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은 좋지만 내 삶이 사라질까 봐 불안해
회사원으로 사는 삶은 내 예상보다 훨씬 만족스러웠다. 늘 어딘가 위태롭고 붕 떠있던 삶이 삶이 이제야 조금씩 단단한 땅 위에 자리를 잡아가는 느낌이었다. 업무도 점점 능숙해졌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이전보다 더 편안해졌다. 나는 지금의 삶을 사랑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지금의 삶이 정말 좋았지만 왜인지 자꾸만 마음 한 구석이 찜찜하고 불안했다. 무언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돌이켜보면 내 삶에는 항상 두 개의 불안이 도사리고 있었다. 내 맘속에 잠복해있던 이 두 개의 불안은 서로 반대 방향으로 내 마음을 잡아당기며 자꾸만 나를 초조하게 했다.
나를 흔든 첫 번째 불안은 바로 생존에 대한 불안이었다. 오래전부터 내 마음속에는 항상 생존에 대한 불안이 도사리고 있었다. 내 마음속에는 그리 싹싹하지도 않고 붙임성 없는 내가 과연 이 사회에서 제대로 밥벌이를 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이었다. 특히 취업을 준비하는 시기는 생존에 대한 불안을 마구 증폭시켰다. 그 시기 숱한 회사들로부터 받은 거절의 문자는 내 불안이 진실임에 틀림없다고 외치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런 불안이 드는 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짧은 아르바이트 말고는 제대로 돈을 벌어 본 경험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길에 대해 막연한 환상과 두려움이 생기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아마도 취업을 하고 월급을 받고 업무를 익히고 회사생활에 익숙해지면 불안도 자연히 잦아들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번 시작된 불안은 그리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어릴 적에 감염된 수두 바이러스가 몸속에 남아 대상포진을 일으키듯이, 한번 부풀어 오른 불안은 잠시 잠복해 있다가도 작은 계기만 있으면 자꾸 마음 밖으로 튀어나왔다. 다른 회사로 이직하는 동기를 보면 나도 경력직으로 이직하며 연봉을 높여나가야 할 것 같았고, 경제위기에 관한 기사를 읽으면 하루라도 빨리 정년이 보장되는 공기업이나 공무원을 준비해야 할 것 같았다. 자격증을 따서 전문직으로 일하는 친구를 보면 지금이라도 뭔가 미래를 보장해줄 만한 자격증을 준비해야 하나 싶었고, 재테크로 큰돈을 벌고 퇴사했다는 누군가의 무림 전설을 들으면 이제라도 코인을 사야 할까 심란해졌다. 나는 지금의 삶이 좋았지만 미래도 계속 좋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사기업에서의 미래는 위태로워 보였고 나는 자꾸만 플랜B를 생각했다. 그런데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인생에 보험이 될만한 것을 찾아 여기저기를 기웃대다 보면 마음 한구석에서 또 다른 불안이 피어올랐다.
설마 이게 내 삶의 전부인 걸까?
나를 흔든 두 번째 불안은 바로 삶의 의미에 대한 불안이었다. 이직을 위해 영어성적이라도 만들어 두려고 먼지 묻는 토익 문제집을 꺼내다 보면 마음속에서부터 슬며시 고개를 드는 불안이었다. 이 불안은 생존 불안과는 완전히 정반대 방향으로 내 마음을 흔들었다. 미래에 대한 불안에 쫓겨 조바심을 내는 사이에 내 삶이 증발해버리고 있다는 생각이 나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인생에 완벽하게 안전한 것은 따위는 없었다. 플랜B를 준비하고 나면 플랜C가 아쉬울 테고, 플랜C를 채우고 나면 또 플랜D가 눈에 밟힐 거다. 세상에 하면 좋은 일은 끝도 없이 많았고 도움이 되는 스펙은 끝이 없이 많았다. 생존의 불안은 아마 영영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었고, 불안에 쫓기고 급한 일에 휘둘리다 보면 자기개발의 늪에 빠져 영영 헤어 나오지 못할지도 몰랐다. 생존이 내 삶의 목표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사회가 요구하는 외부의 기준을 맞추려고 허둥대는 사이 진짜 내 삶은 시작해보지도 못한 채 사라지고 있는 것만 같았다.
특히 퇴사를 하고 자신의 삶을 찾아 떠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괜히 입이 마르고 마음이 초조해졌다. 퇴사를 하고 누군가는 세계여행을 떠났고 누군가는 유학을 떠났다. 누군가는 안나푸르나에 올랐고 누군가는 산티아고 길로 떠났다. 누군가는 꿈꾸던 공방을 차렸고 또 누군가는 요가를 수련하며 스스로를 탐구했다. 그게 무엇이든 자기 다운 것을 찾아 떠나는 사람들의 모습은 빛나 보였고 그럴수록 내 마음에는 조바심이 일었다. 자신의 꿈을 좇아 떠나는 사람들의 모습에 비하면 평생을 일해 겨우 서울에 집 한 채를 장만할까 말까 하는 회사원의 삶은 너무도 시시하고 보잘것없어 보였다. '내 집 마련의 꿈'이 내 인생의 꿈이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회사를 무작정 뛰쳐나갈 수도 없었다. 이곳은 힘들게 들어온 회사였고 잘 다니던 회사를 퇴사할만한 명분도 딱히 없었다. 게다가 지금은 내 삶의 그 어느 순간보다 만족스러웠고 나는 통장에 돈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하루 종일 머릿속에 돈 걱정만 나는 종류의 사람이었다. 회사를 계속 다니는 것은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이었지만 그래도 가끔 충동처럼 불안이 일었다. 계속 이렇게 살아도 될까? 지금이라도 회사를 뛰쳐나가서 내 꿈을 찾아 떠나야 하는 건 아닐까?
나는 끓는 물속의 개구리처럼 월급의 달콤함에 빠져
내 삶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