구글 지도로 확인하며 수월하게 여행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브라질 친구에게 여행 계획을 아직 안 세웠다고 하니 같이 다니자 해서 생각보다 더 재밌게 즐겼다.
일본에서는 우산을 사라는 조언이 기억나 백화점 에서 가장 예뻤던 우산을 사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 우산을 사용하면서 후쿠오카의 여행을 되새기는 맛도 있었다. 이렇게 여행지에 가면 실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것들 위주로 사곤 한다. 그래야 쓰면서 여행의 기억이 계속 되살아나 현실에 고단함을 잊을 수 있게 해 준다.
그리고 당연히 아끼는 우산을 캐나다에 가지고 갔다. 비 오는 날을 기다릴 정도로 우산은 밴쿠버 도심 속에서 그 빛을 더 발했다. 레인쿠버라는 말이 있듯이 밴쿠버는 겨우내 날씨가 좋지 않다. 추울 때는 운이 좋으면 눈이 되고 주로 질척이는 비가 내리는 날이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우산을 가지고 다녔는데 동생과 잉글리시 베이를 산책하기 전 우산을 챙겼다. 바다는 노을을 준비하고 있었다. 늘어져 금색으로 발하는 햇살이 비춤과 동시에 비가 쏟아졌다. 여우비였다. 동생과 우산을 나누어 썼는데 햇빛을 받은 우산이 너무나 예쁘다며 사진을 찍어주었다.
레인쿠버가 끝날 때 즈음 매니저가 퇴사하고 새로운 매니저가 부임했다. 아시안으로 가득한 이곳에서의 적응이 영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나도 워킹홀리데이가 거의 끝나가는 시점이라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렇게 파트너들과 매니저 사이의 갈등이 시작될 때 매니저가 매장 내 개인용품을 챙겨가라는 노티스를 붙였다. 나는 딱히 두고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은 비가 온다는 뉴스를 들어 우산을 챙겨 왔었고 퇴근할 때는 비가 오지 않아 그만 깜빡하고 우산을 두고 왔다. 평상 시라면 다음날 매장을 와도 그 자리에 내 우산이 있었기 때문에 문제 될 것은 없었다. 하지만 그날은 노티스가 붙여진 날이었고 매니저는 그렇게 우산을 버렸다.
다음 날 우산을 버린 것을 알게 된 후, 두고 간 내 잘못이 있어 매니저에게 버렸다는 이야기만 듣게 되었고 한동안 우울했다. 표정에도 그게 티가 났는지 내 안부를 묻는 친구들에게 일어난 일을 얘기해주었다.
"그 우산 기억나! 엄청 예뻤는데."
친구가 기억할 정도로 예쁜 우산을 잃어버린 게 더 심장을 후려쳤다. 이렇게 우산을 허무하게 보낼 수 없었다.
쉬프트가 끝나고 쓰레기장으로 달려갔다. 빌딩주차장에 빌딩에서 나오는 모든 쓰레기를 모으는 큰 컨테이너가 있다. 그곳에 가니 다행히 컨테이너가 비워지지 않았다. 그 말은 이 안에 아직 내 우산이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컨테이너가 무척이나 컸기 때문에 그 속에 쓰레기를 뒤지는 것에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상황이 사람을 만든다고 그 옆에 작은 컨테이너를 눕혀서 위로 올라가 스타벅스에서 나온 쓰레기 봉지를 하나하나 찾아가며 뒤졌고 마침내 찾을 수 있었다. 냄새는 조금 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우산을 들고 주차장에 나오니 온 세상이 다시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끔 애착 인형처럼 어느 날 불현듯 우산이 어딨는지 눈으로 확인해야 진정되는 날들이 있었다. 그때마다 우산이 있는 곳, 혹은 그곳에 없으면 다시 가방을 뒤져서 우산을 찾아낸 다음에야 다음 일을 하거나 잠에 들 수 있었다.
현재, 우산은 다시 없어졌다. 이사를 하면서 아니 혹은 그 이전에 잃어버렸다. 심지어 동생이 찍어준 사진도 삭제되었다.
지금, 홀가분하다. 그 우산이 주는 불안에서 해소되었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건 안타깝지만 해방감이 더 크기에 다른 우산을 쓰면서 살고있다. 다른 우산도 보스턴에서 사 오거나 도쿄에서 산 각각 특별한 우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