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은 좋지만 내 삶이 사라질까 봐 불안해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 우리의 꿈은 대체로 직업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가수, 축구선수, 배우, 피아니스트. 그 꿈들은 모두 단순히 좋아하는 일을 넘어 '직업으로서의 꿈'을 가리켰다. 사실 주위의 직장인들 중에도 같은 일을 취미로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퇴근길이면 늘 코인 노래방에 들르는 사람, 주말이면 축구동호회에서 공을 차는 사람, 직장인 극단에서 연극을 하는 사람, 매일 저녁 집에서 피아노 연습을 하는 사람 등등. 얼마든지 일 대신 취미로 할 수 있는 일임에도 어린 시절의 우리는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기를 바랐다. 그 시절 우리는 아직 현실의 제약 없이 마음껏 꿈꿀 수 있었고 그렇다면 기왕이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것이 훨씬 더 근사해 보였으니까 말이다.
사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싶은 마음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마음이다. 나의 하루를 좋아하는 일에 온전히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금수저가 아닌 우리 대부분은 내 시간을 들여 타인에게 노동력을 제공하고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시간을 팔아 돈을 사며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나와 같은 회사원의 하루에는 내 시간이지만 내 것이 아닌 시간, 내 삶이지만 내 것이 아닌 삶이 존재한다. 바로 근로시간이다. 그건 종종 삶에 공허함을 안겨주기도 한다. 하루 종일 분주하게 살았지만 나를 위해 쓴 시간은 거의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그렇다. 이렇게 하루하루가 모여서 인생이 될 텐데 단지 돈을 위해 내 인생의 한 조각을 날려버렸다는 생각에 닿으면 마음이 한구석이 쓸쓸해진다. 그래서 실제로 아주 많은 사람들이 월급이나 복지보다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최우선으로 직업을 선택한다. 하루의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회사인 만큼 그 시간을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일에 쓰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다. 그리고 '직업으로서의 꿈'은 생존의 불안과 자아실현의 불안이라는 두 가지 불안을 한꺼번에 해소하는 치트키가 되어준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면 우리는 마음껏 열심히 살아도 된다. 이제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은 나를 위한 시간이 되고 생계를 위한 시간은 동시에 자아실현의 시간이 되며 회사에서의 경험은 동시에 내 개인의 성장이 된다. 내가 하는 일은 모두 내 꿈인 만큼 열심히 일한다고 해서 손해 볼 일도 없게 된다.
그런데 이렇듯 더할 나위 없이 좋아 보이는 '직업으로서의 꿈'은 그러나 현실이 되기에는 몇 가지 난관이 존재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야 한다. 그런데 하루 이틀을 하기에 괜찮은 일이 아니라 몇 년 아니면 몇십 년을 지속하기에 좋은 일을 찾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재밌어서 시작한 일도 시간이 지나면 마음이 식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또한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기 위해서는 그 일에 대한 재능과 운이 필요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려면 그 일에 대한 시장이 존재해야 했고, 타인으로부터 돈을 벌기 위해서는 남이 돈을 낼만큼의 재능과 실력도 필요했다. 거기에 실력을 키울 수 있는 주변 환경과 개인의 노력이 더해져야 비로소 우리는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었다. 그런데 꿈을 직업으로 갖는 데 성공하고 나서도 어려움은 남아있었다. 바로 열정 노동이라는 이름의 함정이었다. 대학원생들은 '내 공부'라는 이유로 연구실에서 제대로 대우받지 않은 노동을 해야 했고 저녁 늦게나 주말에도 교수님께 수시로 연락을 받았다. 예술이나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박봉과 격무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았고 그러다 보니 좋아서 시작한 일임에도 더는 버티지 못하고 더 나은 근무환경을 찾아 필드를 떠나기도 했다. 직업으로서의 꿈은 최선의 경우 생존과 자아실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게 해 주었지만, 최악의 경우 나는 분명 타인을 위한 노동을 했음에도 제대로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칠 수도 있었다.
장래희망을 고민하던 시절, 그때의 우리에게는 '나의 욕망'이라는 하나의 변숫값을 찾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지금 어른이 된 우리에게는 생계를 위해 '현실의 제약'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한 차원 더 높은 과제가 주어져있다. 마치 학년이 올라가면 1차 방정식에서 연립방정식으로 수학의 난이도가 바뀌듯이 말이다. 점점 복잡해지는 문제의 조건에 맞춰서 우리는 각자의 성향과 조건과 환경과 가치관에 따라서 자신의 방향을 결정한다. 누군가는 꿈을 직업으로 삼고 또 누군가는 꿈과 직업을 분리한다. 누군가는 꿈에 몰두하고 또 누군가는 꿈이라고 믿었던 것이 사실은 내 꿈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누군가는 자신이 안정된 삶보다 꿈이 주는 모험을 사랑하는 사람임을 깨닫고, 또 누군가는 자신에게 있어 꿈보다 더 중요한 인생의 조건이 있었음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중 어느 것이든 틀린 것은 없고 또 그중 어느 것이든 우리의 어릴 적 장밋빛 상상보다는 훨씬 어렵고 만만치 않을 거다. 그리고 우리는 아주 많은 시도와 실패와 고민과 방황 끝에 그중 어느 것이든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곳으로 각자의 길을 찾아갈 테다.
당신이 눈을 감고 걸어도 맞는 길을 고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