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외침

'에세이 빠나콘' 세 번째 이야기

by 스미스

개인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메일링 서비스인 '에세이 빠나콘'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곳입니다.

구독자분들께 전달된 메일이 2주 후, 이 곳에 공개 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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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월 11일 세 번째 메시지 : 고요한 외침


대학교를 졸업한 후,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본식 술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일했던 술집은 테이블이 10개 남짓한 가게였는데, 비싼 안주와 술로 매출을 이어나가는 곳이었다.

내 근무시간은 사장님이 오기 전인 6시부터 9시까지로, 가게 오픈이 주요 업무였고 손님은 기껏해야 3~4 테이블 정도밖에 없었다. 작은 가게에서 딱히 할 게 없는 관계로 대부분의 시간을 청소로 때웠던 기억이 난다.


그러던 어느 날, 손님이 물밀 듯 밀려온 적 있었다. 1~2명이 아니라 단체로, 그것도 한 번에.

그 덕분에 30분 전만 해도 평온하던 가게는 순식간에 시장통이 됐다.

잔 부딪히는 소리, 누군가 크게 이야기하는 소리 등 소음이 가게 안을 가득 메웠다.

내가 혼자서 그 많은 손님을 맞이하는 게 안쓰러워 보였던지, 주방 이모는 주방에서 나와서 나를 도와줬다.


한바탕 정신없는 주문러시가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사장님이 오시기로 한 시간이 정확히 1시간 남은 시점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렇게 무사히 손님맞이를 한 나와 주방 이모의 표정에서는

100점짜리 시험지를 가진 초등학생의 얼굴 같은 뿌듯함이 넘쳤다.


그때, 누군가 문을 열고 가게에 들어왔다. 4명의 중년 남녀 무리였다.

멀리서부터 걸어 들어오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사장님이 이 모습을 봤다면, 분명 나를 해고했을 법한 한숨 깊이였다.

이런 내 한숨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가게 안쪽으로 꿋꿋이 걸어오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몇 분이세요?”

절반은 기계적인 말투로 내가 물었다. 하지만 내 말투에서 귀찮음을 눈치챈 건지,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본심을 들킨 것 같아 약간 움찔했지만, 용기 내 다시 한번 물었다.

“4분 맞으신가요?”

이번에도 대답은 없었다. 그들은 그저 나를 잠시 쳐다보더니

안쪽에 유일하게 하나 비어있는 테이블로 가서 자리에 앉았다.

나는 물과 수저를 준비하기 위해 주방으로 가면서 주방 이모에게 툴툴거렸다.


“4명이냐고 물어봤는데 대답도 안 하네요. 이제 좀 쉬나 했더니...”

수저와 물컵을 가지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메뉴판을 내려놓으며

오늘은 ‘연어 샐러드’ 주문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들은 들은 체 만 채 하더니, 손가락으로 메뉴 하나를 가리켰다. 가장 많이 팔리는 ‘오뎅탕’이었다.


‘그냥 나와 말을 하기 싫은 건가?’ 생각하며 체념하려고 하는 그때,

손가락으로 메뉴를 가리키던 사람이 “우…. 우” 하는 소리를 냈다.

그 사람은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는 손가락으로 숫자 1을 만들어 보였다.


그때서야 나는 알게 됐다. 그들이 말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걸.

나는 몹시 당황했고, 그들은 이런 내 기색을 눈치챘을지도 몰랐다.

나는 당황한 나머지 잠시 머뭇거리다가 메뉴판을 챙겨 겨우 빠져나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매우 단순한 생각이었다.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술집에 오지 않을 거라는 생각.

경험하기 전에는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생각이었다.

어쩌면 내 당황한 모습에 그들이 상처를 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편협한 내 사고가 나도 모르게 그들을 구석으로 몰아넣고 있던 건지도 몰랐다.


정신을 차리고, 술과 안주를 무사히 전달했다. 시끄러운 단체 손님들 사이에서 그들은 열심히 대화를 나눴다.

두 집단의 대화 방식은 서로 달랐지만, 양쪽 모두 즐거운 표정이었다.

소리 있는 대화와 소리 없는 대화는 서로 달랐지만 같았다.

나의 입장에서, 양쪽을 동시에 지켜보는 건 매우 인상 깊은 장면이 틀림없었다.


‘없는 듯 무시되거나 특별한 미담으로만 소비되었던 사랑이 있다. 바로 장애인의 성(性)과 사랑 이야기다.

장애인은 신체 일부가 손상되었을 뿐인데, 마치 그 손상과 함께 성적인 욕망이나 타인과 깊은 관계를 맺고자 하는 갈망까지 제거되었다는 듯 무성(無性)의 존재처럼 취급되거나 일방적인 피해자로 여겨지기 일쑤다.’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의 책 소개에 적혀있는 글이다.

책을 쓴 천자오루 작가는 일반인의 눈으로 보는 ‘사랑’을 일괄적으로 적용하는 것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갑자기 왜 장애인의 성(性) 이야기를 인용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장애인의 성(性)을 특이한 것으로 여기거나, 언어장애인이 술집을 이용하지 않을 거라는 고정관념은 본질적으로 비슷한 점이 있다. 몸이 불편하다고 ‘말’에 대한 욕망이 사라진 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은 그들을 우리와 다른 존재로 취급하는 것에서 기인한다.


사실 내가 딱히 그들에게 피해준 것은 없다는 점에서, 이 글을 읽고 내가 너무 예민한 거 아니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신중한 판단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자

이 일화를 꺼냈다.


섣부른 판단을 경계하고, 내가 모르는 게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자는 것.

이 사건으로부터 내가 배운 작은 교훈이었다.


다음 날, 출근하자마자 주방 이모에게 그들이 언제 떠났는지 물었다.


“오래도 먹더라”


주방 이모는 손을 내저으며 그들이 마감 시간 바로 직전까지 술을 마시다 갔다고 대답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머릿속으로 그들의 즐거운 대화 장면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그들은 술집에서 자연스럽게 술을 먹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도를 했을까. 얼마나 많은 알바생을 지나쳤을까.

그날의 나처럼 어색함을 감추지 못하는 그 모든 시선을 어떻게 받아넘겼을까.

그 모든 것들을 담담히 견뎌낸 그들은 나보다 훨씬 더 어른인 것 같았다.

괜스레 마음이 무거워졌고, 괜스레 안타까웠으며, 그들의 웃음을 떠올리면서 살짝 머쓱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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