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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사원 엘리스 Oct 24. 2021

#003. 일의 기쁨에 대하여

월급은 좋지만 내 삶이 사라질까 봐 불안해

     회사는 참 좋은 곳이네. 깨워도 주고 돈도 주고!


갓 회사에 입사했을 무렵 엄마는 딸이 회사원이 되었다는 사실을 무척이나 신기해했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엄마 눈에는 아직 애처럼 보이는 딸이 회사원이 되어 정장을 차려입고 출근을 하고 월급도 벌어온다는 사실이 엄마에게는 마냥 신기하고 신나는 모양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엄마를 놀라게 한 것은 내가 아침 8시까지 회사로 출근한다는 사실이었다. 대학생 때는 오전 수업은 신청도 하지 않던 늦잠꾸러기 딸이 회사원이 되더니 무려 새벽 6시에 혼자 일어나서 척척 출근을 하다니, 그 모습은 엄마에게 도무지 믿기 힘든 광경이었다. 엄마는 그 모든 변화가 생각할수록 신통방통했는지 나에게 몇 번이나 이런 말을 되풀이했다.

 '회사는 참 좋은 곳이네. 깨워도 주고 돈도 주고! 내가 그렇게 깨워도 안 일어나더니 돈이 참 좋기는 좋네!'  

그 무렵의 엄마에게는 세상 모든 일이 다 아름다워 보이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초긍정 모드가 된 엄마를 지켜보며 나도 '사람이 이렇게까지 긍정적일 수가 있구나' 하며 내심 신기해했던 기억이 난다.




회사를 다니는 것은 분명 고된 일이다. 돈을 받고 하는 회사일은 돈을 주고 하는 공부와는 그 책임의 강도가 완전히 달랐다. 가끔 지각을 해도 큰 문제가 일어나지는 않던 학생 때와는 달리 회사원에게 지각은 때로 시말서를 써야 하는 잘못이었다. 게다가 만일 직원이 회사에 아무런 얘기 없이 무단결근을 한다면 그건 어쩌면 회사에서 잘릴 수도 있는 심각한 문제였다.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는 파티쉐인 주인공이 실연의 충격으로 크리스마스이브에 무단결근을 했다가 회사에서 잘리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이 장면을 처음 볼 때만 해도 나는 인정머리 없는 회사를 욕했다. 하지만 회사원이 되고 나서는 이 장면이 전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파티쉐가 일 년 중 가장 바쁜 크리스마스이브에 무단결근이라니! 무책임해도 너무 무책임했다. 그건 다른 동료들에게 초대형 폭탄을 떠넘기는 민폐 중의 민폐 행동이었다. 회사일은 학생 때처럼 '하기 싫으면 F를 받고 안 하고 말지' 같은 선택이 불가능했다. 회사일이란 대개 나 하나가 나쁜 평가를 받고 끝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고, 내가 못한다면 다른 누구라도 어떻게든 끝을 내야 하는 종류의 일이었다. 돈을 받고 하는 일인 만큼 하기 싫은 일도 피할 도리가 없었다. 입사 초반, 나는 잔뜩 긴장한 채로 하루 일과를 보냈고 집에 돌아오면 대단히 한 일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대로 녹초가 되어 뻗어버리곤 했다. 우리 대부분은 월요일부터 금요일을, 출근하면서도 퇴근을 기다렸고, 그러다 일요일 저녁이면 내일이 출근이라는 걸 믿을 수 없어 슬픔에 잠겼다. 그리고 마침내 월요일 아침이 되면 회사 앞 카페는 하루치 카페인을 채우러 온 회사원들로 가득했다. 우리는 진한 아메리카노로 잠든 뇌를 깨우며 결국 월요일이 오고 말았다는 사실을 비통해했다. 그런 날에는 투명인간처럼 아무도 내 존재를 모르는 채로 통장에 월급만 꼬박꼬박 들어오면 좋겠다는 말도 안 되는 공상들을 주고받으며 함께 깔깔거렸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분명 출근을 하면서도 이미 퇴근이 하고픈 사람인데도, 어째서인지 회사원으로 살아가는 지금이 좋았다. 분명 회사를 다니는 것은 고된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일상에는 분명한 장점이 있었다.


회사생활이 가진 첫 번째 장점은 바로 건강한 삶의 리듬이다. 회사가 나를 '깨워도 주고 돈도 준다는' 엄마의 감탄처럼 입사를 한 이후 나는 전에 없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규칙적인 생활을 시작했다. 아침에 침대 밖을 나서는 일은 아마 언제나 누구에게나 큰 의지와 용기가 필요한 일일 테다. 특히 20대 내내 올빼미형 인간으로 살아온 내게는 더더욱 그랬다. 아침이면 차례로 울어대는 알람을 꺼버리고 다시 자기 일쑤였고, 자칫하면 지각을 할지도 모를 아슬아슬한 시간까지 이불속에 누워 '몸이 안 좋다는 핑계를 대고 그냥 확 연차를 써버리면 어떨까' 하며 몰래 고민하곤 했다. 그 순간만큼은 융통성이라곤 없는 회사의 제도가 가혹하고 원망스러웠다. 그렇지만 돈의 힘은 무서웠고 나는 결국 지각의 마지노선에 다다라서야 겨우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곤 했다. 그런데 아침마다 원망했던 바로 그 강제력 덕분에 나는 전에 없이 건강한 일상을 시작할 수 있었다. 정해진 출근시간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이 고정되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밤에 잠이 드는 시간 또한 대체로 일정해졌다. 되는대로 먹던 식사시간도 점차 일정해졌고 어느새 불규칙하던 일상은 조금씩 나름의 패턴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건 누군가에게는 별 일 아니었겠지만 내게는 아주 소중한 변화였다. 회사생활의 강제력은 내가 이전에 혼자서는 이루지 못했던 변화를 만들어내며 내 삶을 전보다 더 괜찮은 모습으로 바꾸어가고 있었다.


내가 회사생활에서 발견한 또 하나의 장점은 바로 인간관계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회사생활의 스트레스 요인으로 첫 손꼽는 것도 인간관계다. 언제든 무례하고 몰상식한 인간을 만나면 금세 회사생활이 지옥으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느슨한 인간관계를 맺어가기에 꽤나 적절한 공간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하는 동안 내가 만난 인간관계는 대개 두 부류에 속했다. 하나는 가족이나 친구 같은 친밀한 관계, 또 하나는 식당이나 카페 사장님들처럼 소비를 통해 이루어지는 일시적인 갑을관계가 그것이다. 친밀한 관계는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큰 힘과 의지가 되지만 그만큼 많은 마음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반면 소비를 통해 이루어지는 관계는 돈을 쓰는 사람이 누구인가에 따라 갑과 을이라는 위계관계가 분명히 정해져서 감정 소모가 적다. 그런데 내가 항상 갑의 위치에 있는 관계는 위험하다. 자칫하면 내 앞의 존재가 인간임을 잊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땅콩회항 사건이나 대학원에서 이루어지는 교수들의 갑질 사건은 항상 갑의 위치에 있는 일이 얼마나 쉽게 타인에 대한 감각을 무디게 만드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런데 회사생활을 통해 우리는 친밀한 관계보다는 거리감이 있고 갑을관계보다는 가까운 '동료'라는 유형의 새로운 관계를 만나게 된다. 함께 협업하며 일을 해나가야 하는 관계에서는 언제나 상대의 도움을 받을 일이 생긴다. 또한 자신의 사회적 평판도 관리해야 하기에 우리는 어느 정도 서로를 배려하고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그렇게 회사생활은 돈으로는 살 수 없는, 적당한 친밀함과 건강한 거리감을 갖춘 느슨한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도와준다.


다음으로 내가 꼽는 회사생활의 장점은 바로 퇴근 후에 누리는 자유이다. 학생 때와는 달리 회사원의 삶에서는 대체로 일과 삶의 구분이 뚜렷했다. 일주일은 평일과 주말로 나뉘었고, 같은 평일이라도 대체로 퇴근 후에는 회사일에서 자유로웠다. 하루 종일 회사에서 고생한 만큼 집에 돌아와서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맘 편히 쉴 수 있었다. 저녁에는 드라마를 보든 산책을 하든 친구를 만나든 뭐든 다 괜찮았다. 회사에서 열심히 일했던 만큼 저녁에는 맘껏 놀고 맘껏 쉬는 게 당연했다. 저녁은 완전한 내 시간이었고 나는 당당하게 놀 수 있는 지금이 참 좋았다. 회사원이란 돈을 받고 약속된 시간만큼 남의 일을 하는 사람인만큼 일과 삶의 분리는 어찌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학창 시절 내내 늘 공부시간과 쉬는 시간이 분리되지 않은 채 살아온 내게는 이 당연해 보이는 특징이 매우 특별하게 다가왔다. 더 이상은 쓸데없는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하루 중에 내 시간은 매우 짧았고 저녁이면 지쳐서 아무것도 할 힘이 남아있지 않은 날도 많았지만, 그래도 이 순간만큼은 얼마든지 마음껏 즐겨도 된다는 사실이 나를 행복하게 했다.


일에서 느끼는 재미도 있었다. 사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업무는 입사 전까지만 해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입사지원서를 쓸 당시만 해도 나는 다른 업무에 지원했는데 막상 입사 이후에 지금의 업무에 배정받은 것이다. 지금 내가 있는 자리에 갑작스럽게 결원이 생긴 까닭이었다. 애초에 한 번도 꿈꾼 적 없는 회사원이 된 데다가 업무마저도 한 번도 생각한 적 없는 일을 맡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정말 다행스럽게도 어쩌다 보니 발 들여놓게 된 지금의 업무는 의외로 내 적성에 잘 맞았다. 프로그램 코딩을 하는 일이었는데, 알 수 없는 에러가 떨어지면 잔뜩 스트레스를 받다가도 문제가 해결되면 일이 재밌게 느껴지는 그런 종류의 일이었다. 물론 그 재미는 집에 와서도 하고 싶을 만큼의 재미는 아니었다. 돈을 받고 하기에 괜찮은 일이라는 뜻이지 월급 없이도 취미로 하고 싶을 만큼 재미있는 일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드라마를 보고 책을 읽고 여행을 가고 사진을 찍고 피아노를 치고 그림을 그리고 기타 등등, 세상에 이것보다 재미있는 일은 무수히 많았다. 그래도 이 일에는 수학 문제를 풀거나 엄마를 따라 멸치 한 박스의 똥을 다 뗐을 때 느껴지는 그런 소소한 재미와 성취감이 있었다. 그리고 이 재미는 일을 계속할 수 있는 힘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회사 생활의 가장 큰 장점은 역시 월급이었다. 물론 신입사원의 월급이란 고만고만했고 게다가 세금과 사대보험을 떼고 나면 예상했던 것보다 더 적은 금액이 손에 남았다. 그렇지만 매달 정해진 날짜에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은 마음에 예상보다 훨씬 큰 여유를 안겨다 주었다. 가장 먼저 변화를 보인 것은 식당에서의 메뉴 선택이었다. 이제는 계란 라면이나 야채김밥 대신에 치즈라면이나 참치 김밥 같은 비싼 토핑이 들어간 메뉴도 마음껏 주문할 수 있었다. 열심히 일한 나에게 이 정도는 대접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부모님께도 처음으로 좋은 선물을 드렸다. 문화센터에서 사진 수업을 들으면서도 똑딱이 카메라를 들고 다니던 엄마에게 비싼 DSLR 카메라를 사드렸는데, 엄마는 나중에 더 좋은 기종으로 업그레이드할 때까지 몇 년을 그 카메라로 사진을 익혔고 출사를 갈 때면 꼭 주위 사람들에게 이 카메라가 딸이 사준 선물이라며 자랑을 했다. 그리고 이렇게 시작된 사진 촬영은 지금의 엄마에게 최고의 취미가 되었다. 달라진 건 소비만이 아니었다. 취업을 준비하는 동안 한껏 증폭되었던 생존에 대한 불안도 차츰 잦아들었다. 그때까지 몇 번의 아르바이트 외에는 제대로 돈을 벌어본 적 없던 나의 마음속에는 과연 내가 이 사회에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해본 일이라곤 공부밖에 없던 나는 내 자신이 과연 이 사회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을지 도무지 확신이 없었다. 게다가 취업준비 기간은 그나마 남아있던 자신감마저 갉아먹었다. 그랬던 나에게 월급은 내가 사회라는 이름의 정글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는 하나의 증명처럼 느껴졌다.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한 사람 몫의 일을 해서 가족의 도움 없이 스스로의 생계를 유지하며 독립적인 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증거 말이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조금 더 먼 미래를 예측하고 계획하는 일도 가능할 것만 같았다. 성인이 된 지 한참을 지났지만 월급을 받고서야 비로소 진짜 어른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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