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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사원 엘리스 Oct 24. 2021

[프롤로그] 계속 회사원으로 살아도 될까요?

월급은 좋지만 내 삶이 사라질까 봐 불안해

프롤로그


저는 회사원입니다. 커다란 조직의 부품으로 일하는 평범한 회사원입니다. 1%의 핵심인재가 아니라 나머지 99%에 속하는 아주 평범한 회사원입니다. 사실 제가 하는 일은 그리 특별하지 않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회사가 원하는 일, 자아실현이 아니라 생계를 위한 일, 나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대체할 수 있는 일, 월급을 받고 하기에는 괜찮지만 주말에 취미로 하고 싶지는 않은 일, 뜨거운 열정보다는 미지근한 일상의 루틴으로 꾸려가는 일, 누구든 할 수 있고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 그렇게 조금은 시시해 보이는 일을 하며 저는 오늘도 시간을 팔아 돈을 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저는 회사원으로 살아가는 지금이 좋습니다. 아침이면 아직 출근도 안 했는데 벌써 퇴근하고 싶고 연말이면 새해의 빨간 날부터 확인하는 일상이지만, 그래도 일을 하고 돈을 벌어 스스로의 삶을 꾸려나가는 지금이 그 어느 때보다 마음에 듭니다. 월급이 가져다주는 심리적 안정감, 회사를 통해 유지되는 건강한 일상의 리듬, 야채김밥 대신 불고기 김밥을 고를 수 있는 마음의 여유, 거기에 업무를 잘 끝냈을 때 느껴지는 보람과 성취감까지, 비록 어린 시절에는 한 번도 꿈꾼 적 없는 회사원의 삶이지만 그래도 그 속에는 소소한 기쁨과 만족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저는 회사원으로 살아가는 지금이 불안하기도 합니다. 가장 먼저 저를 두렵게 하는 것은 바로 생존에 대한 불안입니다. 더 좋은 회사로 이직하는 동료들을 볼 때 느끼는 불안입니다. 남들은 모두 열심히 앞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나 혼자 뒤처지고 있다는 생각에 점점 마음이 초조해집니다. 이곳도 평생직장은 아니라는 두려움, 영어공부든 자격증이든 무엇이든 자기 개발을 해야 한다는 강박,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플랜 B를 마련해야 한다는 조바심이 피어납니다. 그런데 이 불안을 달래기 위해 먼지 묻은 토익책을 꺼낼라치면 어느새 두 번째 불안이 고개를 내밉니다. 바로 삶의 의미에 대한 불안입니다. 퇴사를 하고 세계일주를 떠나는 유튜버들을 볼 때면 느끼는 불안입니다. 미래를 걱정하는 사이 정작 오늘의 삶을 잃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자꾸만 마음이 초조해집니다. 냄비 안에 갇혀 물이 끓는지도 모르고 서서히 죽어가는 개구리처럼 월급이 주는 안락함에 젖어 내 삶을 헐값에 팔아버리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피어납니다. 그렇다고 막상 지금 내게 퇴사를 결심할만한 확실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시간을 팔아 돈을 사는 노동의 순간에도 째깍째깍 인생의 시계는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릴 때면 자꾸만 마음속에 조바심이 일어납니다. 




이 글은 아주 평범한 회사원이 경험한 아주 평범한 마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지금이 좋지만 퇴사를 꿈꾸고 자기 개발은 지치지만 멈추기는 불안한, 모순된 욕망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스스로를 이해하기 위해 고민했던 한 개인의 마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어쩌면 이 글은 당신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 생존에 대한 불안, 남이 원하는 것을 제공하고 돈을 번다는 심플한 시장의 규칙, 그와 동시에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을 찾아야 한다는 자아실현의 이상까지, 저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했던 이 모든 난해한 인생의 과제들은 사실 비단 저 개인의 것만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공유하는 우리 사회의 조건 우리 시대의 가치이기도 하니까요. 


많은 이들이 44 사이즈 모델로 가득 찬 광고를 비판합니다. 비현실적인 외모를 미의 기준으로 여길수록 우리 보통의 몸을 미워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내면의 44 사이즈 모델, 우리 보통의 삶을 미워하게 만드는 인생의 기준들에 대해서는 거의 의심하지 않습니다. 어떤 기준들은 ‘날씬하고도 볼륨 있는 몸매’만큼이나 비현실적인 데도 말입니다.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이 내 몸에 대한 미움이 되지 않도록, 더 좋은 삶에 대한 소망이 인생을 해치는 독이 되지 않도록, 그것이 아무리 좋은 가치라 해도 우리가 선이라고 믿는 것들이 자신에게 가하는 윤리적 폭력이 되지 않도록, 내 편에 서서 내가 믿는 선을 되짚어보는 의심의 연습은 때로 그 어떤 다정한 말보다도 큰 힘이 됩니다. 냉정한 의심과 고민의 시간이 저에게 뜻밖의 위로와 해방감을 안겨주었듯이, 당신에게도 이 글이 현실의 한계를 끌어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계 너머를 꿈꿀 수 있게 하는 냉정하지만 다정한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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