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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사원 엘리스 Oct 24. 2021

#008. 두 개의 우선순위

월급은 좋지만 내 삶이 사라질까 봐 불안해

처음 경험하는 회사생활에서 나는 모든 것이 서툴렀다. 메일을 쓰고 전자결재를 올리는 소소한 일 하나하나에도 한참을 망설였고, KPI니 BSC니 하는 영어 약어들이 등장할 때마다 겉으로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속으로는 그 말뜻을 기억해내느라 남몰래 잔뜩 긴장해야 했다. 또 처음 경험하는 조직생활은 내가 미처 몰랐던 변수들이 너무 많아서 팀장님 앞에서 별 뜻 없이 뱉은 말이 사수의 기분을 상하게 하기도 했다. 겨울의 러시아에서는 걷는 법을 다시 배워야 했다는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신입사원도 처음 경험하는 회사에서 인사하고 밥 먹고 말하는 법을 다시 배워야 했다. 이것은 분명 작지 않은 변화였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리 대단한 변화도 아니다. 오히려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새로운 사회에 들어가서 새로운 관계를 맺으며 그 사회에 존재하는 암묵적인 규칙과 금기를 익히는 일, 그것은 어릴 적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처음 친구 어머니가 차려준 저녁 식탁에 앉았던 순간 이래로 모든 인간관계 속에서 우리가 늘 경험하던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처럼 그 일을 적당히 잘 해냈다. 아주 뛰어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뒤처지지도 않을 정도로 말이다.


내가 들어온 세계의 풍경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된 건 회사에서의 일상이 조금 자연스러워진 무렵이었다. 큰 망설임 없이 메일을 쓸 수 있게 되었을 즈음, 문득 나는 이곳의 풍경이 상당히 낯설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한걸음 들어선 회사원의 세계는 이전에 내가 막연히 갖고 있던 이미지와는 사뭇 달랐다. 내가 경험한 회사는 놀라운 능력의 슈퍼히어로들이 등장해 온갖 위기를 멋들어지게 해결해내는 오피스 드라마도, 그렇다고 공공연히 직원에게 욕설을 퍼붓고 재떨이를 던지는 80년대 스타일의 호러무비도 아니었다.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100도씨의 뜨거운 열정보다는 36.5도씨의 미지근한 책임감으로, 아주 가까운 친밀감보다는 서로의 선을 지켜주는 적당한 예의와 거리감으로 주어진 일들을 처리했다. 주말드라마에서처럼 선배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는 천재 신입사원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건 뛰어난 개인이 존재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회사에서의 전문성이 이론과 논리보다는 실패와 시행착오를 통해 시간을 들여 익혀야 하는 경험지식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배움과 성장, 졸업이라는 정해진 단계도 더 이상은 없었다. 누군가는 아주 빨리 회사를 나가고 누군가는 아주 오래 회사에 남았다. 함께 같이 일을 하는 동안에도 누군가는 이직을 누군가는 재테크를 또 누군가는 회사원 이후의 삶을 꿈꿨다. 우리는 모두 각자 다른 이유 다른 목적으로 이곳에 머물렀고 각자 다른 삶 다른 인생을 꿈꿨다. 그들 모두에게 있어서 매일의 노동을 지탱해주는 분명한 공통분모는 바로 월급과 마감, 근태 체크와 이제는 몸에 밴 일상의 리듬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단 한 가지 분명한 명제는 바로 이곳이 '시간을 팔아 돈을 사는' 노동의 공간이라는 사실이었다.


물론 이곳에서도 꿈과 열정, 사랑과 같은 아름답고 인간적인 것들은 싹텄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진 일에서도 때로 재미와 성취감을 느꼈고 서로의 거리를 지켜주는 건조한 관계 속에서도 적잖은 사내커플이 생겨났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보너스 같은 것이었다.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어쩔 수 없는 것 말이다. 회사원에게는 언제든 하기 싫은 일이 불쑥 떨어질 수 있었다. 그리고 한번 주어진 일은 회사를 그만두지 않는 이상은 어떻게든 제 손으로 해내야 했다. 회사원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이유로 월급을 안 받을 수는 없듯이, 월급을 받고 있는 한 하기 싫은 일을 완벽히 피할 방법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꽤 운이 좋은 편이어서 내가 맡은 업무는 대체로 나의 적성에 잘 맞았다. 하지만 그건 월급을 받고 하기에 괜찮은 일이라는 뜻이지, 월급을 받지 않는 주말에도 하고 싶을 만큼 재미있는 일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회사원의 세계에서 개인의 성장과 만족, 자아실현 같은 가치는 어디까지나 부차적이었다. 이곳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바로 약속한 근로를 제공하고 약속된 급여를 받는 것이었다. 만일 여기서 공공연히 꿈이나 성장 같은 가치를 이야기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오히려 한 번쯤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 필요가 있었다. 그건 열정 노동을 강요할 때 흔히 등장하는 단어였으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회사원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출근과 퇴근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하루, 타인이 요구한 노동이 중심이 된 하루, 그리고 근로와 월급의 리듬으로 채워지는 일상을 받아들이는 일이었음을 나는 아주 천천해 배워갔다.



근로시간에는 흥미로운 특성이 있다. 그것은 바로 회사에서 일하는 시간이 남에게 판 남의 시간인 동시에 내 삶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회사에서 두 개의 우선순위를 가지고 살아간다. 바로 보이는 우선순위와 감춰진 우선순위가 그것이다. 보이는 우선순위는 사회가 나에게 요구하는 공식적인 우선순위이다. 근로시간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남의 시간이기 때문에 외부로부터 요구받는 우선순위인 것이다. 반면 감춰진 우선순위는 실제로 각자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개인적인 우선순위이다. 근로시간은 내 시간이기도 하기에 스스로가 원하는 우선순위다. 우리 모두는 각자 다른 이유와 목적으로 회사를 다닌다. 그리고 우리는 각자의 삶에서 진짜 소중한 것은 따로 있다는 사실을 서로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서로의 눈에 닿지 않는 곳, 회사 밖의 어딘가에 말이다. 그리고 이 모든 개인의 사정에도 불구하고 근로시간은 회사에 판 회사의 시간이기에 회사에서 공식적인 우리의 우선순위는 언제나 회사의 업무였다. 


회사원이라면 급한 회사일로 약속을 미뤄본 경험이 아마 다들 한번쯤 있을 것이다. 물론 반대로 친구에게 급한 회사일이 생겨서 약속이 미뤄진 경우도 있을 것이고 말이다. 이 경우 대체로 약속이 파투난 것을 아쉬워하면서도 상대를 원망하기보다는 안쓰러워한다. 좋아서 야근을 하는 게 아님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데다가, 회사일은 돈을 받고 하는 것인 만큼 개인적인 약속보다 중요할 수 있다는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다. 대외적으로 학생의 본분이 공부라면 회사원의 본분은 회사의 업무이다. 특히 풀타임 근로자에게 갖는 사회의 기대치는 아르바이트의 그것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학생에게 아르바이트는 대체로 학업보다는 덜 중요한 일로 여겨지고, 그런 만큼 개인의 상황에 맞추어 근무시간을 조율하고 정해진 시간이 되면 하던 일을 놓고 퇴근하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회사는 달랐다. 풀타임 근로자에게 사회에서 용인되는 ‘더 중요한 일’은 존재하지 않았다. 약속된 근로시간은 우리의 일상에서 최우선으로 비워두어야 하는 시간이었고, 이에 더하여 퇴근 이후라도 급한 일이 있다면 야근을 해야 했다. 그렇다고 내가 다닌 회사가 야근이 만연한 곳이었다는 뜻은 아니다. 다행히도 내가 속한 팀은 야근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전혀 없었고, 자신의 업무가 끝나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칼퇴가 가능했다. 회식이나 워크숍도 거의 없는 편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언제든 결산이나 감사와 같은 긴급 업무가 생기면 마감을 맞추기 위해 야근을 했고, 때로는 출장이나 교육 같은 공식일정으로 인해 며칠씩 집을 비우기도 했다. 퇴근 이후의 시간이라도 다급한 회사일이 있다면 그걸 먼저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내가 한 대부분의 야근은 내가 맡은 업무를 내 손으로 마무리하기 위해 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해서 한 일이었고, 그런 만큼 특별히 억울했던 적은 많지 않다. 다만 하고 싶은 말은 회사원이 된 이후부터 내 시간을 쓰는 데 있어 회사가 가장 우선순위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내 마음속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의 우선순위가 무엇이든, 매일의 일상에서 내 시간의 우선순위는 부정할 수 없는 회사였다. 그리고 하루하루가 모여 한 사람의 일생이 된다면, 그건 앞으로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내 삶의 실제적인 우선순위는 회사가 될 거라는 것을 의미했다.

 

한편 우리는 같은 시간에 출근하고 같은 공간에 앉아서 비슷한 일들을 했지만 우리가 갖고 있는 보이지 않는 우선순위는 각각 달랐다. 우리는 각자가 다른 생각과 다른 목적을 갖고 다른 가치를 추구했다. 회사에서 어떤 이들은 일에서의 성취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특히 자신의 꿈을 직업으로 갖고 있는 사람들이 그랬다. 이들에게 일은 단순히 생계수단 만이 아니라 꿈과 자아실현의 대상이었고, 그래서 이들은 일에서 느끼는 보람과 성취감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생각했다. 한편 어떤 이들은 회사에서 일을 통해 좋은 커리어를 쌓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들은 다양한 업무 경험을 통해서 자신이 일하는 분야의 실력을 쌓았고 이직을 하면서 자신의 몸값을 높였다. 회사가 내 미래를 보장해주지 않는 만큼 스스로 자신을 지킬 수 있도록 자신만의 확실한 전문성을 갖기 위해 노력했다. 또 어떤 이들은 조직에서의 인정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했다. 회사에서 좋은 평가를 얻고 빠르게 승진해서 조직의 리더로 인정받는 것을 중시했다. 이들은 업무 전문가로서의 커리어패스 보다는 관리자로서의 커리어패스에 관심이 있었다. 그리고 그중 일부는 '별을 따는데' 성공해서 회사의 임원이 되기도 했다. 한편 어떤 이들은 일과 삶의 균형(work and life balance), 일명 워라벨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들에게는 가족을 돌보고 개인의 여가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가치였다. 일에서 느끼는 재미와 성취감보다도 퇴근 이후 자신의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느냐가 직업선택의 기준이 되었다. 이들은 박봉이더라도 퇴근시간이 보장되고 정년까지 일할 수 있는 안정성 높은 직장을 선호했다. 또 어떤 이들은 무엇보다 재테크를 중시했다. 주식, 부동산, 코인, 유튜브, 블로그 등등 세상에는 다양한 재테크 방법들이 존재했고 이들은 돈이 들어올 수 있는 다양한 경로, 일명 파이프라인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우리가 회사에 다니는 목적은 뭐니 뭐니 해도 역시 돈이었고 그런 만큼 어서 빨리 돈을 벌어서 회사에 다니지 않고도 먹고살 수 있는 경제적 자유를 꿈꿨다. 


우리는 각자 회사에서 바라는 목표가 모두 달랐고 각자의 가치관을 존중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일을 했다. 우리는 각자의 경제적 사정과 집안 환경, 개인의 관심사에 따라서 회사와의 관계를 설정하고 나의 태도를 정했다. 때문에 워라벨을 중시하는 사람에게 왜 더 열심히 전문성을 쌓지 않느냐고 말하기도 어려웠고, 일에서의 성취감을 중요시하는 사람에게 재테크가 최고라고 강요할 수도 없었다. 우리는 모두 내 시간을 들여 남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고, 그래서 서로의 일에 구멍이 나지 않는 선에서 각자의 삶의 방식을 존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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