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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사원 엘리스 Oct 24. 2021

#001. 한 번도 꿈꾼 적 없는 회사원이 되었습니다.

월급은 좋지만 내 삶이 사라질까 봐 불안해 

당신의 장래희망은 무엇이었나요? 

 초등학생 시절 학교에서는 매년 장래희망을 조사했다. 그 시절 선생님 말씀을 잘 듣고 한치의 부끄러움 없이 스스로를 '귀여운 어린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던 나는, 마찬가지로 내 자신을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미래의 꿈나무'라고 한치의 의심 없이 믿었다. 나는 매번 선생님이 돌린 쪽지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그 짧은 순간 모든 힘을 짜내어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근사한 미래를 계획했다. 당시 내가 선택한 장래희망은 대충 피아니스트, 타임머신을 만드는 과학자, 아프리카의 아이들을 고치는 의사, 화성을 여행하는 우주인 같은 것들이었다. 그 직업들은 대게 화려한 조명을 받거나 근사한 유니폼을 입으며 SF영화에서 세상을 구하는 히어로가 가질 법한 직업들이었다. 세상에는 멋진 직업이 많아서 그중 하나를 고르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었다. 나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깊은 고뇌에 빠졌다. 선택의 기준은 어떤 직업이 가장 근사해 보이는가였다. 나와 잘 맞는가에 대해서는 거의 고려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피아노 학원에 가는 것을 매우 싫어하면서도 단지 무대에서 근사한 드레스를 입고 싶다는 이유로 피아니스트를 고르는 식이었다. 그렇게 세상에서 가장 근사한 직업을 적어내고 나면 스스로가 자랑스러워 혼자 조용히 감탄에 젖곤 했다.  


어린 시절 우리들에게 장래희망은 그야말로 꿈이었다. 꿈이 현실의 시공간에 제약받지 않듯이 그 시절 우리가 꿈꾸던 장래희망에는 생계라든지 월급이라든지 업무강도 같은 현실의 조건이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그 시절 우리 반 아이들이 적어내던 장래희망에는 온갖 직업들이 있었다. 의사, 간호사, 선생님, 경찰관, 소방관, 과학자, 가수, 배우, 아나운서, 모델, 피아니스트, 발레리나, 축구선수, 농구선수 등등. 특히 우리의 꿈은 그 해의 유행에 따라 민감하게 반응했다. 만화영화로 '영광의 포뮬러'가 방영된 해에는 카레이서가 여럿 있었고 월드컵을 한 해에는 무수히 많은 수의 축구선수들이 나왔다. 텔레비전 속 세상에는 반짝거리는 직업들이 너무나 많았고 우리는 무엇이든 마음껏 꿈꿀 수 있는 미래의 꿈나무였다. 그리고 무엇이든 될 수 있다 믿었던 시절, 우리 중에 '회사원'을 꿈꾸는 아이들은 거의 없었다.  

 

그 시절 우리는 회사원이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했다. 어린 시절 우리들에게 회사원이란 단어는 자유나 평등 같은 말만큼이나 추상적이고 막연하게 들렸다. 사실 우리가 아는 것이라고는 그저 회사원들이 매일 아침 학교 대신 회사로 출근을 하고 공부 대신 일을 하며 한 달에 한 번씩 월급을 받는다는 것 정도가 다였다. 회사원에 대해 우리가 엿볼 수 있는 것은 출퇴근하는 모습뿐이었고, 막상 회사 안에서의 시간이 무엇으로 채워지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환자를 고치는 의사 선생님, 학생들을 가르치는 학교 선생님, 나쁜 놈들을 잡는 경찰 아저씨처럼, 어떤 직업들은 한두 마디의 말로 설명이 가능했지만 회사원이 무엇인지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유년의 우리에게 회사원은 마치 길가의 전봇대처럼 익숙하고 평범한 흑백의 배경으로 존재했다. 그 시절 우리는 회사원이 무엇인지도 몰랐고 자연히 회사원이 되기를 꿈꾸지도 않았다. 낙관으로 가득 찬 총 천년 색 미래의 풍경 속에서 흑백의 전봇대가 되고 싶은 '미래의 꿈나무'는 거의 없었으니까. 



  그런데 제가 전봇대가 되었습니다.


그게 뭔지는 몰라도 아무튼 굉장하고 대단한 어른이 될 거라고 믿었던 그 옛날의 꿈나무가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와 지금의 내 모습을 본다면 조금은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 아이는 세상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고는 미래를 바꾸기 위해 이를 악물고 노력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느 평행우주의 나는 지금의 나보다 훨씬 더 근사하고 멋진 존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아무튼 이 우주의 나는 회사원이 되었다. 아주 보통의 회사원 말이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떠보니 나는 회사원이 되어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어느 날 아침 눈을 떠보니 벌레가 되어버렸던 카프카 소설 속의 그레고리 잠자처럼, 어느 날 밤 갑자기 UFO에 끌려가 초능력을 얻은 둘리처럼, 그렇게 어떤 미지의 힘이 나를 끌고 가 어느 날 갑자기 뿅 하고 회사원이 되었다는 건 아니다. 사실 취업을 준비하던 무렵의 나는 아주 분명하고도 확실하게 회사원이 되고 싶었다. 토익 점수를 만들고 증명사진을 찍고 밤을 새워 끙끙대며 자기소개서를 쓰고 마감시간까지 원서를 수정하고 ‘귀하의 능력은 출중하나’로 시작하는 거절 문자를 확인하는 그 모든 순간, 나는 모래가 부서져 내리는 위태로운 벼랑 끝에서 총구에 밀려 조금씩 뒷걸음질을 치고 있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석사과정을 마치고 취업을 준비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스물아홉이었는데, 서른이 넘으면 취업이 어려울 거라는 사람들의 말은 취업 준비 기간이 한 달 한 달 길어질수록 자꾸만 나를 불안하게 했다. 마른침을 삼키며 면접관 앞에서 눈치 없이 떨리는 성대를 남몰래 가다듬던 그때의 나는 정말로 초조하고 절박하고 회사원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회사원이 되어있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스스로 선택하고 판단하고 결정하며 그 어느 때보다 더 능동적으로 움직였을지라도, 그 모든 간절한 마음과 분주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 삶에는 오로지 수동태로 밖에 말할 수 없는 순간들이 있다. 대학 입학 원서를 쓰며 어떤 전공을 선택할지 고민할 때, 착실히 모은 아르바이트비로 유럽행 비행기를 끊을 때, 아이를 갖기로 결심하고는 미리 엽산을 챙겨 먹을 때, 그 모든 선택의 순간들이 그렇다. 그 순간의 나는 지금 내가 선택하는 것의 진짜 의미를 결코 다 알지 못한다. 그때 내가 선택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는 방학이 끝나고 전공수업에서 낯선 용어를 처음 접하며 기분 좋은 두근거림을 느낄 때, 베를린 공항에 내려 미묘하게 낯선 공기의 냄새를 맡을 때, 그리고 말캉거리는 작은 몸을 놓칠까 봐 잔뜩 긴장하며 조심조심 첫 목욕을 시킬 때, 그렇게 내가 한 선택의 의미는 꽤나 긴 시차를 두고 한참이 지난 후에야 드러나게 된다. 그러니까 우리는 종종 미처 알지 못하는 것을 선택해야 하는 결정의 순간 앞에 놓이고, 그건 우리를 항상 얼마간 수동적인 존재로 만들어버린다. 


회사원이 되는 일도 내게는 그런 일들 중 하나였다. 회사원으로서의 삶이 나를 어떻게 바꾸어놓을지 미처 알 못했다는 점에서 거기에는 분명 어떤 수동성이 포함되어 있었다. 입사를 하고서야 비로소 나는 회사 안의 시간을 경험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가장 먼저 놀란 것은 회사가 예상처럼 완벽한 공간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처음 나는 회사가 '한치의 실수도 없는 프로페셔널한 사람들'로 구성된 '한치의 구멍도 없는 체계적인 시스템'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의 회사는 면접장이 아니었다. 일상으로서의 회사는 한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곳이 아니라 늘 얼마간은 실수하고 불완전한 사람들의 집합이었다. 시스템 또한 불완전한 건 마찬가지였다. 항상 건물 몇 개쯤은 공사 중이던 대학교 캠퍼스처럼 회사의 프로세스들도 늘 얼마간은 미완의 상태였다. 그건 비단 우리 회사에 큰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회사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이 끊임없이 변하고 있는 까닭이었다. 


하지만 회사 시스템이나 사람보다도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나의 마음, 그러니까 회사가 생각보다 다닐만하다는 사실이었다. 입사 전에 잔뜩 겁먹은 것에 비해 의외로 회사생활은 꽤나 만족스러웠다. 물론 그건 몇 가지 행운이 뒷받침된 덕분이었다. 다행히도 우리 팀에는 악마 같은 상사가 없었고 동료들도 대체로 좋은 사람들이었다. 내 의견과 무관하게 TO에 맞춰 배정받은 업무였지만 그런 것 치고는 일도 제법 할 만했다. 나는 일머리가 좋은 에이스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맡은 일에 구멍 내지 않을 정도의 적성은 있었다. 가끔은 일에서 소소한 재미를 느끼기도 했다. 물론 주말에도 찾아서 하고 싶을 만큼 재미있는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돈 받고 하기에는 나쁘지 않은 일이라고나 할까. 그러니까 내가 맡은 업무는 수학 문제를 풀 거나 엄마를 따라 멸치 한 박스의 똥을 다 뗐을 때 느껴지는 그런 소소한 재미와 성취감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나를 긍정적으로 만들어준 것은 역시나 월급의 힘이었다. 많은 월급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월급 덕분에 이제는 나도 망설이지 않고 당당하게 치즈라면이나 참치김밥 같은 업그레이드 메뉴들을 주문할 수 있었다. 또한 월급은 소비에서만이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큰 안도감을 주었다. 사회라는 정글에서 스스로 돈을 벌어먹고 살 수 있음을 처음으로 내 자신에게 증명해낸 것이다. 나는 처음 경험하는 회사원의 삶이 만족스러웠다. 스스로 돈을 벌고 또 스스로 결정해서 돈을 쓸 수 있는 지금의 삶이 제법 마음에 들었다. 성인이 된 지 한참을 지났지만 이제야 드디어 진짜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그런데 내가 누린 행운에 대한 기쁨과 지금의 삶에 대한 만족감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마음 한 켠이 찜찜하고 자꾸 불편했다. 그리고 맘의 긴장이 느슨해진 틈을 타서 언제부턴가 뒤늦은 질문 하나가 마음 저 깊은 곳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동안은 회사생활에 적응한다는 이유로 못 본 척 외면하며 오래 미뤄두고 있던 질문이었다.


계속 회사원으로 살아도 될까?
남의 일을 하는 시간도 내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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